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당원 다수결주의라는 병적 징후

정제혁 기자 2026. 2. 18. 19: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여야에서 논란이 된 일들은 다수결주의라고 부를 만한 정치적 경향과 무관치 않다. 정청래 대표가 불쑥 던진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통합은 당내 반발로 멈춰섰다. 정청래는 합당 반대론에 막힐 때마다 “합당은 당원이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전 당원 투표에 부치면 승산이 있다고 봤을 것이다. 합당 반대로 추가 기울자 ‘전 당원 여론조사’를 제안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다수결주의로 합당을 밀어붙이려다 실패한 것이다.

장동혁 대표는 한동훈을 국민의힘에서 제명한 뒤 친한계 반발이 커지자 전 당원 투표를 통한 재신임을 꺼내들었다. 대표·의원직을 걸겠다고 했다. 장동혁은 12·3 내란을 거치며 가파르게 극우화한 당 기류에 힘입어 당대표에 선출됐다. 그러니 전 당원 투표를 했더라도 쉽게 재신임을 받았을 것이다. 이 뻔한 게임에 참여할 반당권파는 없었고, ‘장동혁 책임론’은 힘을 잃었다. 다수결주의를 무기로 반대파를 억누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사례는 한국 정치에서 다수결주의가 반대 의견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 당원 투표와 같은 다수결주의는 당원주권론, 당내민주주의 확대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당의 주인인 당원들 뜻대로 당을 운영하자’는 데 토를 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숙의·토론·조정·절충·타협과 같은 요소를 생략한 다수결 만능주의는 통합보다는 배제에,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에 친화적이다. 민주주의보다 독재에 가깝다.

민주당이 합당 문제를 놓고 전 당원 투표까지 갔다면 어땠을까. 찬반 진영 갈등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을 공산이 크다. 합당을 둘러싼 갈등이 차기 당권·대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의 맥락을 깔고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장동혁이 전 당원 투표 카드로 ‘한동훈 제명’ 국면을 넘긴 국민의힘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친한계에 대한 징계가 줄을 잇고 있다. 장동혁이 친한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당에서 나가거나 입을 닫으라’는 것이다.

여야의 다수결주의 경향은 강성 당원들 존재감이 커진 것과 무관치 않다. 전 당원 투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건 강성 당원들이다. 이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 세력이 전 당원 투표에서도 이긴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다수결 만능주의가 팽배하면 민심과 당심의 괴리 또한 커진다. 그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장동혁 체제 국민의힘이다. 장동혁은 극우화한 당심을 얻을수록 민심을 잃고 있다. 이 둘을 다 갖는 건 불가능하다. 그럴 때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극우와 한 몸이면서 입으로는 중도보수인 척하는 것이다. 비겁한 변장술, 겉과 속이 다른 양두구육 정치다. 지금 국민의힘 행태가 그렇다.

다수결주의에선 숫자가 힘이다. 그래서 다수결주의는 힘이 정의라는 논리와 멀지 않다. 힘의 논리는 강자의 논리다. 강자의 논리는 애써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선언한다. 김어준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걸 옹호하며 “중요한 건 논리가 아니다. 이해하려고 하느냐, 문제 삼으려 드느냐, 어떤 입장에 서느냐가 후속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혜훈 지명이 옳다고 설득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혜훈 지명을 이해하기로 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서 ‘옳으냐, 그르냐’는 토론은 ‘너는 누구 편이냐’는 추궁으로 대체된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가식일 뿐이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얼마 전 “우리가 사는 세상, 현실 세계는 힘과 무력,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했다. 입장이 논리에 앞선다는 김어준의 말도, 세상은 태초부터 힘이 지배했다는 밀러의 말도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본성 맞은편에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선 안 된다고,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고, 상호존중과 국제법에 따라 국제질서가 유지돼야 한다고 믿는 대항적 성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고, 그런 당위들이 제도와 관행으로 쌓여 만들어진 게 현대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소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걸 진실을 호도하는 기만의 체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기만의 체계가 있어 세계는 공공선의 지평에서 대화할 수 있었다. 세상을 더 인간적으로 만들고 소수자·약자의 권리를 한 뼘 한 뼘 넓힐 수 있었다. 이마저 사라진다면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인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힘의 논리, 강자의 논리가 부끄러움 없이 횡행하는 건 불길한 전환기의 병적 징후인지 모른다.

정제혁 논설위원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