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하얀 연기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흐르고, 메인 식재료가 천천히 공개된다. 자막에 '의령메추리'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서울 유명 레스토랑 오너 셰프 이준과 도전적인 감각의 '삐딱한 천재'가 흑백대전에서 맞붙은 그날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메추리'였다. 작은 체구의 새가 미식의 중심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이날 대결에서 화제를 모은 인물은 '삐딱한 천재'였다. 그는 메추리 뼈를 이용해 둥지 형태의 플레이팅을 직접 제작했다. 이름하여 '메추리 둥지'. 단순한 접시가 아니라 요리의 일부였다. 구성은 정교했다. 메추리 가슴살에 브리오슈와 버섯을 곁들이고, 메추리 알 수란으로 마무리했다. 말 그대로 메추리로 시작해 메추리로 끝나는 한 접시였다. 블라인드 1대1 대결 후 심사위원이 안대를 벗는 순간, 승자는 삐딱한 천재로 결정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관심은 한 곳으로 향했다. 이 메추리는 어디서 왔을까.
◇왕메추리…고급 레스토랑들이 찾는다
의령에서 '의령메추리농장'을 운영하는 류배현 대표는 방송 이후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는다.
사실 업계에서는 이미 소문이 돌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의령 리치리치 축제에 온 오세득 셰프가 "조만간 의령 메추리가 흑백요리사2에 나온다"고 귀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유명 레스토랑 오너인 이준 셰프 역시 이곳과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의령 메추리를 사용하는 레스토랑만 20곳이 넘는데. 대부분 고급 레스토랑이다. 특히 '왕메추리'는 전량 레스토랑 납품용이다. 류 대표는 "메추리는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있는 왕메추리는 이곳뿐이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 메추리는 주로 구이용에 그친다. 하지만 의령의 왕메추리는 다르다.
삼계탕은 물론이고 스테이크, 수비드, 한식 보양식까지 활용 범위가 넓다. 체구는 작지만 육질은 탄탄하고 고단백에 기름기가 적다. 성장 기간만 최소 3개월 이상으로, 닭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셰프들은 기꺼이 선택한다. 그는 "그동안 국내에서 구하지 못했던 식재료를 이제는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호텔과 서울·부산 레스토랑에서 사용이 늘고 있으며, 과거 거래가 끊겼던 곳에서도 다시 연락이 오고 있다.
◇60만 수 규모, 도전은 계속된다
의령메추리농장은 약 60만 수 규모다. 전국적으로 개인 농장은 평균 30만 수 수준이며, 300만 수 이상을 운영하는 대형 법인도 있다.
경남에서 자동화 시설을 가동하는 곳은 세 곳 정도. 그중에서도 도내 최대 규모가 의령메추리농장이다. 다만 '왕메추리' 생산은 이곳이 유일하다. 방역은 생명선이다. 차량 소독은 기본이고, 철새 차단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한 번의 질병은 농장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절 직접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직격탄을 맞았다. 외식 산업이 멈추면서 고급 식재료 납품 역시 타격을 입었다. 그 시간을 버텨낸 끝에 지금의 도약이 있다.
그동안 자동화 시스템 전환에는 규제와 허가 문제라는 벽이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려운 구조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경북 칠곡 왜관에 관련 시스템을 갖춘 시설이 문을 열었고, 의령 역시 생산 확대와 시설 확충을 준비 중이다. 현재 자동화 시스템 덕분에 생산성은 높이고, 위생과 품질 관리는 더 정밀해졌다.
이 때문에 류 대표는 반복해서 말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납품 확대가 아니다. 인식의 전환이다.
그는 "오리가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되기까지 10년은 걸렸다. 메추리도 그렇게 갈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외국인들은 메추리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 유럽에서는 이미 고급 식재료로 널리 사용된다. 반면 국내 소비자들은 여전히 '작은 새'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그 벽을 허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3월에는 메추리 요리 경연대회가 준
서울의 미식가들이 선택한 식재료, 셰프들이 다시 찾는 맛, 자동화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농장, 그리고 인식 전환을 꿈꾸는 한 농부의 의지.
이제 의령의 들판에서 자란 작은 메추리는 이제 전국을 향해 날개를 펼치고 있다. 언젠가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의령하면 메추리지."
박성민기자
류배현 의령메추리농장 대표가 메추리가 부화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의령메추리농장의 제품인 의령왕메추리알
류배현 의령메추리농장 대표가 일반 메추리알과 왕메추리알(오른쪽)을 내보이며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