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사진적 사실주의,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강현철 2026. 2. 18. 17:1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현철 논설실장


비오는 한 겨울의 오후, 부부로 보이는 부르주아지 남녀 한 쌍이 우산을 쓴 채 걷고 있다. 행인들은 고개를 떨구고 걸음을 재촉한다. 빗물이 고여 반짝이는 거리는 한 장의 사진처럼 생생하다. 인물 표정과 의상, 파스텔 톤의 노랑과 핑크의 건물 표현은 매우 세밀하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의 대표작인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1877)이다.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Rue de Paris, temps de pluie). 1877년. 캔버스에 유채. 세로 212.2 x 가로 276.2 cm . 미국 시카고 미술관 소장.


19세기 후반 파리의 낭만과 근대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현대적으로 재개발된 파리의 풍경을 사실적이고 대담한 구도로 담아낸 걸작으로 꼽힌다. 1980년 영국 BBC방송 선정 100대 걸작 중 하나로, 근대화된 파리의 거리를 마치 사진처럼 포착해 보여준다. 영화나 연극에서 장면 속 배치를 중시하는 미장센 연출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파리 북부 생라자르역 근처의 더블린 광장이 배경이다. 카유보트는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오스만 남작이 중세의 비좁은 골목길, 낡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건설한 우아하고 세련된 신도시의 모습을 담았다.

1839년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의 다게로타이프(은판 사진술) 완성 이후 퍼지기 시작한 사진의 구성은 구도에서도 드러난다. 화면 중앙의 가로등을 기점으로 좌우를 나누고, 인물들을 스냅사진처럼 잘라낸 듯한(Candid shot) 현대적인 구도를 채택했다. 대각선 구도를 활용, 거리의 깊이감을 극대화했으며 비가 갠 후 젖은 도로, 우산을 쓴 세련된 파리 시민들의 일상을 인상주의 화풍에 사실주의적 요소를 결합해 묘사했다.

카유보트는 작품 속 배경의 중앙점을 부풀게 해 카메라 렌즈의 효과를 재현했다. 또 작품 속 특정 피사체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식으로 카메라의 포커스 효과도 활용했다. 중앙의 건물은 소실점이 두 개인 이른바 이점투시 화법을 적용했다. 자르기(Crop, 그림 경계에서 피사체가 잘림)와 ‘줌인’ 기법 또한 사진에 대한 그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 ‘비오는 날, 보스턴’ (Rainy Day, Boston). 1885년. 캔버스에 유채. 66.3 x 122 cm. 톨레도 아트 뮤지엄 소장.


작품 속 분위기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대다수 인물들이 홀로 서 있고 그 인상도 우울한 모습이다. 거리를 차분히 거닌다기보다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고, 각자 뭔가에 골몰한 모습이다. 에드워드 호퍼와 같은 미국 사실주의자들에게서 풍기는 독특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미국 시카고 미술관은 “19세기 말 도시생활을 담은 위대한 그림”으로 평가한다. 미 인상파 화가인 차일드 하삼의 ‘비오는 날, 보스턴’(1885)는 카유보트의 이 작품과 거의 일치할 정도로 닮았다.

카유보트는 화가이면서 미술품 수집가이자 예술 후원자, 군인, 법학자, 요트 선수였다. 그가 없었다면 모네나 르누아르도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주변 작가들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이에르, 비’ (L‘Yerres, effet de pluie). 1875년. 캔버스에 유채, 81×59cm. 미국 인디애나대 블루밍턴 에스케나지 미술관 소장.


원조 파리지앵인 카유보트는 부와 능력을 함께 쥔 금수저였다. 법대 졸업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화가가 된다. 사업가이자 법관인 부유한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유산을 동료 화가들을 돕는 데 사용한다. 그는 187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화단에 뛰어들었다. 전통에 얽매인 ‘살롱 예술’에 싫증을 느낀 그는 새롭게 떠오르던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했다. 집안의 재력을 바탕으로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의 작품을 사주며 후원하고, 전시 공간을 제공했다. 총 8번 열렸던 인상주의전 중 네번을 그 스스로가 기획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마루 깎는 사람들’ (Les raboteurs de parquet · The Floor Scrapers). 1875년. 캔버스에 유채. 102 x 146.5 cm. 오르세 미술관 소장.


카유보트의 그림은 사진을 찍듯 파리의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한가롭게 레저를 즐기거나 차담(茶談)을 나누고, 알몸으로 몸을 정돈하는 남성들도 그렸다. 아파트 마루 바닥을 손질하는 노동자들의 근육 움직임 하나하나를 묘사한 ‘마루 깎는 사람들’(1875)에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1876년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전시된 데뷔작이다. 카유보트는 장프랑수아 밀레와 귀스타브 쿠르베, 그리고 에드가 드가와 마찬가지로 회화에 내재된 연극성을 줄이고 존재하는 그대로, 자신이 보는 대로 현실을 그리려 했다. 그의 스타일과 기법은 작품마다 상당히 다양하다. 프랑스 남동부 이에르에서 그린 그림들은 한가로운 강에서 즐기는 보트 타기와 낚시, 수영, 그리고 그의 시골 집 주변의 가정 풍경에 초점을 맞춘다. 르누아르를 연상시키는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인상주의 기법을 자주 사용해 시골의 고요한 자연을 표현했는데, 이는 도시 풍경화의 평평하고 부드러운 붓놀림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카유보트는 요트 경주를 준비하는 소박한 뱃사람 차림의 그림을 남기고 1894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폐울혈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그의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후손들이 그의 컬렉션을 꺼내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사진을 연상케 하는 표현 기법과 폭넓은 주제, 초기 인상주의의 성장을 견인했던 행보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해 미국의 시카고 미술관과 킴벨 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미술 평론가인 정연복씨는 “예술 후원자로서의 역할에 가려져 화가로서의 재능은 잘 알려져있지 않았던 카유보트는 1970년대 미국 컬렉셔너들의 노력으로 재발견됐다”며 “에드워드 호퍼를 비롯한 미국의 리얼리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