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웅칼럼] 한국인의 아픈 역사 ‘콩’이야기

유화웅 2026. 2. 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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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은 백성의 먹을거리요, 흉년에는 콩을 먼저 구제하라." 조선 시대 조정의 명령이었습니다. 콩은 가난의 음식이 아니라 나라가 인정한 대표적인 굶주림을 해결하는 작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콩은 쌀, 보리, 조, 밀과 함께 5대 곡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콩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기후 변화에도 강한 적응력이 있고,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한 우수한 곡물입니다. 단백질이 풍부하여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하였습니다.

세종 때는 흉년을 맞이할 때면 콩과 보리부터 파종하도록 독려하였으며, 나라에서 종자를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콩은 사람들이 그냥 섭취할 수 없기 때문에 삶거나, 볶거나, 맷돌 등에 갈아서 가공하거나, 발효시켜 장류로 해서 식량으로 하였습니다. 콩의 영양성분은 탁월하여 먹으면 힘이 솟기 때문에 가장 쉽게는 콩죽으로 해서 속성요리로 먹기도 하고, 콩가루, 두부, 콩떡, 콩국수, 콩밥, 콩자반, 콩나물 등과 콩기름,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등 전통저장 식품으로, 단백질 공급원으로 백성의 건강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식품의 영역에서 그 지경을 넓혀 산업과 문화에까지 확산되어 만능 식품이며 국제간의 대상으로 비중도 커가고 있습니다.

재배의 역사가 5천 년 이상이 되는 만큼 인류의 생존을 이어가는 데도 콩의 영향력은 빼놓을 수 없고, 축산의 증식과 장려에는 콩이 필수 사료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는 당(糖)과, 육류 과다섭취 등으로 망가지고 있는 장기와 질병에 심혈관 질환 예방, 콜레스테롤 감소, 혈당 조절, 장 건강 개선, 골다공증 예방, 근육 유지 회복 등 여러 분야에 효능이 있어 건강을 회복 유지하는데 식품 의약계에서 적극 콩 소비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콩이 일제하를 살아간 우리 민족에게는 뼈아픈 비참한 역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일본 식민지하에서 1930년대 중반 이후, 1945년 독립 때까지 일제는 모든 곡식을 일본으로 수탈해갔습니다. 우리 국민은 그야말로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을 하는 고통을 안고 살았습니다. 전 국민이 거지이고, 노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식량을 배급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콩깻묵이라 하는 '대두박(大豆粕)'이었습니다. 콩과 콩기름은 일본이 가져가고, 우리 백성들은 짐승도 안 먹는 대두박을 배급받아 먹었습니다. 끓여도 역한 냄새가 나고, 모래를 씹는 것 같고, 영양 가치는 전혀 없고, 먹은 후에는 설사와 복통을 앓기 일쑤이고, 먹어도 몸은 병이 들거나 수척해가는 현실이었습니다.

대두박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고 비료로나 사용되거나 버려지는 쓰레기에 불과했습니다. 이 배급받은 대두박이라도 먹고 살기 위해 대두박에 물을 많이 부어 죽으로 끓여 식구 수대로 마시기도 하였고, 대두박떡이나 다른 들나물과 섞어 범벅처럼 해 먹었습니다. 상상이 되지 않는 대두박을 먹고 일제하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런 참혹한 시대에 살다가 해방을 맞이하였고 그들이 가족을 이루고 자식을 키워 오늘날이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너 늙어 보았냐? 나는 젊어 보았다"라는 말이 우스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제 그들이 늙었다고 소외시키고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콩의 종류는 수없이 많지만 콩의 아픈 역사 이면에는 그래도 콩에 대한 애정은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 있어, "쥐눈이콩" "홀아비밤콩" "선비장이콩" "아주까리콩" "호랑이콩" 등 우리 조상들의 재치와 유머 감각이 스며있어 웃음을 짓게 합니다.

또 민간에서는 콩에 대한 속담도 많이 있습니다. 불신의 극치를 표현하는데 "콩 가지고 두부를 만든대도 곧이 안 듣는다." 작은 일이 큰일을 저지른다는 말로 "콩 볶다가 가마솥 깨뜨린다"라고 지혜롭게 사용했고, 원인과 결과가 같다는 말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로 은근한 표현을 하는 우리 민족의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태를 풍자하는 말로, 남을 못 견디게 괴롭힌다는 뜻의 "콩 볶듯 한다"라는 말이라든가, 시비를 가려 지나친 간섭을 한다는 말로 "콩 심어라, 팥 심어라"라고 했고, "콩죽은 내가 먹고 배는 남이 앓는다"라며 나쁜 원인을 자기가 제공하고 벌이나 비난은 남이 당한다고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현시대 애국심은 안 보이고 당리당략 권력욕 싸움을 하는 정치집단이 하는 행태를 향한 교훈 중의 교훈은 "콩가루 집안"이라는 잠언 같습니다.

유화웅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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