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역에서 태어난 게 죄?

주찬우 기자 2026. 2. 1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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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지역 간 경제적 대물림 심화
불평등 바로잡을 획기적 대책 필요

설 연휴 기간 거제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가족여행이긴 한데 이게 단위가 다르다. 이번 여행 인원은 13명에 달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숙소 예약도 어려웠다. 숙소가 대부분 4인 기준이라 10명 이상 대규모 인원을 감당할 방 자체가 적었다. 몇 날 며칠 무수한 '클릭질'을 해 겨우 숙소를 구했다.

이쯤 되면 궁금할 터. 어떻게 13명이 되지? 아버지 형제 중 맨 위 큰고모와 막내 고모가 창원에 산다. 고모네 자식들은 고교 졸업 후 다들 'in 서울'에 성공했고, 취업과 결혼 등을 거쳐 지금도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심지어 막내 고모 딸은 두바이에 있다.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역귀성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고령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고모들은 이번엔 조카들과 여행을 택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4명), 동생네(2명), 부모님(2명), 고모와 고모부(3명), 얼마 전 결혼한 막내 고모 아들 부부(2명)까지 거제에서 신나게 연휴를 즐기고 왔다.

팔십을 넘긴 큰고모는 "자식들이 다들 공부를 잘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한 명이라도 곁에있었음 좋았겠다"고 넋두리를 했다.

여행의 달콤함을 단번에 날려버린 건 한 편의 보고서였다. 한국은행이 최근 낸 '지역 간 인구이동과 세대 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를 보면, 비수도권에 살고 소득이 하위 50%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자녀(36~40세) 10명 중 8명은 여전히 소득 하위 50%에 머문다고 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된 자녀는 수도권 이주를 통해 계층 상승 기회를 얻지만, 고향에 남는 자녀는 '가난의 대물림'을 겪는다는 통념을 입증한 것이다.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고향에 남은 자녀의 소득 상위 25%로의 진입 비율은 과거(71~85년생) 13%에서 최근(86~90년생) 4%까지 하락했다.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당한 의문의 1패였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해묵는 고사가 됐고, '통장에서 용난다'는 말이 맞는 시대가 됐다.

이처럼 지역이 위축된 데 대해 한은은 거점도시 대학의 경쟁력 약화와 더불어, 양질의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구조적 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대안 역시 명확하다. 비수도권 거점대학의 교육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과감한 투자와 지역 산업기반과 일자리 확충을 위한 지원이다. 거주지역에 따른 불평등이 세대를 이어 대물림되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현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정부 등 공공영역의 강공 드라이버가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설날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소원성취'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제가 살아왔던 어둡고 헝클어진 세상을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는 것, 모든 세상 사람이 그 어떤 불의와 부당함에도 고통받지 않고, 누구도 부당하게 남의 것을 빼앗지 못하는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저의 간절한 소원이었다"고 적었다.

대통령이 언급한 어둡고 헝클어진 세상에 '출생이나 거주지역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도 포함되지 않을까. '부동산과의 전면전'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의 다음 카드가 '거주지역에 따른 경제적 대물림' 해결이었음 한다.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출생과 거주지역이 '경제적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이 대통령의 '전력질주'를 응원하는 이유다.

/주찬우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