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편의 귀농을 새로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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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11년 전에 귀농했다.
남편의 귀농은 나에게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남편의 귀농은 우발적인 게 아니었다.
농부의 꿈은 있지만 혼자의 힘만으로는 나아가기 어려우니, 남편보다 먼저 귀농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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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방향성 따른 실천임을 이해해

남편은 11년 전에 귀농했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머님을 홀로 둘 수 없다며 농사지으며 어머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했다. 그때는 아들과 딸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이었다. 나는 "부모라면 아이들 대학은 보내줘야지"라고 했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고등학교까지만 보내면 부모의 책임은 다하는 것이고, 그 이상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거였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역할은 뒤로하고, 오직 어머님만 생각하는 것 같아 서운함이 컸다. 이런 나의 서운함에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고향으로 갔다. 남편의 귀농은 나에게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최근 주역의 중풍손(重風巽)괘를 공부하면서 타향살이를 정리하고 어머님 곁으로 간 남편의 진심과 삶의 태도가 새로이 보였다.
중풍손괘(䷸)는 위와 아래가 모두 바람을 뜻하므로 바람이 잇따라 부는 모습이다. 주역에서 바람은 '공손하다', '순종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바람이 거듭 부는 모습은 '중복된 공손함'을 상징한다. 돌이켜보니 남편의 귀농은 우발적인 게 아니었다. 그는 퇴직하면 시골에 들어가겠다고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주말이면 고향에 가서 농사일을 도우며 일을 배웠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밤에는 귀농학교에 다녔고, 여러 농촌을 찾아다니며 실습도 했다. 직장에서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인생 후반의 삶을 설계하고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농부의 꿈은 있지만 혼자의 힘만으로는 나아가기 어려우니, 남편보다 먼저 귀농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농사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봉감과 매실 농사를 지었다. 귀농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공손하게 따랐는데, 이는 무조건적 복종이 아니라 시골살이에 대한 방향성을 확고히 가지고 적극적으로 실행했던 거다.
대상전에서는 바람이 잇따라 부는 모습을 보고, '군자는 이를 본받아 명령을 거듭 내리고 일을 행한다(君子以 申命行事)'고 한다. 바람이 보이지 않는 데까지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듯이, 이제 남편의 손길이 가가호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가정이 없다. 이웃 어르신들은 텔레비전을 좀 고쳐달라, 병원에 데려가 달라, 농기계를 봐 달라며 남편을 자주 부르신다. 남편은 자기 일을 하다가도 이 부름에 응한다. 귀농 초기에는 귀농학교 선배들의 가르침을 공손히 받는 사람이었다가 지금은 이웃 새내기 귀농인들에게 농사기법을 알려주며 이끄는 선배가 되었다. 농작물을 크게 키워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농법보다 땅을 살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가르치고 체험하게 한다. 먹거리의 자립을 강조하기도 한다. 선배와 후배는 함께 길을 제시하고 비전을 펼치며 서로 순종하면서 적극적으로 일 해나가고 있다.
남편의 귀농생활을 살펴보니, 그는 중풍손괘의 군자가 행하는 '신명행사(申命行事)'를 자신 삶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 가르침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마땅히 써야 할 힘을 올바르게 쓰고 있었던 거다. 귀농한 이유가 오직 어머님만을 위한 결정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뜻을 세우고, 장시간 준비하며 적극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공손한 배움으로 시작해 이제는 후배들을 이끄는 삶을 사는 남편. 요즘 나는 그의 선택을 적극 지지하며 함께 농사일을 하고 있다.
/정명선(인문고전공간 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