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청와대 인근 단식농성 노동자 “부모님 걱정할까봐 말 못해”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 내리쬐는 볕은 따뜻했지만 바람은 여전히 찼다. 연휴 내내 이곳을 떠나지 못한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 김금영씨(36)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집 가고 싶어요. 집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하.” 김씨는 지난 11일부터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양명주씨(56), 정모씨(58)와 함께 8일째 단식 농성을 했다.
김씨는 단식 농성 사실을 남편에게만 알렸다고 했다. 그는 “전에 단식했을 때 쓰러진 적이 있어 명절에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다른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했다”며 “농성 중이라 찾아뵙지 못한다고만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설날이었던 지난 17일에도 그는 소금 몇 알과 효소를 탄 물로 하루를 버텼다.
건보공단 상담 업무는 1091가지에 달한다. 신입 상담사가 익혀야 할 매뉴얼만 5권, 2281쪽 분량이다.
매년 바뀌는 건강보험 규정과 정책을 공부하고 시험도 치른다. 그러나 상담 노동자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18~19년 근무한 숙련 노동자도 2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건 신입과 똑같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며 상시·지속 업무 종사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의 상담노동자는 모두 직접 고용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아직이다. 양씨는 “우리 공단에서 일하던 환경미화 노동자들도 모두 정규직이 됐다”며 “콜센터 상담사만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전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보공단도 2021년 상담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이후 건보공단은 ‘수습 기간 적용’ ‘연차 미승계’ ‘개인별 차등 인센티브 제도 도입’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공단은 외국인과 재외국민 노동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도 했다. “외국인이 정규직이 되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영어, 태국어, 베트남어, 우즈베크어 등으로 상담을 맡아온 ‘필수인력’이다. 공단은 지난달 26일 상담 업무를 맡을 하도급 업체 재입찰 공고도 냈다. 양씨는 “공단이 국가보다 더 위에 있는 ‘초초초갑’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정씨는 “비정규직은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나 될 수 있다”며 “사실상 국가가 사용자라면 이런 비정상적인 고용 형태부터 없애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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