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남자 사랑

양영수 2026. 2. 18. 10: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영수의 스마트소설] 40. 당신의 남자 사랑
'2014년 4.3평화문학상 수상자' 제주 원로 소설가 양영수 씨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분량은 짧지만 반전과 여운을 남기는 꽁트 소설을 격주로 [제주의소리]에 연재한다. 일명 '양영수의 스마트소설'이다. 모바일 인프라가 널리 보급된 시기에, 스마트폰으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꽁트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다. [편집자 주]
AI 생성 이미지.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었다. 당신이 일찍이 어린시절부터 겪은 경험이 그랬다. 당신은 1남3녀의 집안에 둘째 딸로 태어났다. 당신은 남동생을 미워하였다. 남동생이 뭐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남자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모두 외아들에게만 관심과 사랑을 쏟았기 때문에 미워하였다. 둘째 딸인 당신이 유달리 부모 사랑에서 제외된다고 느꼈다. 먹는 거와 입는 거를 비롯하여 세상 사는 즐거움의 기회를 남자에게 모두 뺏기는 슬픔을 날마다 느끼면서 살았다. 세월이 가면서 당신은 세상 모든 남자들을 미워하기로 결심하였다. 아빠는 밖으로만 돌아다니는데 엄마는 밤낮으로 부지런을 떨어야 집안 일이 돌아가는 것도 여자의 설움을 더해주었다. 

당신은 신분상승의 꿈을 다짐으로써 여자로 태어난 억울함을 참을 수 있었다. 남자들에게 꿇리지 않는다는 용기와 결기가 어릴적부터 용솟음 친 기억을 당신은 젊은 시절 내내 잊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경쟁의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이 당신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자기만 빼고 다른 자매들은 이 같은 차별을 받으면서도 심드렁하였기 때문에 남자에 대한 원망이 더 심해졌다. 남자와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알면서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는가,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것을 물어볼 수도 없이 속으로 앓기만 했다. 엄마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엄마 자신이 어린시절에 여자의 이 같은 설움을 맛보았을 것이 아닌가. 

철이 들면서 남자와 여자는 머리 모양과 신체구조가 다름을 알게되는 것도 당신의 미래 구상을 위해 중요한 모멘트였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떤 분야를 택하여 남자들과 경쟁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남자와 여자가 균등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알아보면 여자의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책은 남녀가 똑 같았고 운동장에서 남녀가 섞여서 경기할 때를 보니까 누구에게나 운동규칙이 똑 같음을 알게 되었다. 집안에서 얻지 못한 것을 학교에서 얻는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일찍부터 교직분야갸 당신의 관심을 끌었다. 남자들에게 비교하여 열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체력이나 모험심이라는 것을 알고난 다음에는 아무 분야나 미래의 경쟁 분야로 택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키가 유난히 작은 것은 평소에 당신의 자존심을 꺾어 버렸지만 이것은 당신에게 남모른 인내심을 길러주었으니, 오히려 당신의 정신력을 단련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았다. 키가 작은 것은 학교선생 되는 데에 실력으로 경쟁에서 이기라는 운명의 명령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당신은 일찍부터 결심한 대로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어냈다.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기에 전력질주를 한 셈이다. 꿈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경쟁의 상대가 남동생 한 사람에서부터 만나는 모든 남자에게로 바뀌었음이 달라졌다. 

학교선생 되는 것이 남자들과의 경쟁분야로 적절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선생은 학생들 마음을 장악할 수 있어야 성공하는 것인데, 당신을 선생으로 만난 중학교 학생들은 남학생들은 물론이고 여학생들조차 당신보다는 남자선생들 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이 당신의 실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봤지만 그런 생각이 당신의 자존심을 살려주지는 못했다. 이런 뜻밖의 문제 때문에 당신은 여러 가지로 고심하였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심한 혼란기가 사춘기이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이 심한 사춘기가 중학생 때라는 말을 들은 것이 당신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중학생 수업이 초등학교보다도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당신이 고심했던 것들 중에는 중학교 선생이 된 다음에 얻은 별명이었다. 별별 희한한 별명이 학교선생에게 붙여지게 마련인데 당신의 초임발령 시기는 그런 학교 풍속이 지금보다도 더했던 때였던 것이다.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 세계에서 선생 별명 붙이기가 더 많았다는 것인데 당신의 별명은 두 가지나 나왔음이 당신의 마음을 설래게 했다. '암펌'과 '꼼생이'였다. 당신의 고심에 찬 해석은 당신 혼자만의 것이었다. '암펌'은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데 남학생들에게서 나온 것이고, '꼼생이'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준 것이면서 여학생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당신의 해석이었다. 당신의 해석은 결국 여학생들은 당신의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었고, 이런 고심에 찬 해석이 당신의 교직생활 중에 다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군을 놔두고 적군을 도와주는 여학생들이 배신자라는 기억인 것이다. 하여간 남자들과 경쟁한다는 용기와 투지는 어느 사이에 감퇴되는가 보았다. 

당신은 중학교 선생이 된 다음에도 경력 관리를 촘촘히 잘한 셈이다. '꼼생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선생이었다. 그 결과 일찍이 교감 자격을 얻어 조기에 승진을 했으나 교장 자리까지 넘보지는 않았다. 중학교 교감은 남자들에게도 꿇릴 것이 없는 신부상승이라고 생각되었다. 교장 자리는 자신의 타고난 내외하는 성질과 키가 유난히 작은 체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러한 여자가 교장 자리에 앉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키가 작기에 아침조회 시간에 교단에 올라서서 전교 학생들 앞에서 연설하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의젓한 풍채나 세상의 명성 같은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남성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좌우하는 것은, 겉보기 타이틀이 아니라 내부적인 실속이요 실권이라는 것이 당신의 생각이었다.

교감 자리는 교장과 달랐다. 교장은 교장실을 쓰지만 교감은 교무실에서 교사들 근무상황을 책임지는 것이다. 남자선생들이 자신의 감시와 지시를 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하였다. 지각이나 수업결손이 있는 교사들에게는 체면불구하고 잔소리와 챙피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호랑이라는 별명과 꼼생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이들 별명에 어울리는 선생이 되기로 한 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자상할 땐 자상한 이해성을 보이는 것에 유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역대 어느 누구에 못지 않게 유능한 교감이라는 평을 얻었다. 

학생들 세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다름을 알게 된 당신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돌아보게 된다. 한창 직무를 보다가도 자기가 무슨 허망한 꿈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자신의 주된 관심사가 남자들과의 경쟁하는 것이라니, 문득 다른 시대 사람들은 어땠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인간역사가 시작된 이래 남성우월의 사회제도가 보편적이라는 역사책을 보고서는 맥이 풀렸다.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당신은 견문을 넓힘으로써 어린시절의 억울함이 많이 누그러진 셈이다. 여성이 하대받는 습속은 인간역사의 대체적인 흐름이지만, 생애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억울한지는 특정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역사가 있기 이전 수렵시대의 역사도 흥미를 끌었다. 아득한 시대 일이니 그냥 상상세계를 헤매는 격이었다. 달리기를 잘하여 수렵을 담당한 남자가 얻어오는 우람한 짐승 등의 먹거리는 멋지기는 했지만, 여자가 가까이에서 채집해 들이는 나무열매 등의 먹거리들이 자잘하지만 실속은 더 있었다고 하였다. 남자의 수렵활동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여자의 손이 들어가야 가족들이 만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자의 자좀심을 살려준 시대라고 생각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가족들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것은 남자보다 여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당신은 드디어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희망하던 행복한 결혼은 못 되었다. 돈 잘 버는 원양어선 선장이라고 해서 쉽게 허혼을 한 게 실수였다. 애초에 바람기 있는 남자였는지, 출어 나간 줄 알고 기다리다가 남편의 행적 앞뒤가 수상하여 탐문할 결과 뜨내기 여성과 동거생활 중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담박에 남편의 멱살을 잡고 나오는 길로 이혼 수속을 밟았다고 알려져 있다. 

당신의 결혼생활은 5년도 채 안된 단기간이었지만, 이 기간 중에 세상 남자들에 대한 불쾌한 고정관념이 굳게 박혀버렸던 모양이다. 이혼 후 40년이 훨씬 넘는 기간 중에는 세상 모든 남자들을 보기를 악취 풍기는 멧돼지처럼 보았다는 것이다. 남자들과 상종하는 것 자체를 피하였다. 교무실 밖으로 나가면 교감선생으로서의 당신 신분이 끝나고 남자 대 여자의 신분으로 변신하는 것 같아서 교직생활 내내 퇴근 후의 거취에 조신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혼 후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내외 여행을 많이 다니기도 하였다. 퇴직 이후에 개인 생활이 무료해질까 봐서 **문화원 수채화 강좌에 등록하는 등 취미생활도 즐기기로 하였다.

새 천년으로 넘어갈 즈음에 당신은 마침내 교직 생활을 마감하였다. 남자들을 경쟁 대상으로 보던 젊은 혈기도 많이 가시게 되었다. 세상남자들과 무엇을 놓고 다투고 하는 일 자체가 별로 없었던 교양강연만 해도 대부분 여자들로 가득 찼다. 것이다. 사설학원 교양이나 취미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남자들은 그냥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세상 남자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이유로는 그동안 여자들의 활동영역과 사회진출이 엄청나게 확대된 탓이기도 하였다. 문화생활을 위해 당신이 가는 곳마다 여자들 세상이었다. 음악, 미술, 무용, 요가 등을 배우는 사설학원은 가는 곳마다 여자들로 성황이고  남자들은 뜸했다. 교양강연이나 음악공연, 미술전람회도  마찬가지였다. 음악회 같은 데에서 여자들 환호 소리가 없다면 정적에 잠기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여자들 세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런 곳에서 만나는 남자들은 그냥 반가운 친구요 동지였다. 이제야 비로소 남동생에 대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자신의 경쟁력을 길러준 용기와 투지가 남동생과의 티격태격 경쟁관계에 유래했음이 생각나고 마침내 남매간 그리움이 생겨나는 것 같아서 고소를 머금게 되었다. 

집안에서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하는 부모가 늘고 있고, 남자라야 호주가 되어 집안을 대표하는 법률도 구시대의 유물이라 해서 사라졌다. 제사 명절 제례시간에 딸에게 배례를 시키고 나아가서는 딸에게 가문 승계를 맡기는 가정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부친 말고 모친의 성씨를 택하는 용사가 나온다는 말도 들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초중고 학생들 성적 분포를 보면, 남학생보다 여학생들이 더 우수하고, 입학이나 취직 시험을 비롯하여 각종 시험에서도 여자들이 더 우수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기업체 마켓팅도 여성적인 감성세계를 잘 알아야 한다면서 여자들이 떠맡는다고 한다. 부동산 소개업조차 여성들 차지가 되는 경향이다. 그 어디보다도 여성들이 주도하는 곳은 각 지역의 노인회이다. 회원이 거의 여자라서 타이틀로라도 남자회장을 모시려고 해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마침내 당신도 70세가 되고 노인회원이 되었다. 전직이 중학교 교감이라는 말이 돌았는지 당신은 남자 노인회장의 밑에 총무직이 맡겨졌다. 당신은 기꺼이 수락하였다. 애초부터 겉보기 타이틀은 남자들에게 주는 것이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엔 노인회장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동승하여 관광 명소에도 가고 그냥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