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출입이 안 됩니다" [KBIS 2026]
"LG전자, '브랜드+제품군' 확장 통해 미국 B2B 영역 확대"
"빌더 맞춤형 AI로 미국형 관리 시스템 선도"
중국 부스는 '한산'…"아직 신뢰감·성능 떨어져"

(올랜도=머니투데이방송) 염현석 특파원=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북미 최대 주방·욕실 전시회 'KBIS 2026' 전시장. 부스를 몇 바퀴 돌다 보니 묘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개방된 LG전자 부스와 달리, 일부 미국 가전 업체의 전시는 '출입 통제'가 기본이었다. 명찰을 일일이 확인하고 사진 촬영은 엄격히 제한됐다. 현장에서 들은 말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됐다. "LG는 출입이 안 됩니다." 경쟁사들이 가장 경계하는 이름이 됐다는 뜻이다.
특히 GE와 월풀 등 전통의 미국 가전 기업들의 경계가 눈에 띄게 강화됐다. 이유는 분명했다. 미국 내 가전 시장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B2C 시장에 이어 B2B 시장마저 한국 기업들에 잠식당하지 않겠다는 위기감이다. 한 전시 관계자는 "이제는 LG가 어느 부스에나 비교 대상으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 GE·월풀의 韓 전자업체 견제
미국 내 B2B 가전 시장은 오랜 기간 GE와 월풀을 중심으로 사실상 독점 구조가 유지돼 왔다. 주거용 아파트와 콘도, 렌탈 주택에 들어가는 가전은 네트워크와 레퍼런스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후발 주자인 LG전자가 매년 40~50%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어서다. 기존 강자들 입장에서는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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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서 관람객 입장을 막는 월풀(왼)과 실내 사진 촬영을 제한하는 GE 모노그램 부스(우) / 사진=염현석 특파원 |
여기에 중국 기업들까지 미국 가전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프리미엄 시장은 한국 기업에, 저가 시장은 중국 기업에 밀리는 구조가 형성되자, 미국 전체 가전 시장의 약 20%를 차지하는 B2B 영역은 미국 업체들에 사실상 마지막 보루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위기감은 이번 KBIS 전시 현장에 그대로 투영됐다. GE 카페(Café)와 모노그램(Monogram), 월풀 계열 부스는 전반적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됐다. 사진 촬영은 제한됐고 출입 역시 까다로웠다. 대중에게 자신들의 제품을 공개하기 위한 전시회에서 입장을 가려 받는다는 것이 다소 의아한 측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현장에서 만나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구축된 네트워크와 브랜드 충성도가 강점인 회사일수록 전시를 공개적으로 열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 LG전자, 'SKS·LG 시그니처' 확장 및 '맞춤형 AI 시스템'으로 B2B 공략
LG전자는 이번 KBIS에서 초프리미엄 빌트인 브랜드 'SKS(시그니처 키친 스위트)'와 프리미엄 브랜드 'LG 시그니처'를 전면에 내세웠다. SKS는 기존 주방 가전을 넘어 세탁·건조 영역까지 확장됐다. 빌더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옵션의 완결성’으로, 특정 라인업 하나라도 빠지면 입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LG가 'SKS 런드리 솔루션'을 전략적으로 공개한 배경이다.

LG전자의 초프리미엄 브랜드인 LG 시그니처 역시 다른 방식의 확장을 택했다. 하나의 디자인 정체성으로 통일됐던 기존 전략에서 벗어나 아이코닉, 테일러드, 심리스 등 세 가지 컬렉션으로 세분화했다. 북미 주택 시장에서 디자이너와 빌더가 가장 중시하는 요소가 '공간 전체의 조화'인 만큼, 가전이 가구와 벽, 바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라인업을 확장한 것이다.
이와 함께 LG전자는 'AI 기반 관리 시스템'을 통한 영역 확장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단순한 가전 연동 앱을 넘어, 건물 단위의 수십~수백 대 가전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인 'LG 씽큐 프로(ThinQ Pro)'를 선보였다. 관리 편의성을 대폭 향상시키고 운영 단계에서는 고장 예측과 에너지 관리까지 지원해, 지금까지 미국 업체들이 만족시키지 못한 '빌더와 관리자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대형 멀티패밀리 주택 빌더는 "미국에서는 가전 성능만큼이나 관리가 중요하다"며 "LG의 AI 관리 시스템은 유지보수 인력을 줄이고 문제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편의성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빌더는 "입주자 민원이 발생하기 전에 관리자가 먼저 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운영 비용을 줄이려는 빌더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솔루션"이라고 말했다.

◆ 한산한 중국 부스…"B2B 시장은 신뢰가 기본"
최근 미국 가전 시장에서 심심치 않게 모습을 보이는 곳이 중국 업체들이다. 이번 KBIS에서도 미데아(Midea) 등 중국 브랜드들이 부스를 열었다. 하지만 전시장 규모에 비해 현장은 의외로 한산했다.
현장에서 만난 빌더와 디자이너들은 중국 제품들에 대해 "가격은 저렴하지만, B2B에서는 싼 게 장점이 아니다"라며 아쉬운 평가를 내렸다. 미국의 빌트인 제품은 집값과 직결된다. 유지보수와 사후서비스(A/S)가 자산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직 중국 브랜드는 신뢰와 성능, 서비스 인프라 측면에서 주요 선택지로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B2B 가전 시장은 현재 약 7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며, 전체 미국 가전 시장의 20%를 차지한다. B2B 시장은 단기 유행에 흔들리는 B2C와 달리 한번 채택되면 장기간 유지되는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실상 미국 업체들이 장악해온 이 시장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개척 가능한 ‘블루오션’에 가깝다.
이 시장을 둘러싼 기존 미국 업체들과 한국 기업들의 기 싸움은 이미 전시 부스 단계에서부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KBIS 2026 전시장은 단순한 신제품 경연장이 아니라, 미국 B2B 가전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최전선이었다.
염현석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