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우의 세상 땜질] 챗GPT가 친구·스승·상담사… 관계 손실 어떻게 메울까
지적하기보다 관용하고 다정하게 개입하며 이해하려 노력하자

창원에서 공고·공대 나와 공장 노동자로 쭉 일한 서른 살 내가 서울 사무직이 되고 난 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말버릇이었다. 종종 험악한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래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곤 했다. 20대 내내 공부하고 일했던 장소가 남초 사회 중에서도 가장 거친 곳이었던 만큼, 한껏 걸걸해진 주둥이를 교정하느라 꽤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말본새만 나빴으랴. 사회성 자체가 부족했다. 예절도 없었고 공사 구분도 잘 못 했다. 다행히 고마운 직장 선배와 동료들은 내 배경을 이해했고 나쁜 버릇이 튀어나올 때마다 조심하라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대부분 30대가 사회생활 하면서 누리기 힘든 호사였다. 서울 회사 생활 경험은 뒤늦게나마 관계 맺음 연습을 할 수 있던 귀한 시간이었다.
서울살이를 시작할 무렵 청년 직장인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MZ함’이었다. 회식을 꺼리며, 이어폰 낀 채 업무를 하고, 말 대신 메일과 메신저를 선호하는 20대들. 두둔하는 쪽은 효율, 합리성, 공사 구분이 뛰어나다고 상찬했다. 비판하는 쪽은 이기적이고 눈치가 없다며 ‘요즘 젊은 놈들’로 매도했다. 같이 일해 보니까 양쪽 얘기가 다 일리 있게 느껴지더라. 다들 똑똑하고 맡긴 일은 잘하지만 대화 섞기가 참 힘들었다. 서로 말이 헛돌 때마다 소통이 서투른지 애초에 원하지 않는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미숙함이 코로나 탓인 줄만 알았다. 거리 두기 기간 동안 사람끼리 얼굴을 마주할 상황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또래들과 몸 부대끼며 공부하고 노는 행위만큼 확실한 관계 맺음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코로나 시기를 거쳐 비대면 학습이나 노동의 비효율은 증명됐지만 관계 손실은 메울 수 없었다. 그렇게 청년들은 코로나 이전 세대보다 관계 맺음이 덜 단련된 채로 사회에 던져졌다. 여기까지가 내 생각이었는데 더 큰 변수가 있었다. 챗GPT, 초창기만 해도 어설프기 짝이 없던 이 거대 언어 모델(LLM)은 이제 ‘초고성능 챗봇’이 된 상태였다.
이미 상당수 청년이 챗GPT로 수많은 인간관계를 대체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친구, 스승, 상담사가 되어준다. 질문을 던지면 피하지 않고 잽싸게 대답한다. 모호하거나 틀렸다고 대답해야 할 때마저 사용자를 두둔한다. 이러한 LLM의 ‘무조건 반사’는 빠른 도파민과 알고리즘 편향이 대표하는 숏츠 시대와 ‘환장의 궁합’을 자랑한다. 비대면, 숏폼, 챗GPT에 익숙해진 청년들은 답답함을 못 견디고 기분 나쁜 순간을 회피하려 한다. 의식하지 않은 무례함을 드러내기 쉽고 좀처럼 긴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워한다. 나 포함 주변 또래, 대학 교수님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특징이다. 다행히 관계 맺음 기술은 반복 숙달인지라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늘어나게 되어 있다.
문제는 청년들이 또래들과 마주칠 일 자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난에 사회 진출이 늦어지면서 홀로 보내는 시간은 늘어만 간다. 대중 매체 영향이 예전 같지 않아 대화 나눌 공통 관심사도 점차 줄어든다. 관계 맺음을 경험하기 위한 장벽 높이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사회는 관계 맺음이 서투른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다. OTT에 넘쳐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회성이 떨어진다며 ‘빌런’으로 지목되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보라.
이 세태를 어찌 하면 좋을까. 이미 사회는 변하는 중이고 이전으로 돌아가긴 지극히 어렵다. 그렇다고 국가 단위에서 강제로 콘텐츠를 제한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약발이 잘 들지도 모르겠다. 제도보단 개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문제 같다. 그러므로 ‘요즘 젊은이’들을 보며 한탄하는 모두에게 제안하고 싶다. 미숙함에 혀를 차고 틀렸다며 지적하기보단 인내하고 관용하되 다정하게 개입함이 어떨까. 청년을 바라볼 때 무작정 내 삶부터 포개어 생각하기보단,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타인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해 보자는 얘기다. 조언하려 들거나 아예 방관하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자.
관계 맺음의 장벽은 세상이 따뜻해질수록 점차 낮아지고 허물어진다. 나는 다정한 동료들 덕분에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때 받았던 온기를 다음 세대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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