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집=아파트'라는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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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양 프로그램 '건축탐구-집'을 즐겨 보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집은 단독주택뿐인데 내가 아는 시청자 대부분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중독은 삶의 구현 공간으로서 집이 가지는 의미를 물질적 성공 잣대로 변질시켰다.
정부 부동산정책이 서울 아파트라는 협소한 목표를 넘어 '집은 아파트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겨냥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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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만 돈된다' 경험칙에
다른 선택 엄두 못 내
'주거 창업' 장려책 나왔으면
![[노원명 논설위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18/mk/20260218173006401rdyo.jpg)
EBS 교양 프로그램 '건축탐구-집'을 즐겨 보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집은 단독주택뿐인데 내가 아는 시청자 대부분은 아파트에 산다. 남이 집 짓고 고치는 모습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모양이다. 도시 남자들이 '자연인'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과 비슷하다. 로망은 로망, 현실은 현실. 태반은 시골집을 거저 준대도 그걸 고치고 건사할 엄두를 못 낼 만큼 아파트에 중독돼 있다.
설 연휴 전 에피소드에서 '건축탐구-집'은 아파트 반값으로 서울 수유동 구옥을 사서 리모델링하고, 북아현동 10평 남짓한 땅에 협소주택을 올린 두 쌍의 젊은 부부를 소개했다. 수유동 커플이 집을 찾아온 건축가에게 말했다. "주변에서 너무 많은 만류, 걱정을 했어요. 지금 격려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그 말을 꼭 듣고 싶었습니다." 옆에 있으면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을 만큼 심한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이들은 집이 재산이기에 앞서 삶의 공간이자 내 의지와 취향에 맞춰 굴러가는 소우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에 옮긴 젊은이들이다. 그 전에 천문학적인 서울 집값에 절망했을 것이다. 아파트 값에 절망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대안을 택한 사람은 희귀해서 TV에 나온다. 서울 아파트가 질곡인 것은 비싸서만은 아니다. '똘똘한 한 채'를 쟁취하려는 무한 반복의 선착순 대열에서 이탈하는 순간 주변의 염려와 훈계가 쏟아진다. '나중에 후회한다.' 어지간한 쇠고집이 아니면 이 경험칙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 어렵다.
우리는 아파트를 가졌건, 안 가졌건 아파트에 중독돼 살아간다. 중독의 드러난 증상은 편리성과 환금성에 대한 탐닉이지만 본질은 아파트라는 가치사슬에 편입·상승해야 한다는 조바심이다. 한국의 대학처럼 아파트도 서열로 줄 세워진다. 서울 강남 한강 변 아파트에서 시골 논바닥 한가운데 외동 아파트까지.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강남에 도달하는 것이 한국 중산층이 생각하는 성공 코스다. 그들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아파트 외에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
자아실현 마당이 돼야 할 직업이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 '노동의 소외'라고 한다. 아파트 중독은 삶의 구현 공간으로서 집이 가지는 의미를 물질적 성공 잣대로 변질시켰다. 좋은 아파트는 안전하고 조경이 아름다운 아파트가 아니라 강남에 있는 아파트다. 그 결과 우리는 집으로부터 소외되고 말았다. 다수는 집의 기능과 상관없이 항상적인 박탈감에 휩싸여 살아간다. 30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 동네의 50억원짜리 아파트를 생각하며 실패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인공지능 때문에 취업 길이 좁아진 청년들에게 정부는 창업을 권한다. 당장은 막막해 보여도 창업이 표준 진로가 될 미래가 머지않았다. 정부 부동산정책이 서울 아파트라는 협소한 목표를 넘어 '집은 아파트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겨냥했으면 한다. 아파트 대신 구축 리모델링을 택한 소수 모험자들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그리하여 더 많은 젊은이가 그 길을 가게 만드는 '주거 창업' 유도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비강남이 강남 아파트의 열등재 단지가 아니라 다양한 주거 양식 실험장이 될 수는 없는가.
왜 한국의 도시는 아파트 아니면 다세대주택뿐이어야 하는가. 서울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세계 어느 도시도 이렇지 않다. '어디 사세요'가 상대의 아파트 '서열'을 염탐하는 불편한 질문이 아니라 주거 형태를 묻는 담백한 질문이 되는 사회도 있다. 이웃집의 조경 대신 시세를 시샘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정답일 리 없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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