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혼자 응급실 근무할 때 챗GPT 켭니다"…의사 2명 중 1명 "업무 때 AI 쓴다"
진단·선별·치료 등에 AI 이미 폭넓게 활용
의료사고 책임, 오진 가능성 걱정하는 의사도
복지부 "모든 책임은 의사에…접목 방법 찾아가야"

비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 A씨는 야간이나 공휴일에 당직 근무를 할 때 종종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 유료 모델을 켠다. 다른 과 전문의나 상급자 없이 혼자 근무하는 상황에서 전공 분야가 아닌 환자가 오면 상황 판단이 쉽지 않아서다. A씨는 "환자의 증상에 따라 입원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 챗GPT에 원칙적 기준을 재차 확인해본다"고 말했다. 월 이용료 20달러(약 2만9,000원)를 주고 동료를 한 명 구한 셈이다.
국내 의사 2명 중 1명이 질환 진단·검사 결과 분석 등 실제 의료 업무에 AI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오진 등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환자에게 AI 활용 사실을 어디까지 알려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사용을 꺼리는 의사도 많다.
진단, 선별 뿐 아니라 치료에서 활용
이런 결과는 한국일보가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의료 분야 인공지능 도입의 영향 및 대응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담겼다. 연구진은 지난해 10월 16~21일 국내 의사 2,1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실제 의료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는 비율이 47.7%에 달했다. 정부가 의사의 AI 활용 현황을 파악하려고 대규모 설문조사 등을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의사들은 AI를 주로 질환의 진단(68.0%·복수응답)과 선별(51.2%·환자 중증도 구분 등) 과정에서 썼다. △치료(33.4%) △환자 추적 관찰(24.1%) △행정업무 간소화(23.5%) △예후 예측(20%) 등에 활용했다고 답한 의사도 적지 않았다.
진료과별로 보면 영상의학과 의사 2명 중 1명 이상(52.4%)이 AI를 써 활용도가 가장 높았다.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의료 영상을 판독하는 AI 기술이 이미 많이 나왔고, 실제 진료 현장에도 깊숙이 파고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심장 질환을 다루는 순환기내과(27.3%)와 당뇨, 갑상선 등을 진료하는 내분비내과(10.7%), 피부과(6.6%) 의사들도 AI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AI는 의사 수가 부족한 '의료 취약 지역'에서 특히 요긴하게 쓰인다. 공중보건의 A씨는 챗GPT뿐 아니라 심전도 결과를 분석하는 AI 소프트웨어도 쓰고 있다. 그는 "혈액검사처럼 객관적 수치가 나오는 영역에서는 AI가 특히 강점이 있다"면서도 "AI는 질문 방식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고 오류도 적지 않아 참고 자료로만 활용한다"고 말했다.
의사 10명 중 7명 "법적 책임 불명확해 우려"
의사들은 AI를 쓴 이후 시간 관리가 쉬워져 환자를 진료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설문에 응한 의사 중 82.3%는 AI 도입에 따른 가장 큰 성과로 '시간적 업무 효율 개선'을 꼽았다. 서울의 한 대형 안과의 전문의 B씨는 “최신 논문을 검토할 때 AI를 활용하면 핵심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며 “행정적·학술적 업무 시간을 크게 줄여줘 진료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AI 활용을 주저하는 의사도 많다. 의사들은 AI 활용 시 가장 우려하는 점으로 ‘법적 책임의 불명확성’(74.3%·복수응답)을 꼽았다. △오진 가능성(65.4%) △기술적 불안정성(50.1%)도 골칫거리였다. 실제 미국에서는 존스앤드존슨 계열사가 제작한 만성 부비동염 수술용 의료 기기 트루디(TruDi)에서 AI 시스템 도입 이후 부상 사례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현장 의사들은 AI를 참고 수단 정도로 여긴다. 서울에서 일하는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특정 약물을 쓸 때, 드물지만 간혹 발생하는 부작용을 확인해 보려고 AI에 물어볼 때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AI 답변의 원문 출처는 직접 확인한다. 최종 판단과 책임은 결국 의사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설문에서 의사 중 32.5%는 '환자 안전을 위해 AI 사용 여부를 의무적으로 고지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현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AI 의료 기기 중 혁신의료기기로 등재된 제품을 제외하면 환자에게 AI 활용 사실을 알릴 의무가 없다.

복지부도 의료 행위의 모든 책임은 결정을 내린 의사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등 의료인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기에 AI에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AI 기술을 활용한 의료 기기에 대한 검증은 식약처가 마련한 ‘AI 의료기기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진단, 치료에 직접 개입해 문제 생기면 누구 책임?
문제는 AI가 지금보다 더 병원 깊숙이 들어왔을 때다. 진단과 치료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개입하는 단계로 나아가면 책임 문제는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연구진은 "의료적 판단 근거가 알고리즘 내부로 이동할수록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더욱 불명확해질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AI가 의료인의 단순 보조 도구인지, 공동 판단자인지 구분할 기준이 부족하기에 더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범부처적으로 'AI 기본사회'를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AI를 의료 분야에 잘 접목시켜나갈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 의원은 "‘인공지능 시대’의 사회적 요구 증가에 따른 의료분야 AI 활용과 그 책임에 대한 정부의 균형적인 정책 마련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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