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익살로 감춘 상처… 청춘에 보내는 응원가

백수진 기자 2026. 2. 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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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공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영화 '파반느' /넷플릭스

2009년 출간된 박민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남자의 로맨스를 그리며 ‘색다른 연애 소설’로 호평을 받았다. 1980년대 서울 변두리를 배경으로, 모든 것이 반짝이는 백화점 아래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원작이 출간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자본주의와 외모 지상주의의 명암은 더욱 짙어졌다. 20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부와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은 더욱 커지고 사랑은 메말라 가는 시대에, 그늘진 청춘들을 다정하게 비춘다.

영화에는 세 명의 ‘못난’ 청춘이 등장한다. 백화점과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미정(고아성)은 취업 성적 1등으로 들어왔지만 지하 창고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아온 그는 어둠 속에 홀로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 한때 무용수를 꿈꿨던 경록(문상민)은 현실에 부딪혀 주차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외모만 번지르르했던 아버지는 배우로 성공한 뒤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났고, 그때부터 경록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 농담과 익살로 상처를 감추고 있는 요한(변요한)은 두 사람의 큐피드를 자처한다. 영화는 초라하고 시시해 보이지만, 응원하고 싶어지는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원작을 재해석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달리 영화는 시대적 배경이 명확하지 않다. 특정 시대보다는 단 한 번뿐인 청춘과 그 시절에만 가능한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자본주의나 외모 지상주의를 향한 날 선 비판 역시 한층 둥글게 다듬고 멜로에 집중했다. 지난 12일 제작 보고회에서 이종필 감독은 “10대 시절부터 멜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인류를 구원하는 건 사랑이고, 결국 모든 영화는 멜로 영화”라고 말했다.

미정 역의 고아성은 10㎏을 늘리고 특수 분장까지 했지만, 소설에서처럼 ‘못생긴 여자’라는 설정이 또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영화는 외모보다는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 위축된 태도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종필 감독은 “영화 속 미정은 못난 얼굴보다는 못난 마음을 가진 인물”이라며 “사랑할 때 스스로 부족하고 미숙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핵심이라 여겼고 원작과 다르게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그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서툴고 불완전한 청춘들은 계산하지 않고 서로에게 이끌리며, 숨겨져 있던 서로의 빛을 발견한다. 빠르고 소란스러운 시대에, ‘파반느’는 느린 박자와 조용한 위로로 오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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