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심제 논란’ 재판소원 도입 두고… 대법, ‘정면 반박’한 헌재에 ‘재반박’

대법원이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이른바 ‘재판소원’ 도입 움직임과 관련해 “현행 헌법에 부합하지 않고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18일 다시 재확인했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2일 출근길에 재판소원제 도입을 두고 “그 결과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문제”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사안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자 헌법재판소는 이튿날 자료를 내고 대법원의 ‘위헌’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에 대법원이 이날 Q&A 형태의 참고자료를 내고 쟁점별로 반박한 것이다.
대법원은 자료에서 ▲헌법상 허용 여부 ▲국민 피해 ▲헌재의 사건 처리 역량 ▲공론화·숙의 필요성 등 네 갈래로 견해를 제시했다.
◇ “현행 헌법은 설계 단계부터 재판소원 인정 안 해”
헌재는 확정 재판도 공권력 행사로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구제할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판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를 다툴 제도적 통로가 사실상 막혀 있어 재판소원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헌법 111조의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심판”을 근거로, 재판소원 허용은 입법자 재량 영역이라는 취지도 내놨다. 헌재는 입법·행정뿐 아니라 사법 작용도 기본권 관점에서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는 틀을 강조한다.
이에 대법원은 1987년 헌재 신설 당시부터 재판소원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로 헌법이 설계됐다고 밝혔다. 헌법이 사법권을 법원에 부여하고, 헌재는 위헌법률심판·탄핵심판 등 열거된 사항만 관장하도록 권한을 나눴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어느 기관의 재판을 다른 기관이 다시 심사하는 구조를 헌법이 예정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헌재가 헌법의 유일한 최종 해석기관”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과 헌재는 각자 다른 단계에서 최종 해석기관이라는 취지다.
독일식 모델을 둘러싼 시각차도 부각됐다. 대법원은 헌재가 재판소원 모델로 거론하는 독일과 달리, 우리 헌법은 법원과 헌재를 독립된 기관으로 두고 헌법재판관은 ‘법관’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헌법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독일 제도를 전제로 한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 “재판소원으로 기본권 보호? 오히려 피해 줄 수도”
헌재는 재판소원이 상고처럼 사실관계 재심리나 법률관계 전반을 다시 가리는 절차가 아니라, 재판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를 한정해 심사하는 제도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4심제’라는 규정은 심사의 대상과 범위를 혼동하게 만든다고 본다. 지정재판부 사전심사 등으로 부적격 청구를 걸러 남용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도 편다. 헌재는 ‘기본권 심사’로 범위를 한정하면 통상 상소와 기능적으로 구별된다고 설명한다.
반면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이 오히려 기본권 보호에 역행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헌법 문언이 추상적이어서 해석 재량이 커질 수 있는 만큼 권한을 한 곳에 집중시키기보다 합리적으로 분산하는 편이 기본권 보호에 유리하다는 논리다. 헌재가 입법·행정을 통제하듯 사법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법권 통제는 헌법상 권한 배분과 재판제도의 성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 피해’ 항목에서는 ‘4심제’ 논란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사유와 헌법 규정이 추상적인 만큼 패소 당사자가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며 헌재로 향할 가능성이 커지고, 헌재가 대법원 판결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판결을 취소’하는 구조라면 실질적으로 상고심 위에 심급을 하나 더 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국민이 ‘4심제’의 ‘희망 고문’과 ‘소송 지옥’에 빠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취소 재판과 후속 판결, 다시 제기되는 재판소원이 반복되면 재판 횟수가 늘고 소송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취지다.
◇ “지금도 느린 헌재, 1.5만건 재판소원 감당하겠나”
헌재의 사건 처리 역량을 둘러싼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헌재는 사건 폭증 우려는 요건을 엄격히 두고 초기 단계에서 신속히 각하하는 장치로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 기본권 구제는 속도나 효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한다. 접수된 사건이 곧바로 본안 심리로 이어지지 않도록 ‘문턱’을 설계하면 부담이 관리 가능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헌재가 9명의 재판관과 70여명의 헌법연구관 체제로 연간 약 2500건을 처리하고 평균 처리 기간이 2년을 넘는 상황에서,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사건이 대폭 늘어 헌법재판이 지연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대법원 판결에만 재판소원이 가능하더라도 예상 사건 수는 1만5000건 이상”이라는 추산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결론적으로 재판소원이 “개헌 사항이라고 할 정도로 사법제도의 근본적 변화”에 해당한다며 공론화와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헌법의 기본 이념과 설계를 법률 개정만으로 쉽게 바꾸기 어렵고, 제도 변경을 추진하려면 국민적 동의와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국회·법원·헌재 및 소송절차 전문가가 참여하는 논의기구 등을 통해 충분한 검토와 협의를 거쳐야 국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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