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 국민성장펀드에, 5개월만에 170조 신청 들어왔다

심우일 기자 2026. 2.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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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월 만에 20조 초과 접수
RE100 산단 조성 등 130여건
첨단기업들 자금조달 수요 상당
獨·日 등 경쟁국도 지원규모 늘려
이억원(왼쪽 네번째)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1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국민성장펀드 사무국 앞에서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을 위한 금융기관 간 업무협약식을 마친 뒤 박상진(왼쪽 다섯 번째) 산업은행 회장 및 5대 금융지주 회장과 현판식을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첨단전략산업 투자를 위한 국민성장펀드에 지금까지 총 170조 원 규모의 투자 신청이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정부가 지난해 9월 국민보고대회에서 150조 원 크기의 국민성장펀드 운용 전략을 내놓은 지 5개월 만에 20조 원이 넘는 초과 수요가 접수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기업들의 필요 자금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펀드 조성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한국산업은행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산은에 들어온 국민성장펀드 투자 신청 사업은 170조 원, 130여 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유관 부처와 지방 정부 및 기업이 제출한 수치를 모두 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에 알려진 신안우이 해상풍력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 외에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를 위한 공유형 도크와 인공지능(AI) 기반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 프로젝트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사업이 국민성장펀드의 잠재적인 지원 대상임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영농형 태양광 RE100 산업단지 조성 사업도 국민성장펀드의 지원을 요청했다. 금융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초과 접수 규모가 20조 원을 넘는다는 것은 첨단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상당하다는 의미”라며 “아직 국민성장펀드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업체가 많아 최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의 시각도 비슷하다. 당장 경쟁국들도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리고 있다. 독일은 최근 300억 유로(약 51조 원) 규모의 정책펀드인 ‘독일펀드’를 바탕으로 1300억 유로 수준의 민간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압승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방산과 반도체·조선·AI 등 핵심 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집권 자민당은 조선업을 위해 1조 엔(약 9조 3500억 원) 규모의 펀드 조성을 추진 중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 규모를 더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美 MRO용 도크·치매 신약 등 대기…“국민성장펀드 규모 확대 불가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2일 충북 청주 대웅제약 공장을 방문해 “바이오는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들고 상용화까지도 긴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안다”며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장기 대규모 프로젝트 투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위원장은 로봇과 수소를 핵심 첨단산업으로 거론한 뒤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사업 지원을 약속했다. 이를 고려하면 국민성장펀드의 조성 규모가 더 늘어날 필요가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에너지와 전력망 등도 잠재적인 대규모 지원 대상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정부가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공식화한 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사업 지원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각 지역의 경쟁력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사업 제안이 많았다”며 “이 중 국가 경제에 파급 효과가 큰 프로젝트 위주로 지원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이 직접 방문한 충청 지역에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국민성장펀드의 지원을 받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AI 플랫폼을 이용하면 약물의 흡수·분포·대사·배설·독성 특성을 보다 최적화할 수 있어 신약 개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대웅제약이 개발한 당뇨병 치료 신약 ‘엔블로정’만 해도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잠재적인 효과가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국제학술지 ‘에이징셀(Aging Cell)’에 실렸다.

충청권의 한 반도체 기업은 차세대 전력반도체 생산 설비 확충을 위해 국민성장펀드 투자를 신청했다. 동남권에 위치한 조선 업체들은 함정 유지·보수·관리(MRO)를 위한 공유형 도크 구축에 자금 투입을 요청했다. 함정 MRO는 한미 조선업 협력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추진에서 핵심 분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 대형 조선소에는 MRO를 위한 도크가 부족해 미국 함정 MRO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호남권 지자체들은 국민성장펀드에 국가 AI 컴퓨팅 센터와 K콘텐츠 클러스터 조성 사업에 참여해줄 수 있냐고 요청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영농형 태양광을 연계한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 조성 프로젝트에 국민성장펀드가 투자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내기도 했다.

금융 당국 안팎에서는 국민성장펀드 지원을 받으려는 수요가 당초 예상보다 많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당초 100조 원으로 잡았던 국민성장펀드 목표 투자 규모를 기업들의 요청에 150조 원으로 늘린 바 있다. 그러나 국민성장펀드가 5개월 만에 이보다 많은 170조 원의 투자 신청을 받게 되면서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벤처투자 역량 강화를 위해서도 국민성장펀드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금융 당국은 5~6월 시작할 35조 원 규모의 간접투자 자펀드 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기존 정책펀드와는 다른 지표를 활용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모태펀드나 한국성장금융에서는 자펀드 운용사를 선정할 때 과거 투자 이력을 중점적으로 본다. 이러다 보니 기존에 선정된 벤처캐피털(VC)이 계속 정책펀드를 담당하는 현상이 굳어졌다는 것이 금융 당국의 인식이다.

정부는 또한 국민성장펀드를 ‘5극3특’ 전략을 성공시킬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쓸 방침이다. 5극3특은 수도권 1극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을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등 5개 초광역권과 제주·전북·강원 등 3개 특별자치도로 재편해 균형성장을 추진하는 전략이다. 당국이 향후 5년간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지방에 60조 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에너지와 전력망 등에서도 국민성장펀드 투자가 필요한 곳이 많다고 보고 있다”며 “국민성장펀드가 자금이 필요한 투자처에 지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안우이 해상풍력 7년만에 기지개…대출금리도 1.5%P 낮춰

약 7년간 표류했던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 사업은 국민성장펀드 지원을 통해 사업을 재개하고 조달 금리도 낮출 수 있었다. 국민성장펀드의 투입 효과가 하나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7500억 원의 대출을 집행하면서 금리를 연 4.0~5.1% 수준으로 책정했다. 이는 다른 유사한 조건의 대출보다 약 1.5%포인트 낮은 수치로 알려졌다.

사업자들은 이를 통해 수백억 원을 아낄 수 있었다. 이는 지역사회 환원으로 이어졌다. 매년 250억 원가량을 발전 사업에 참여한 지역 주민에게 나눠주는 바람연금 재원의 일부를 충당하는 데 쓰인 것이다. 금융 비용 절감분은 공공기여금 111억 원을 조성하는 데도 일부 도움이 됐다. 발전 사업자들은 아낀 이자를 토대로 지역 주민들에게 연 5.5%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신안군민펀드(1000억 원 규모)를 조성할 예정이다.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 사업은 2019년 발전 사업 허가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사업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2024년에는 재정 당국의 예비타당성조사마저 통과하지 못하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이런 사업을 되살려 낸 게 국민성장펀드다. 국민성장펀드는 원리금을 받지 않는 거치 기간을 약 18년으로 보장했다. 국민성장펀드가 필요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후순위로 책임지면서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도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신안우이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총 사업비는 3조 4000억 원에 달한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신디케이션론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국민성장펀드의 지원을 보고 은행권에서도 잇달아 자금 투입을 약속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총 1.9조달러’ TSMC 키운 대만국가발전기금…獨은 51조원 투입해 220조원 민자 유도

1987년 대만 TSMC가 설립됐을 당시 자본금은 2억 달러(약 2890억 원)였다. 자본금 중 48%는 대만의 국부펀드인 국가발전기금(NDF)이 출자했다.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27%, 민간 투자자가 나머지 25%의 지분을 채웠다. 정부는 NDF의 초기 자본금 출자에 더해 부지와 법인세 감면 및 연구개발(R&D) 세액공제까지 제공했다.

이후 TSMC의 시가총액은 17일(현지 시간) 약 1조 8890억 달러(뉴욕증시 기준)로 불어났다. 이 과정에서 NDF의 지분은 희석됐지만 TSMC를 비롯한 각종 첨단·벤처기업 투자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며 자산을 약 77조 원(2024년 말 기준)으로 불렸다. 1973년 약 1조 5000억 원의 재원으로 시작했던 것과 비교하면 51배 넘게 불어난 것이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와 관련해 NDF 사례를 상당 부분 참고하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18일 “출자 구조 등을 보면 NDF와 국민성장펀드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NDF는 정책 펀드가 세계적 기업을 키워내는 마중물로 기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금융 당국에서는 각국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 측면에서 재정을 적극 동원하고 있다는 데에도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2024년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인공지능(AI)·반도체 산업에 총 10조 엔(약 94조 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이 같은 첨단산업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도 우세하다.

독일도 300억 유로(약 51조 원) 규모의 ‘독일펀드’를 조성해 각종 산업계와 스타트업 및 에너지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독일 재무부는 이 펀드를 통해 총 1300억 유로의 민간자금을 유치할 계획이다. 독일은 앞서 자국의 차량용 반도체 업체인 인피니언의 공장 신설에 9억 6000만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승인하기도 했다.

미국 역시 2022년 일찌감치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가동해 총 527억 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다. 캐나다는 청정 기술 관련 투자액의 최대 30%를 현금으로 환급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각국이 투자 유치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며 “이를 감안한다면 한국의 첨단산업 지원 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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