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소설상 지원 2배 늘어...새 문학 장르 되나?

정도영 기자 2026. 2. 1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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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째를 맞은 기후소설상(Climate Fiction Prize)에 올해 지원작이 2배로 늘었다. 스릴러부터 SF, 가족 드라마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소설이 이제 하나의 독립된 문학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다. 기후위기를 다룬 작품이 더 잘 팔린다는 연구도 나왔다.
영국 기후소설상 운영위원회가 최종후보작 12편을 공개했다. (사진 Climate Fiction Prize 홈페이지)

12편의 최종 후보작 공개..."장르 다양성 눈에 띄어"

영국 기후소설상 운영위원회가 최종후보작 12편을 공개했다. 이 상은 지난 1년간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중 기후위기를 다룬 최고의 작품에 수여된다. 최종후보작은 '롱리스트(longlist)'라고 불리는데, 이 중에서 더 좁혀진 '쇼트리스트(shortlist)'가 3월에 발표되고 5월에 최종수상작 한 편이 결정된다. 상금은 1만 파운드(약 1800만 원)다.

올해 최종 후보에 오른 12편은 인도, 우크라이나, 캐나다, 호주, 미국, 영국, 중국 등 12개국 작가들의 작품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장르의 다양성이다.

호주 작가 로비 아넷(Robbie Arnott)의 『Dusk』는 태즈메이니아 고원을 배경으로 인간과 야생의 관계를 탐구하는 환경 스릴러다. 그레이스 찬(Grace Chan)의 『Every Version of You』는 2080년대를 배경으로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커플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후재난이 빈발하는 현실로 더 깊게 들어간 작품도 있다. 수잔나 콴(Susanna Kwan)의 데뷔작 『Awake in the Floating City』는 기후재난으로 침수된 샌프란시스코를 그렸다. 생존자들은 건물 옥상에서 살아간다. 디스토피아 SF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잦아지는 극한 기후상황과도 닮아있다.

운영위원회는 "12편의 소설이 매우 다양하지만, 자원착취 시스템, 인공지능, 가상현실, 그리고 황폐해진 자연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기후소설상 최종 후보 12편은 3월 쇼트리스트 발표를 거쳐 5월 최종 수상작이 결정된다.

2007년 탄생한 'Cli-Fi(클라이파이)', 이제 독립 장르로

기후소설은 영어로 'Climate Fiction', 줄여서 'Cli-Fi(클라이파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2007~2008년 미국의 환경운동가 댄 블룸(Dan Bloom)이 만들었다. 2013년 4월 이후 영미 문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후소설상은 2024년 영국 헤이 페스티벌(Hay Festival)에서 처음 시작됐다. 기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레오 바라시(Leo Barasi), 여성문학상 전 매니저 로즈 고다드(Rose Goddard), 과학 커뮤니케이터 임란 칸(Imran Khan) 등이 함께 만들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연극 평론가 아리파 아크바(Arifa Akbar)가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소설가와 기후과학자 등이 심사위원단에 참여했다.

심사위원장 아크바는 "올해 출품작 전체가 기후위기라는 주제를 엄청난 상상력의 폭과 풍부함으로 다뤘다"며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작가들이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롱리스트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1회 수상작은 영국계 나이지리아 작가 아비 다레(Abi Daré)의 『And So I Roar』다. 나이지리아에서 기후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인물들을 통해 환경 문제와 사회 문제의 교차점을 탐구한 작품이다.
(사진 Climate Fiction Prize 홈페이지)

"기후위기를 다루면 더 잘 팔린다"

기후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늘어나는 데는 경제적 이유도 있다. 미국 라이스대학의 매튜 슈나이더-메이어슨(Matthew Schneider-Mayerson) 교수 연구팀과 비영리단체 '굿에너지(Good Energy)'는 2013~2022년 사이 인기 영화 250편을 분석했다.

이들은 영화 속 기후위기 묘사를 측정하기 위해 '기후현실점검(Climate Reality Check)'이라는 테스트를 개발했다. 영화 속 세계에 기후위기가 존재하는지, 등장인물이 그것을 인식하는지 두 가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250편 중 기후위기가 존재하는 영화는 32편(12.8%)에 불과했다. 등장인물이 이를 인식하는 영화는 24편(9.6%)뿐이었다.

하지만 250편 중 극장에서 개봉한 220편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분석한 결과, 기후위기가 존재하는 세계를 그린 영화는 그렇지 않은 영화보다 평균 8% 더 높은 수익을 올렸다.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10% 더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기후를 다루는 영화가 적긴 하지만, 다룬 영화는 더 잘 팔린다는 의미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도 나타났다. 2013~2017년에는 8.8%의 영화만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2018~2022년에는 17.6%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슈나이더-메이어슨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이 화면에 반영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며 "기후위기가 점점 더 명백해지면서, 기후변화를 포함한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고 수익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굿에너지의 안나 제인 조이너(Anna Jane Joyner) 대표는 "우리는 의미와 기쁨, 아름다움, 용기를 찾기 위해 이야기를 본다"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의 미래가 걸린 이 중요한 순간에, 우리의 기후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를 볼 필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후 스토리텔링 단체 '클라이밋 스프링(Climate Spring)'의 루시 스톤(Lucy Stone) 이사는 "제출 작품이 2년 만에 2배로 늘었다는 것은 작가와 창작자들이 대담한 상상력과 뛰어난 솜씨로 이 시대에 응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국에도 기후소설이 있다

한국에도 기후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SF 작가 김초엽은 2021년 『지구 끝의 온실』을 펴냈다. '더스트'라는 재난으로 멸망한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정세랑의 단편 「리셋」은 거대한 지렁이가 문명을 파괴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기창의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2021), 김주영의 청소년 소설 『식물 없는 세계에서』(2024), 배미주의 『너의 초록에 닿으면』(2024) 등도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다룬다. 조예은의 단편 「스노볼 드라이브」는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세계를 그렸다.

문학상도 있다. 문예지 '문학뉴스'와 '시산맥'이 2022년부터 기후환경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시(시조) 부문으로 매년 공모하며, 상금은 1000만원이다. 지난 해로 4회째를 맞았다.

하지만 더 많은 대중이 접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사정이 다르다. 서울환경연합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국내 영화·드라마 151편 중 기후위기 현실을 반영한 콘텐츠는 6편(3.97%)에 그쳤다.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2편(1.32%)뿐이었다.

핀란드 LUT 대학교 연구진이 한국 인기 드라마 60편(총 1135시간 분량)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기후환경 관련 내용은 전체의 0.36%인 약 4시간에 그쳤다. 60편 중 34편은 관련 장면이 전혀 없었다. 할리우드 인기 영화의 기후위기 반영 비율(12.8%)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긍정적인 사례도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돌고래 보호센터, 테마파크 개발 문제, 해녀 공동체 등 환경 이슈를 다뤘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는 제지산업의 환경 파괴와 그린워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울환경연합은 "드라마와 영화는 시청자들이 기후위기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고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돕는다"며 "K-콘텐츠가 전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만큼, 기후 감수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