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중 '격자 암호' 1개만 적중… IBM 기술 낙관론 빗나간 이유 [IBM 예언 8년 후③]

이혁기 기자 2026. 2. 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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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설특집 
2018년 IBM이 예고한 
5대 혁신 기술 현주소 3편
5개 중 4개 기술은 상용화 실패
격자 암호화만 활발하게 도입 중 
‘기술 낙관론’ 냉정하게 따져봐야 

# 우리는 '8년 전 IBM이 조명했던 5가지 기술의 현주소' 1ㆍ2편을 통해 IBM이 2018년 소개한 '5대 혁신 기술' 중 3가지(크립토 앵커ㆍAI 로봇 현미경ㆍ편견 없는 AI)를 점검했다. IBM은 이 기술들이 인류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 확신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경제성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기술의 근본적인 한계를 풀지 못해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1편: 100원짜리 소형 컴퓨터는 왜 실패했을까
2편: '편견 없는 AI'는 인간의 허상이었다

# 그렇다면 남은 두 기술(양자컴퓨터ㆍ격자 암호화)은 지금 우리 곁에 와 있을까. 글로벌 IT 거인의 빗나간 예언이 시사하는 건 뭘까. 설 특집 '5대 혁신 기술 현주소' 마지막 편이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시장성이 없으면 상용화하기 어렵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IBM이 발표한 '5 in 5(향후 5년 내 세상을 바꿀 5가지 기술)' 보고서는 기술 낙관론의 정점을 보여줬다. 5가지 기술이 위변조와 보안, 환경오염 등 인류가 짊어지고 있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낙관론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1ㆍ2편에서 살펴봤듯, 하드웨어 영역의 혁신 기술들은 '가성비'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제작 비용이 100원에 불과한 위변조 방지 기술 '크립토 앵커'는 유통 시장에서 공짜나 다름없는 바코드ㆍQR코드에 밀려났다. 바다 위를 표류하며 환경오염 정보를 수집하는 'AI 로봇 현미경'은 그보다 한차원 높은 '하늘'을 누비는 드론과 인공위성의 효율성을 당해내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영역인 AI 역시 마찬가지였다. IBM은 5년 내에 인종ㆍ성차별 없는 '편향 없는 AI'가 등장할 것이라 예고했지만, 2026년의 AI는 여전히 인간의 편향성을 답습하고 있다. 오히려 논란을 피하기 위해 민감한 단어를 아예 지워버리는 꼼수만 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면 남은 두 기술, 미래 컴퓨팅의 핵심인 '양자 컴퓨터'와 보안 기술 '격자 암호화'는 8년이 흐른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나씩 짚어보자.

■ 기술➃ 양자 컴퓨터= 양자 컴퓨터는 양자(Quantum) 역학을 활용해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꿈의 컴퓨터'다. 사람의 눈으론 볼 수 없는 미시 세계에서 나타나는 양자 역학을 활용해 매우 방대한 데이터도 금세 풀어낸다.[※참고: 양자 역학이란 원자나 전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아주 작은 입자들의 행동 방식과 에너지 상호작용을 다루는 현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이다.]

업계에선 양자 역학 기술이 상용화하기만 한다면 물리학 연구부터 신약 탐색, 암호 해독 등 전반적인 인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양자 컴퓨터의 복잡한 구조다. 무엇보다 기술의 핵심인 '양자 현상'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게 쉽지 않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양자 컴퓨터의 연산 기본 단위 '큐비트(Qubit)'는 주변 환경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세한 온도 변화나 자기장, 심지어 아주 작은 진동 같은 외부 자극만으로도 큐비트의 양자 상태가 쉽게 깨져버린다. 이 때문에 양자 컴퓨터가 정상 작동하려면 외부의 모든 간섭을 차단하고 우주 공간보다 더 차가운 절대영도(-273도) 수준의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사진 | 뉴시스]
그런데도 IBM은 8년 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5년 내 대부분의 대학교와 일부 고등학교에서도 양자 컴퓨터를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물리적 제약이 아무리 까다롭더라도, 5년 안에는 기술 발전 속도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게 근거였다.

IBM의 예언대로 양자 컴퓨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긴 했다. 무엇보다 큐비트의 오류율이 크게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양자 컴퓨터에선 계산 1000번당 1번꼴로 오류가 발생한다. 확률로 따지면 오류율은 0.001%인데, 지난해 7월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이를 0.0000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670만번의 계산 중 오류가 한번 발생하는 수준이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서인지 관련 시장도 꾸준히 성장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는 양자컴퓨팅 시장 규모가 2023년 8억8540만 달러(약 1조2792억원)에서 2032년 206억2070만 달러(약 29조7927억원)로 연평균 34.8%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일반 대중이 체감할 수 있는 상용화 단계엔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IBM의 예언처럼 고등학교 교실에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려면 양자 상태 유지를 위한 극저온 냉각 시스템, 정밀 제어 장치 등 특수 장비가 필요한데, 일반 고등학교에 이런 장비를 들여놓긴 쉽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맥킨지는 2024년 4월 보고서에서 "결함이 없는 완전한 양자 컴퓨터가 등장해 상업적으로 광범위한 가치를 창출하는 시점은 2035년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내다봤다.

■ 기술➄ 격자 암호화=IBM의 5가지 예언 중 유일하게 상용화에 성공한 건 보안 분야다. 2018년 당시 IBM은 복잡한 수학 문제를 '격자(lattice)' 속에 데이터를 숨기는 '격자 암호화' 기술에 주목했다. 격자는 모눈종이나 바둑판 무늬처럼 가로축과 세로축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교차하는 2차원 형태를 뜻한다.

이를 1000차원까지 확장한 것이 '고차원 격자'인데, 이 공간에 약간의 오차를 섞어 답을 넣어두면 요구 계산량이 폭증해 일반 해커는 물론 양자 컴퓨터의 해킹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다.

현재 이 기술은 '차세대 양자 암호(PQC)'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일반인이 피부로 느끼진 못하지만, 국가 안보망이나 금융 전산망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핵심적인 빗장 역할을 하고 있다. 더스틴 무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박사는 2024년 8월 'N2K사이버와이어' 인터뷰에서 NIST가 격자 기반 암호화 알고리즘을 최종 표준으로 선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 8년간의 평가 과정에서 격자 기반 알고리즘이 포스트 양자 암호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영역으로 드러났다. 성능도 뛰어나고, 보안성도 뛰어나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지금까지 IBM이 2018년 제시했던 5가지 혁신 기술의 8년 후를 추적해 봤다. 종합해 보면 사실상 '격자 암호화' 외에는 대중화했거나 우리 삶을 바꿨다고 말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크립토 앵커와 AI 로봇 현미경은 대중화하지 못했고, 편향 없는 AI와 양자 컴퓨터는 아직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5개 기술 중 1개만 오늘날 활발하게 쓰이고 있으니, 적중률이 20%에 그친 셈이다.

이 성적표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기술의 생존은 '혁신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당 기술이 시장의 수요와 경제성을 충족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때문에 몇몇 기업이 '조만간 세상이 바뀐다'면서 내놓는 신기술의 미래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작든 크든 투자를 고민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팔리지 않는 발명은 하고 싶지 않다. 시장에서 팔린다는 사실이 곧 그 발명이 유용하다는 증거다. 유용해야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1편에서 IBM의 빗나간 예언의 함의含意를 탐구하겠다고 했다. 이것이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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