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 3명에 파출소 마비… 자살신고 접수돼도 출동 늦어져 발동동
폭력-기물파손 등 없으면 보호대상
“술 깰 때까지 물 수발” 공권력 허비… 최고 위급단계 ‘코드제로’ 대응 차질
난동 멈추려 경찰 6명 달라붙기도… “2, 3일마다 오는 주취 상습범 많아”

● 주취자 대응에 뚫리는 ‘골든타임’
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주요 지구대 및 파출소 16곳을 살펴본 결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취자의 난동과 업무 방해로 경찰 공권력이 속절없이 허비되고 있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술에 취해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주취자는 경찰의 보호조치 대상이기 때문에 지구대와 파출소 경찰들은 주취자 상대에 애를 먹고 있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됐어도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등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그들은 보호 대상으로 대우받는다.


문제는 주취자 처리가 단순 행정력 낭비를 넘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주취자 관리와 보호에 몇 시간씩 매달리느라 위급사항 중 최고 단계인 ‘코드 제로(CODE 0)’에 대한 출동이 지연되는 경우도 다반사로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역삼지구대에서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관내에서 “자살을 하겠다”는 긴급 신고가 접수됐지만, 가용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살 기도나 살인 등 최단 시간 내 출동해야 하는 ‘코드 제로’ 상황에서는 순찰팀장을 포함한 전 인원이 총력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당시 근무 인원의 5분의 1에 달하는 경찰관들이 지구대 내에서 난동을 부리는 주취자 3명을 제지하느라 발이 묶여 있었다. 다행히 자살 시도자는 구조했지만, 주취자가 뺏어간 경찰력 탓에 정작 구해야 할 시민의 ‘골든타임’이 위협받은 순간이었다.
● 아침에 보내면 오후에 또 오는 ‘주취 상습범’
주취자는 기물 파손이나 폭행 등을 하지 않으면 입건 없이 귀가 조치된다. 이 때문에 현장 경찰관들이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주취 상습범’이 많다는 점도 공권력 낭비의 배경이다. 서울 마포구 홍익지구대 관계자는 “2, 3일마다 오는 경우는 양반이고 아침에 귀가 조치하면 오후에 다시 오는 경우도 있다”며 “보호조치 중에 지구대 방문객이나 경찰관에게 시비를 걸어도 (법적 처벌의) 임계점에 이르지 않는 한 입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설령 경찰관에게 폭행을 휘두르는 등 묵과할 수 없는 난동을 부려 공무집행방해로 검거해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해 8월 인천 연수구에서 도로를 점거한 채 경찰차 앞 유리에 바리케이드를 던지고 와이퍼를 부러뜨린 주취자는 공무집행방해로 검거됐지만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 사건의 실형 비율은 12.8%에 불과하다.
또 서울 이태원, 홍익대 앞, 강남 등 유흥가가 밀집한 지역의 지구대와 파출소는 밤마다 주취자를 상대하는 게 사실상 가장 큰 업무다. 취객을 의자에 수용할 수 없어 매트를 구비한 경우도 많고, 토사물에 변기가 막혀 화장실을 폐쇄하는 사례도 잦다.
보호조치를 해 준 경찰이 되레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홍익지구대 소속 김준수 경감은 “인사불성이 된 탓에 가족 연락처 등을 알아내려면 휴대전화 지문 인식 등을 해야 하는데 ‘범죄자 취급하냐’며 역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하루에 2, 3번씩 일어난다”고 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취객 3명에 파출소 마비… 자살신고 접수돼도 출동 늦어져 발동동
- 장동혁 “李 SNS 답하느라 차례 못 지내고 과로사할 뻔”
- 설 연휴 마친 코스피 5600선 돌파
- ‘부모 찬스’와 청년기 부동산, 자산 격차 갈랐다…16년 추적 결과
- “내 땅에 남의 묘로 대출 막혀” 굴삭기로 파묘한 60대 유죄
- ‘람보르길리’ 폭주, 끝내줬다…女 쇼트트랙 3000m 계주 역전 금메달
- 인형 끌고 다니는 새끼 원숭이, SNS 스타됐다
- [단독]변협, 2차 종합특검보 후보 우승배 등 4명 추천
- 尹 ‘내란’ 오늘 1심 선고… 계엄 443일만에 첫 심판
- “日, 360억달러 첫 대미투자 결정”… 韓 압박 커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