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완의 백업도 좋다"며 잔류 호소했지만...결국 방출된 레전드 포수는?

2026. 2. 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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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자유계약선수(FA)로 SK 와이번스와 계약한 박경완(가운데)이 입단식에서 조범현(오른쪽) 감독, 안용태(왼쪽) 사장과 손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필자 제공
'KBO 최고 포수' 김동수-박경완의 얄궂은 운명<상>

2002시즌을 6위로 아쉽게 마감한 SK 와이번스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었다. 2000년 창단 이후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해 구단 입장에서는 감독 교체가 불가피했다. 결국 구단은 강병철 감독을 퇴진시키고, 조범현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를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조범현 감독은 은퇴 후 쌍방울 레이더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배터리 코치를 맡으며 ‘포수 조련사’로 명성을 쌓은 지도자였다. 그는 OB 베어스 창단 멤버 시절부터 함께 뛰었던 김경문 감독과 더불어 한국 프로야구 포수 계보를 양분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조범현 감독이 길러낸 대표적인 포수는 박경완, 진갑용, 장재중이었다. 반면 김경문 감독은 김태형, 홍성흔, 양의지 등을 키워내며 또 하나의 계보를 형성했다. 조범현 감독이 스몰볼 스타일에 가까웠다면, 김경문 감독은 빅볼 스타일에 가까웠다. 두 지도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 프로야구 포수 육성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

조범현 감독의 또 다른 강점은 데이터 활용 능력이었다. 이는 고교 시절 은사였던 김성근 감독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였다. 체계적인 분석과 수치 기반 판단을 중시하는 지도 방식은, 당시 ‘데이터 야구’를 구단의 방향성으로 삼고 있던 SK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포수 육성 능력과 데이터 야구라는 두 가지 장점은 SK가 조범현 감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2002시즌 마치고 SK 사령탑 된 조범현...애제자 박경완 영입

조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자신의 전공 분야인 포수진 강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구단에 요청한 카드가 박경완이었다. 박경완은 2002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상황이었다. 쌍방울 시절 배터리 코치였던 조 감독은 박경완을 직접 지도하며 리그 정상급 포수로 성장시켰고, 두 사람 사이에는 지도자와 선수 이상의 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었다. 조 감독에게 박경완은 자신의 야구를 구현할 수 있는 핵심 퍼즐과도 같은 존재였다.

포수 박경완(왼쪽)의 자세를 잡아주는 조범현 감독. 쌍방울에서 코치와 선수로 만난 둘의 인연은 SK 와이번스에서 감독과 주전포수의 관계로 이어진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당시 박경완의 원소속 구단이던 현대 유니콘스는 모기업인 현대그룹의 경영 악화로 FA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처지였다. 자연스럽게 SK는 큰 경쟁 없이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2년 12월 28일, SK는 박경완과 3+1년 총액 23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이 금액은 당시 역대 FA 계약 규모 2위였다. 1위는 2001년 삼성과 계약한 양준혁의 4년 총액 27억2,000만 원이었다.

조 감독은 마침내 자신의 야구를 실현할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박경완 역시 계약 직후 “쌍방울 시절 나를 키워준 조범현 감독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한국시리즈 첫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밝히며 각오를 다졌다.


박경완의 합류로 입지 좁아진 주전포수 김동수

조 감독과 박경완이 합류하면서, SK에서 한 선수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지고 있었다. 2002년 당시 SK의 주전 포수였던 김동수였다. 김동수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포수였다. 1990년 LG 트윈스 창단 멤버로 데뷔해 두 차례나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골든글러브를 여섯 차례 수상했다.

LG 트윈스 시절의 김동수. 그는 LG의 주전포수로 2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KBO 리그의 대표적 공격형 포수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FA 제도가 처음 도입된 2000년, 김동수는 3년 간 총액 8억 원을 받고 LG를 떠나 삼성으로 이적했다. 당시 LG와 삼성은 전자업계 라이벌 관계였기에, 이 이적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필자는 당시 LG 트윈스 홍보팀에 근무하며 그의 이별을 지켜봤고, 적잖은 아쉬움을 느꼈다. 이로부터 약 2년이 지난 2001년 12월 16일, 김동수는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에서 SK로 이적했다. 김동수는 삼성에서 2시즌만 뛰고 다시 짐을 싼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하루 뒤인 12월 17일 SK 구단 사무실에 첫 출근을 했다. LG가 아닌 SK에서 다시 만난 김동수는, 개인적으로도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FA로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김동수의 커리어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LG에서는 조인성의 위협을 받았고, 삼성에서는 진갑용에게 밀렸다. SK 이적 첫해였던 2002시즌 성적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95경기 출전, 타율 2할4푼3리, 11홈런 32타점. 공격형 포수로서의 명성에 비하면 아쉬운 기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수 조련사’ 조범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김동수를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했다. 조 감독 부임 후 11월 1일부터 미국 플로리다에서 마무리 훈련이 진행됐는데, 김동수는 이 명단에서 제외됐다. 아직 박경완 영입이 확정되기 전이었음에도, 김동수는 이미 조 감독의 구상에서 빠져 있었다. 구단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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