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박정민 "무대 오른 순간 잡념 제거하고 공연의 신이 와주시길 기대해"[인터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너를 온전히 사랑해, 리처드 파커' 이 대사를 가장 사랑하죠."
지난해 12월 개막해 공연 중인 '라이프 오브 파이'는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배가 침몰한 뒤 구명보트에 남겨진 소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227일간 태평양을 표류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공연은 장르적으로 뮤지컬이나 연극이 아닌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고 명명했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소년 파이는 가족과 함께 일본 화물선을 타고 캐나다로 이주를 하게 된다. 하지만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폭풍우를 만난 화물선은 난파하게 되고 파이는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 뱅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에 오르게 된다. 끝내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단 둘이 구명보트에 남게 된 파이는 227일간의 표류 끝에 한 섬에 당도해 목숨을 구하게 된다.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파이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은 최근 인터뷰에서 "무대에 선 순간은 항상 두렵고 불안하다. 이 공연을 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무대 위에 서있는 동안에는 어떤 잡념도 감정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해내야 하는 것이고 나를 믿고 동료를 믿고 이 무대가 잘 흘러가기 위해 애쓰는 스태프들을 믿고 관객들을 믿어야만 한다. '공연의 신이 오늘 오실까'를 고민하다가 '오늘 그냥 가서 호랑이를 직접 보고 가족들을 직접 보자'고 결심을 한다. 그대 비로소 잡념이 사라지고 안정감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배우였다가 서점 사장이었다가 또 연극배우로 출판사 무제 대표로, 때론 침착맨의 유튜브 출연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종횡무진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박정민은 작품 속 캐릭터를 향한 수많은 도전 못지 않은 인생의 새로운 갈래길들을 향해 조심스럽지만 당당히 발걸음을 뻗고 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에 매번 도전과 실행으로 응수해왔던 이 남자의 또다른 도전이 벌써 궁금해진다.

- 문근영과 함께 했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 8~9년 된 것 같다. 그동안 아주 가끔 제안이 있기는 했었는데 잘 할 자신이 없어서 고사했었다. 이 작품의 오디션 제안이 들어왔길래 처음에는 고사할려고 했었다. 너무 좋아하는 소설이고 영화지만 무대에 올라서 연기를 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라트비아에서 영화 '휴민트'를 촬영하던 중이었는데 저희 회사 김미희 대표님이 유튜브 링크를 보내주셨다. 영상으로 처음 보니 기가 막혔다. 근사하고 멋있더라. 이 공연의 초연을 한국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뮤지컬 장르도 아니니 노래가 없기에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무대가 갖추어져 있다면 내가 쓱 껴서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있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휴민트' 촬영이 끝나면 연기는 한참 쉴려고 했었다. 다시 연기를 하게 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무대로 옮긴 작품에 함께 한다면 앞으로 배우 생활에 자양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 첫 공연부터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고 알려졌다.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기립 박수를 받는 기분은 어땠나.
▶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감사하고 소름 돋았다. 모든 관객분들이 일심동체이실까 의심은 있었지만 너무 감사했다. 무대 들어가기 전에는 부담이 컸다.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당시는 무대 조명이 들어오면 제가 문을 탁 열고 들어가야 했다. 그때 '이 문이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이번 공연에서는 침대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얼레벌레 시작을 하게 된다. 제가 첫 등장이 아니다. 그 부분에서 마음이 놓였다.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과 동료가 막을 열어주고 저를 불러주고 저는 쓱 나와서 그들과 어울리면 된다는 안도감이 불안을 줄여줬다.
-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스토리텔링을 주도해야 하는 역이다. 가장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
▶ 딱히 뭘 준비한 것은 없다. 연출님,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계속 대본을 보면서 작업했다. 저는 연극 대본 즉 희곡이라고 하는 건 나쁘게 말하면 불친절하고 좋게 말하면 배우가 채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채울 것이 많은 대본이었다. 단번에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대본이 아니었기에 이 대본에서 파이의 마음까지 들어가는 여정이 좀 오래 걸렸다. 계속 타자로 파이를 생각하는 기간이 길었다. 파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 오래 걸려서 영화를 다시 보고 소설을 다시 보고 연출님과 다시 이야기하고 하는 과정이 지지부진했다. 오히려 더 찾아지는 것들도 많았다. 이 공연에서 주안점을 두는 것은 '다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다들 이 부분에 대해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은 다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내가 아픈 것은 상관 없는데 매일 두 번의 공연을 박강현이 다 할 수는 없다. 제가 빠지면 강현이에게 너무 큰 죄를 짓는 거다. 그렇기에 다치지 말아야 하는 일이 가장 지켜야 할 일이다.

- 영화와 연극, 소설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봤나.
▶ 소설 원작의 핵심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연극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원작 속 내용을 좀 더 깊게 다루고 있다. 영화가 나왔을 때 모두 입을 모아 그 영화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호랑이가 어땠고, CG가 어땠고, 바다는 어떻게 찍었을까'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중에 영화를 다시 보면 원작 속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모두 말도 안되는 영화가 나왔다고 놀라곤 했었다. 영화와 연극을 함께 보신 분들이 있다면 원작 메시지에 연극이 더 가서 닿았다고 생각하실 거다.
- 캐릭터 해석에 있어서 어려웠던 지점이 있다면
▶ 영화는 시간이 흐른 후 회상하고 회고하는데 중점을 뒀기에 격정적 신이 별로 없다. 제가 느끼기에 파이가 자신의 순간적 선택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후회하는 것들이 영화에서는 좀 덜 격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연극은 파이가 구출된 후 며칠 뒤 벌어지는 이야기이다보니 어머니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그다지 관조적일 수는 없다. 심지어 어린 소년이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야기의 갈래가 다양하다고 생각하기에 제가 이 공연에 접근한 방식이 다양한데 제가 가진 하나의 목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파이가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파이를 연기해야 하기에 감정적으로 억울하고 슬프고 원망하는 마음이 나와줘야 관객들도 이입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무대위 몸놀림이 마치 무용수처럼 가볍던데. 퍼펫티어들에게 몸을 맡겼을 때 느낌은 어떤가.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처음 '라이프 오브 파이'의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1시간 30분가량 오디션을 봤다. 제가 한국어로 대사를 하니 틀려도 외국 스태프들은 잘 모르시지 않나. 한국어 대사 오디션은 금방 끝났다. 우리 극에 퍼펫티어로 나오시는 세 명의 배우가 있다. 이 분들이 제 오디션도 도와주셨다. 서로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만질 수 있으면 만져보라고 하더라. 사실 학교 때 연기 수업 때도 가장 싫어한 방식이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보라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경험을 했다. 저도 제 자신에게 놀랐다. 퍼펫티어들이 저를 들어주고 올려주고 하는데 눈물이 울컥하더라. 정말 신기했다. 처음 오디션 가기 전 '아니 무슨 오디션이야, 망했네'하고 갔다가 '오늘 너무 행복했다'하며 오디션장을 나왔다. 이런 과정을 연습 때도 똑같이 했다. 공연장에서 대사 연습을 안하고 서로 합 맞추고 게임하고 들어주고 하는 연습을 했다. '공연 연습은 안해요?'라고 감독께 물으니 '괜찮다'며 계속 그런 연습만 시키더라. 이런 걸 겪고 나서 함께 공연하는 사람들을 믿게 됐다. 저를 들어올릴 때 그 손길이 다 느껴진다. 이 사람들이 파이를 들어올리고 다른 공간에 놔주려고 하는 노력이 그들의 손끝 감각에서 느껴진다. 호흡을 함께 느끼는 찰나의 순간, 함께 하는 3~5명의 배우 호흡이 촥하고 맞아야 한다. 그런 호흡이 서로 탁하고 맞았을 때의 감동은 매번 새롭다. 이번 공연은 이런 점들이 좋다. 서로 믿고 호흡을 맞추며 파이로서 서로와 연결되게 한다.

- 리차드 파커는 파이의 두려움과 강박을 투영할 수 있는 대상으로 설정됐다. 파이 역을 연기하며 인간 박정민이 극복한 두려움과 강박이 있나.
▶ 파이를 연기하며 완전히 동일시 되는 순간은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인물의 마음을 명확히 다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발 더 가까이 갔다고 느끼는 것은 영화를 볼 때도 소설을 볼 때도 공연 대본 받았을 때도 '두 번째 이야기가 사실이고, 첫 번째 이야기는 파이가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느꼈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온 글리라는 연출님이 '정민, 첫 번째 이야기가 진짜라고 한번 믿어보면 안돼?'라고 하시더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 '첫 번째 이야기가 진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가 진짜든, 두 번째 이야기가 진짜든 상관없다고 생각이 됐다. 연기 도중 그런 마음이 들더라. '이 마음이 파이에 가깝겠구나' 싶었다. 그때 파이에게 한걸음 다가간 느낌이었고 저에게 가장 고무적인 시간이었다.
- 파이가 두려움의 대상인 리처드 파커와 동거를 하며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처럼 박정민의 연기 인생에서 두려움을 극복한 순간이 있다면.
▶ 항상 두렵고 불안하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 공연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무대 위에 서 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잡스러운 감정들이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해내야 하는 것이고 연습 과정을 포함해 오늘도 내일도 공연을 올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나를 믿어야하고 동료들을 믿어야만 한다. 나를 믿는다는 것은 동료들을 믿는 것이고 이 무대를 잘 흘러가게 하기위해 애쓰는 스태프들을 믿는 것이고 관객들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공연 시작 15분 전이면 온갖 잡념들이 밀려든다. 오늘 그분(공연의 신과 같은)이 '오실까, 안오실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분이 안오시면 내 눈이라도 찔러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다가 '그냥 가서 호랑이를 직접 보고 가족들을 직접 보자'고 결심하게 된다. 그러면 그런 잡념들이 사라지고 안정감이 든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믿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너를 사랑해, 리처드 파커. 너를 온전히 사랑해'라는 대사를 너무 좋아한다. 할 때마다 대상이 조금씩 바뀐다. 호랑이에게 할 때도 있고 파이 역을 연기중인 내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도 있고 박정민이라는 인간 자체에게 할 때도 있다. 한번은 호랑이가 쓰러져 있는 장면에서 몸 안에 있는 배우 친구가 보이더라. 그럴 땐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건다. 2시간동안 너라는 배우가 고생이 많았다고. 제가 느끼는 마음의 흐름이나 다른 배우들이 느끼는 흐름이 비슷하다.

- 퍼펫 티어 연기자들의 연기를 보며 어떤 소감을 가지나.
▶ 호랑이 연기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저 친구들은 괜찮을까. 허리가 괜찮을까' 싶다. 호랑이 가죽 안으로 들어가야 해서 작은 여자 배우들이 들어간다. 그 안이 너무 좁으니까 그렇다.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다. 안쓰럽고 호랑이를 볼 때마다 팀원들이 걱정되는 마음이 가장 크다. 공연 전 백스테이지에 가서 호랑이 인형을 꼭 보고 나온다. 오늘 이 친구가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도 없고, 표정도 없고 살아있지 않은 그 친구가 결국 내 감정 상태대로 무대 위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살아있는 생명체로 다가오기 시작하니 매번 볼떄마다 신기하다. 그런 인형이 호랑이가 돼서 나에게 감정을 선물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호랑이와 호흡하는 것은 테크닉적으로 볼 때 세 명의 사람과 호흡하는 거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호랑이 안에 있는 배우 친구들이 더 힘들지 않겠나. 연출자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파이는 호랑이에 감정 불어 넣는 네번째 퍼펫 티어다'라고 하셨다. 상황을 만들고 감정을 함께 만든다. 그런 호흡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결과물이 이 '라이프 오브 파이'다. 호랑이 팀이 3개 팀인데 호랑이 성격이 다 다르다. 첫 등장할 때와 저와 호흡할 때 A팀은 아주 섬세하고, B팀은 정말 우악스럽고, C팀은 너무 감정적이다. 그때 그떄 만나는 호랑이가 다른 것도 신기하다. 처음에는 이 팀별로 다르다는 사실도어려웠다. 그런데 다 적응이 되니 호랑이가 보이더라. 그 전에는 신체 훈련을 한 것에 가까웠다.
- 영화 '기적'에서도 그랬지만 소년 연기를 할 때 특히 배우로서의 박정민이 빛나 보인다. 소년 파이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이 있나.
▶어린 척을 하면 더 나이 들어 보인다. 그런 외양적 소년 연기에 집착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파이가 어리긴 어렸겠지만 제가 17살 떄도 키나 몸이 똑같았을 거고 말투만 달랐었다. 그때도 어린아이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 왔을 떄 인물이 선택하는 것과 행동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저 친구는 아이구나'라고 관객들이 판단하실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소년의 외양에 대해 생각을 안했더니 너무 아저씨 같은 추임새들이 나오더라. 저도 곧 40을 앞두고 있고 아저씨들과 많이 지내고 하다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어느 날 동료들이 떼지어 저에게 와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한국 협력 연출자님도 '정민아, 그런 것도 좋지만 나이 들어 보이는 것 같다'며 어른 같은 행동을 다 없애주셨다. 연출님이 저의 속도나 방향 포지션 등 외적인 것들에서 어린 아이가 움직이는 에너지를 주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셨다. 조금 더 펄떡펄떡 뛰어다니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소년이기때문에 먹을 수 있는 마음과 호기심을 표현하려 했다.

- 파이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카톨릭을 모두 수용하는 소년이다. 원작 소설이나 이안 감독의 영화도 다종교를 믿는 부분에 대해 비중 있게 다뤘다. 이번 작품을 통해 종교에 대한 생각이 바뀌거나 한 것이 있나.
▶ 파이가 이 종교도 믿고 저 종교도 믿으며 신에 의지하고 다양한 선택을 한다. '파이 이야기' 원작이나 영화에 이어 연극 또한 굉장히 종교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저는 종교가 삶에 없는 사람이다. 종교에 대한 생각을 크게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뭘 믿는걸까'라고는 생각해 봤다. 그런데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사람들이 왜 종교를 가지는지 일정 부분 알게 됐다. 이 공연을 통해 파이가 살기 위해 신께 의존했다고 생각한다. 파이의 생존기이다. 망망대해에서 호랑이와 함께 227일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 친구가 믿는 신이 있었기에 그때 그때 찾아오는 고난과 행운, 이런 모든 것을 다 신의 뜻으로 돌리고 의지하며 살아갔다고 생각한다.
일본 운수 회사 조사관에게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와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성경과 법전, 코란 등과 같다고 생각했다. 성경책을 읽다가 '이게 말이 되나'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말이 또 안되면 어때'라고 생각하게 됐다. 믿어야만 살 수 있다면 믿는 것이 당연하다. '파이 이야기' 자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원작과 연극이 조금 더 닿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 오랜만의 연극 도전 자체가 큰 화제가 됐다.
▶ 저는 연기하는 제 자신을 보여주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다. 카메라가 딱 돌지 않으면 연기를 잘 못하겠다. 그 순간만 나한테 허락되는 시간 같다. 리허설을 한다거나 연기를 한다거나 할 때 내가 남인 척 행동하는 것이 부끄럽다. 카메라가 돌고 내가 남인 척 연기했을 떄 괜찮다고 다들 인정해주니 업으로 하고 있는건데 사실 연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극을 연습하면서 마음가짐을 조금 바꿔봤다. 저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무대에 특화된 배우들이다. 무대를 굉장히 많이 한 베테랑들이기에 이 앞에서 제가 부끄러울 게 없다. 내가 못해도 상관이 없다. 안도감 같은 게 있다. '한번 해볼까'라고 하면 제가 먼저 달려나가서 해보고 했다. 빼지 않았다. 연습할 때 이런 제 자신을 보며 신기하다. 평소에는 할 때 하고 안 할 때는 안하는 사람이었는데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먼저 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고 발전적 행동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앞으로는 좀 덜 부끄러워 해볼까'하는 마음도 생겼다. 저에게는 고무적 사건이다.
- 인간 박정민의 매일의 미션은 무엇인가.
▶ 저 또한 늘 하루 하루 생존하려고 살아간다. 그때 그때 재미있는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꼭 얻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 토론할 꺼리만 얻어가셔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진짜일지 유추해보시면 좋겠다. 가끔 억울한 게 무대에서 목에 피를 토하며 해도 사람들이 호랑이 이야기만 해서 억울한 적도 있다. 전에 못봤던 연출적 요소, 바닥 영상의 연출, 사람들이 구현하는 동물들에 대한 신기한 체험을 하고 돌아가시면 좋겠다. 믿으려고 하면 꽤나 마법같은 순간들 체험하시게 될 거다.
- 공연을 보고 응원해준 지인들 중 가장 힘이 됐던 사람은.
▶ 황정민 선배님이 프리뷰를 보고 가셨는데 첫공연 2시간 전에 전화를 하셨더라. 제가 '프리뷰도 보셨는데 첫공날 무슨 전화를 하셨어요?'라 물었다. 황 선배님 말씀이 "내가 본 프리뷰 공연이 네가 한 것 중 가장 좋았다. 오늘은 그때만큼 잘 할 수 없을테니 마음껏 연기해라"고 하시더라. 사실 저 자신도 첫공은 프리뷰때만큼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황 선배님 말씀을 들으니 오히려 큰 용기가 됐다. 프리뷰 때는 긴장도 크고 자극도 더 되기에 더 펼쳐지는 것이 있었을텐데 첫공에서 그날만큼 새로운 것이 안나올 가능성도 컸는데 오히려 그런 말씀을 들으니 용기가 되고 기분이 좋더라.
- '라이프 오브 파이'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려는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키워드로 말씀 드리자면 삶인 것 같다. 어린 아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믿음에 대해 2시간동안 이야기한 것이라고 봤다. 1, 2막을 쭉 이어서 공연을 하다 보면 감정선이 중간에 끊기기도 하고 사건도 끊기기도 한다. 무대 전환이 많기에 몰입이 어려운 상황도 존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저라는 배우가 확 몰입이 되냐면 파이가 거북이를 잡아먹을 때다. 살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버리는 순간, 그리고 자신이 신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정당화하는 순간이다. '나는 믿었기에 살아났다'고 말한다. 그 순간부터 이 공연에 쑥 들어가게 된다. 이 공연의 키워드는 단연코 삶이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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