그의 스위스행 비행기는 왜 멈춰 섰을까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김은형 | 문화데스크
설 연휴를 앞두고 읽은 기사 하나 때문에 휴가 내내 마음이 찜찜했다. 조력자살을 위해 스위스로 떠나려던 60대 남성을 비행기까지 세워 경찰이 설득해 가족에게 돌려보냈다는 기사였다. 처음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참담했고, 이를 구출작전이나 미담처럼 쓴 기사들의 톤에 아연했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기사의 모든 문장에 물음표가 생겼다. 가족이 아버지의 조력자살 여행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가족 중 아무도 아버지의 결정을 몰랐나? 아는데도 막기 위해 신고를 한 건가? 가족들이 몰랐다면 아버지는 왜 이 중요하고도 두려운 결정을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경찰은 어떻게 이 남성이 출국을 포기하도록 설득했을까? 책이나 기사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스위스 조력자살이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진행할 수 없는 일인데 적어도 몇달을 고민하고 수십번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며 까다로운 준비 과정을 마쳤을 이 결정을 고작 한시간 만에 설득했다고? 도대체 무슨 말로 이렇게 탁월한 설득력을 발휘한 걸까? 설득이 된 게 맞기는 한 걸까? 돌아간 뒤 남성은 가족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조력자살을 결정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병을 앞으로 어떻게 치료받을까? 그는 집으로 돌아온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까? 조력자살보다 행복한 삶의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가 조력자살을 위해 지불한 수천만원은 돌려받을 수 있을까, 까지.
자세한 속내야 알 도리가 없지만 표면에 드러난 궤적만으로도 삶의 마무리에 관한 우리 사회의 시선과 의료 시스템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왜 그는 스위스행을 가족과 상의하지 못하고 유서라는 형식으로 집을 떠난 뒤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밖에 없었을까. 남유하 작가가 어머니의 조력자살 여정을 상세하게 담은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에도 나와 있듯이 조력자살 결정을 가족에게 이해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력자살이나 안락사는 한국에서 불법인데다 정서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생의 마무리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선택지는 여전히 미답에 가깝다. 기적을 바라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을 것인지, 죽을 때 죽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연명치료를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할 것인지만 고민하면서 죽음은 고통의 당사자를 배제하고 의료진과 보호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보호자는 죄책감을 최소화하고, 의료진은 법적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결정이 수렴된다. 이 결정과 죽음 사이 당사자와 보호자를 잇는 건 하고 싶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결국은 또 다른 후회로 남는 침묵이다.
말기암 환자들을 지켜봐 온 전문의 박광우는 그의 책 ‘죽음 공부’에서 ‘암 상담사’의 필요성에 대해서 썼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합리적인 치료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도입하고 있다는 이 제도의 매뉴얼에는 병증에 대한 기록과 함께 선택할 수 있는 치료나 연명 치료의 정도뿐 아니라 환자의 일상생활 능력, 직업, 교육 정도, 재산, 보호자의 가용재산과 직업, 보호자는 몇명인지, 보호자와 환자와의 감정적 교류 정도까지 세밀하게 기록하게 되어 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담사는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치료 방식을 제안한다. 주어지는 정보가 풍부할수록 환자와 보호자는 처한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만큼 논의할 거리가 늘어나니 남은 삶에 대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여러 해를 고통받고도 예정된 죽음을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조력존엄사법’ 입법 논의가 몇년째 진행되며 공전하고 있다. 지금처럼 찬반으로만 접근하고 찬성과 반대 사이에 우리가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와 제도의 지원이 풍부해지지 않는다면 비행기를 멈춰 세우고 스위스행 결정을 철회시키는 이 비극적인 희극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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