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의 마음보다 여론 읽어야 ‘팬덤 정치’ 끝난다”
● 與野 동시 내부 분열, 50년간 본 적 없는 현상
● 팬덤 통해 당권 잡겠다는 욕심 탓에 정치 갈등 심화
● 국민의힘, 나치와 절연한 독일 기민당 본받아야
● 민주당, 팬덤에 휘둘리지 말고 과거 품격 되찾아야
● 팬덤 정치 극복 방안, ‘다당제’와 ‘계파 극복’
● 사법 질서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김문수 지지
● 이해찬 빈소 찾지 않은 이유, 정치 무대화 부담

2월 11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발표한 '국민 통합을 위한 5대 사회갈등 국민인식조사' 결과다. 극단화한 정치 갈등 해소는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다. 하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나서진 않는다. 오히려 같은 당내에서도 분란이 일어나는 형국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청래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사이 갈등설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같은 중요한 사안을 당내 친명계와 논의 없이 강행하려 했기 때문이다.
야당의 상황도 대동소이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월 29일 한동훈 전 대표 제명안을 확정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1월 14일 한 전 대표 가족 연루 의혹이 있던 '당원 게시판 논란'에 대해 한 전 대표에게 "여론조작 책임이 있다"며 제명 결정을 내렸고, 장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이를 의결했다. 여야 간 갈등을 넘어 이제 여야는 내부 갈등으로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한국 정치권에서 갈등이 심화하는 이유를 듣기 위해 '신동아'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만났다. 많은 정치 원로 중에서도 이 전 총리를 찾은 것은 그가 2021년 민주당 당대표를 맡았을 때 한 발언 때문이다. 당시 신년맞이 인터뷰에서 이 전 총리는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면 연내 적절한 시기에 현재 수감 중인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의 사면을 대통령께 건의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정치 갈등을 봉합해 보려는 시도였으나 민주당 내에서는 반발이 컸다. 유일한 대선주자로 꼽히던 이 전 총리의 위치가 흔들린 것도 이 발언 이후부터다. 2020년까지만 해도 이 전 총리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21년 이 발언을 기점으로 지지율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결국 이 전 총리는 2021년 대선후보 자리를 이 대통령에게 내줬다. 정치생명을 걸고 정치 갈등을 해결해 보려던 이 전 총리는 지금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집권 8개월 만에 여당 계파 갈등, 금시초문
2월 10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이 전 총리는 "정치인이 되기 전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경력까지 합하면 50년 가까이 정치를 관찰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정치적 갈등이 심한 상황은 처음"이라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통상 정치권에서 야권이 분열하는 경우는 잦으나 여당이 계파 갈등을 빚는 일은 드물다.
"여당, 그것도 취임한 지 8개월도 안 된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나로서도 금시초문이다."
벌써 계파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정 대표의 당권 욕심과 당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 것 같다. (정 대표가) 당권 욕심이 있더라도 (조국혁신당 합당 등의 문제에 관해) 당내 동료 의원들과 소통했다면 당내 갈등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 대표가 당권 욕심에 무리수를 뒀다는 의미인가.
"(정 대표는) 강성 팬덤(당원)을 이용해 당권만 잡으면 그다음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형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당권을 잡은 뒤 대통령에 오른 전례가 지금의 대통령이지 않나. (정 대표도) 욕심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야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도부가 한 전 대표를 제명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의) 동기가 당권 욕심이라는 점은 민주당과 비슷하다. 외형상으로는 장동혁 대표가 직전 대표를 축출하는 모양새인데 이 역시 굉장히 드문 일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인해 국민의힘은 정권을 거의 헌납하다시피 (민주당에) 내줬다.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 옹호 세력이 다시 당권을 잡았다는 것은 일반적 상식에 맞지 않다."
이 시점에 이 전 총리는 보수정당에 할 말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서 책을 한 권 꺼내왔다. 책의 제목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공저다. 이 전 총리는 "책 내용 중에 미국 공화당이 2차대전 패전 후 독일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이 있다. 나는 이 조언이 지금의 한국 보수정당에도 유효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독일 기민당에 배워야
국민의힘이 독일 기민당의 어떤 면을 배워야 한다고 보는가."절연할 세력이나 과거와는 확실하게 절연하고 합쳐야 할 세력과는 확실히 손잡아야 한다. 2차대전 직후 독일 보수세력은 완전 궤멸 상태였다. 극단적 보수정당인 나치당이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독일은 패전했기 때문이다. 패전 직후 보수세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치와의 절연이다. 이후 가톨릭 중앙당을 비롯해 온건 보수 개신교 정당인 독일 국가인민당, 독일 인민당, 독일 중앙당, 독일 민주당 등이 손을 잡았다."
같은 기독교 계열 정당이 손잡는 일이 어려운가.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2차대전 종전까지 약 400년간 독일 내 가톨릭과 개신교는 끝없이 대립한 사이다. 이 둘이 어렵게 손을 잡았다. 이렇듯 절연과 연합을 통해 독일의 기민당은 궤멸 위기에서 벗어났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절연할 세력과 절연하지 못하고 손잡아야 할 세력과는 싸우고 있다. 이래서는 (국민의힘의) 앞날이 좋지 않을 것 같다."
민주당에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글쎄…."
이 전 총리는 한참을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기자 시절부터 민주당에 출입했고, 민주당에서 정치를 했다. 내 아버지도 민주당 당원이셨는데 지금처럼 분열하고 강성 당원에게 휘둘리는 민주당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정치 언어도 거칠고 억세며 증오에 차 있다. 품격 있는 정치를 하던 과거의 민주당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오래 몸담았던 정당이 변했다고 생각해서일까. 답변하는 이 전 대표의 표정이 퍽 착잡해 보였다. 기자는 다시 정치 갈등에 관한 질문을 이어갔다.
거대 양당 내부가 분열하며 정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결국 문제는 '팬덤 정치'다. 강성 당원이 일부 정치세력의 팬덤이 됐다. 양대 정당 모두 이 강성 당원의 영향 아래에 있다. 여기에 당권을 쥐고 싶은 각 당대표의 욕심이 겹쳤다. 여야라는 적 외에 당내에서도 적을 만들며 강성 당원을 결집하는 모양새다."
강성 당원의 영향력은 왜 커지게 됐을까.
"강성 당원의 목소리를 따르다 보면 정권은 어려워도 의원직 유지는 쉬워진다. 한국이 사실상 양당제라고 하지만 이는 서울,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수도권을 떠나 각 지역별로 생각하면 사실상 일당제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영남에는 국민의힘만 있는 형국이다. 당내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다. 결국 공천을 위해 더 강성 당원에게 목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도 공천 비리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
‘팬덤 정치'로 인한 정치 갈등을 해결할 방안은 있나.
"정치 지형의 측면에서는 지금의 양대 정당 외에 국민에게 다른 선택지를 줘야 한다. 중선거구제 등 선거제도를 고쳐서라도 다당제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국민도 다당제를 원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의 설문조사에도 이 같은 내용이 있다."
이 전 총리가 언급한 설문조사는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중앙일보, 경향신문이 함께 실시한 '한국 사회 갈등 해소와 통합 실현을 위한 국민인식조사'다. 국가미래전략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25년 12월 29~31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웹조사 방식으로 실시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1.8%포인트).
이 조사에서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 국회 내 정당은 몇 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적당한 원내 정당 수의 평균은 4.7개였다. 정당이 두 개면 된다는 응답은 전체의 7%에 불과했다.
李, 상황 모면하려 美中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해선 안 돼
정치 지형 외에 양당 지도부가 변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이 전 총리는 일본의 자유민주당의 예를 들었다. 자민당은 1993년 8월~1996년 1월, 2009년 9월~2012년 12월을 제외하고는 정권을 놓치지 않은 일본의 정당이다.
"자민당은 당내 주류의 실책으로 당이 정치적 위기에 빠지면 당내 비주류 세력을 선택하며 집권을 이어왔다. 자민당 최고의 위기 중 하나가 1974년 총리였던 다나카 가쿠에이의 록히드 마틴 뇌물 수수 사건이다. 2년 뒤 1976년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당내 비주류였으나 청렴한 이미지로 '클린(깨끗한) 미키'라 불리던 미키 다케오에게 총리직을 맡겨 선거에서 이긴다."
현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는 극단적 우파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게 자민당의 선택이었다. 여론이 선명한 지지자를 원하자 당내 주류가 아닌데도 다카이치를 총리로 추대했다. 당내 일부 주류 파벌의 지지자보다는 여론을 챙긴 선택이다. 결국 이 선택은 2월 8일 자민당이 전체 의석 465석 중 316석을 확보하는 압승으로 이어졌다. 계파의 마음보다 여론을 읽는다면 팬덤 정치는 힘을 잃고 집권 가능성도 높아진다."
독일, 일본까지 이야기했으니 미국도 이야기해 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집권기(2017년 1월~2021년 1월)에 국무총리를 맡았다. 당시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트럼프 1기에는 한미 관계가 지금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미국과 한국의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방위비 증액 정도였고, 초기에는 미국이 100억 달러 증액을 요청했으나 마지막에는 10억 달러 수준으로 낮췄다. 지금은 관세 문제를 시작으로 사사건건 미국과 한국의 이견이 생긴다."
트럼프 1기와 2기가 다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도자가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1기 때보다 더 위험해졌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만 내각을 꾸릴 정도로 원하는 바를 관철해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한국 지도자의 변화도 차이를 만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본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나.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 이에 관한 내용이 있다. 회고록에는 '무례하고 거칠다는 평가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솔직해서 좋았다'는 구절이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이를 두고 '관계의 거래적 측면을 인정한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거래의 대상이 되려면 일단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를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 바로 일관성이다. 이 대통령의 외교는 일관성보다는 임기응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미국과 만날 때는 중국 견제를 위해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면서도, 중국과 만나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미국과 중국 등 회담에서) 그 자리만 모면하려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한다면 외교관계가 더 복잡해진다."
이해찬 장례식장, 정치 무대화돼 부담스러웠다
이 대통령에 대한 혹평이 이어지자 문득 이 전 총리의 지난 대선 당시 행보가 떠올랐다. 이 전 총리는 민주당 후보인 이 대통령 대신 국민의힘 후보인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지한다고 밝혔다.이 대통령이 일관성이 없는 인물이라 김 전 장관을 지지했던 것인가.
"(김 전 장관 지지는)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었다. 지금도 내가 100%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수정당 후보를 지지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고육지책이었다. 물론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도 심판의 대상이다. 하지만 탄핵 등으로 정치적 심판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한편 이 대통령은 당시 다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아직 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집권하면 이 혐의를 모면하기 위해 사법 질서를 훼손할 것이라 생각했다. (김 전 장관 지지는) 나 개인으로서는 얻을 것도 없고 굉장히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사법 질서 훼손이 우려된다는 사실을 (김 전 장관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서라도) 국민에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불행하게도 내 예상이 현실이 됐다. 죄는 용서받을 수는 있어도 죄지은 일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집권 세력은 죄를 없던 일로 만들려 한다. 여당 의원들이 모여 대통령 공소 취소 모임까지 만들지 않았나."
이 전 총리가 집권 세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자 문득 김민석 국무총리가 떠올랐다. 김 총리는 사회장으로 치러진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회의 수석부의장의 장례식에서 상주 역할을 맡으며 5일간 빈소를 지켰다. 반면 이 전 총리는 총리 재임기 모친상을 겪었음에도 상을 당한 다음 날 국무회의를 진행했다. 이 전 총리는 후배 총리가 이 부의장의 빈소를 지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 총리가 이 수석부의장의 빈소를 5일간 지켰다. 이를 두고 대미 관세 협상 등으로 바쁜 상황에서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영화 '곡성'에 나온 대사를 빌려 한마디하자면 '뭣이 중한디…'."
2018년 총리 재임 중 모친상을 겪고도 국무회의를 주관했다.
"돌아가신 다음 날 국무회의가 있었다.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이라 내가 회의를 주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답변 후 이 전 총리는 이 수석부의장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이유도 설명했다. 이 전 총리는 "나도 고인에 대해 애도하고 명복을 빈다"며 "그런 마음은 전혀 다르지 않은데 장례식장이 정치 무대화된 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더라"고 말했다.
50년 가까이 정치와 함께 살아온 이 전 총리가 정치 무대화된 장례식이 부담스럽다고 하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고문은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라는 의미다. 당의 활동에 간섭하고 있지 않다."
추후에도 정치활동에 참여할 의사는 없는가.
"없다. 요즘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다시 기자가 된 기분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지적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방식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다 사라지고 싶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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