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우리 것인가"… 모아타운이 던지는 의문들

손유지 2026. 2. 1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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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강서·양천 2606가구 모아타운 지정... 환영보다 신중론
분담금·동의 절차 불투명... 주민 부담 가중 우려 고조
개발이익은 건설사·은행으로... 서민은 또다시 밀려나
모아타운 성공 위해선 진정한 도시재생 철학 필요
[지데일리] 서울의 지도 위에서 또 한 번 굵은 선이 그어졌다. 강서구와 양천구 2606가구가 새롭게 ‘모아타운’으로 확정되면서, 서울시의 주거정비 시계가 다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서구 화곡동 일대 모아타운 위치도. 서울시 제공

하지만 환호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먼저 터져나온다. 주민들은 “이익은 건설사와 은행, 손해는 세입자와 중산층 서민이 떠안는 구조”라며 냉소를 감추지 않았다. 이번 발표가 과연 진정한 주거 환경 개선의 시작인지, 혹은 또 한 번의 부동산 투기 사이클의 서막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모아타운’은 해결책인가, 또 다른 재개발의 이름인가

‘모아타운’은 기존의 정비구역 지정이나 재건축 조합 방식 대신, 노후 저층 주거지를 ‘소규모 구역별로 묶어 단위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서울시의 새로운 정비정책이다. ‘도심 속 오래된 골목주택을 쾌적한 공동체형 주거로 바꾸자’는 취지로, 낡은 도심을 효율적으로 정비하겠다는 명분이 앞선다.

그러나 정책의 의도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불안 요인이 쌓이고 있다. 구체적인 분담금 산정이 이뤄지지 않은 채 ‘동의서’를 제출한 주민이 적지 않고, 사업 추진 과정의 불투명성도 지적된다. 당장은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기대감이 분위기를 이끌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업비 폭탄’이 돌아오는 게 과거 재개발 역사에서 반복된 흐름이다.

한 강서지역 주민은 “우리 동네는 공사 시작도 전에 시세가 흔들렸다. 실거주자보다 투자 문의가 먼저 들어오고,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다”며 “이게 과연 주민을 위한 정책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생활권 중심 균형발전”, 구조적 한계 논란

모아타운 정책의 핵심은 ‘생활권 중심 재정비’다. 대규모 철거 대신, 기존 생활 기반을 유지한 채 기반시설을 정비한다는 접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선정 지역 대부분이 도심 접근성이 좋고, 향후 시세 상승이 예상되는 알짜 입지라는 점이 논란을 키운다.

결과적으로 정책의 명목이 '균형발전'이라기보다 '시장활성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는 노후주택 밀집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일각에서는 “결국 민간 건설사에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서울의 최근 재개발·재건축 추진지 대부분은 시공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뛰었다. 강남권뿐 아니라 서부권 모아타운 지역에서도 이미 ‘조합 추진’ 간판이 걸리자마자 토지 가격이 수억 원씩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주택자 세 부담 강화, 개발 이익 환수는 여전히 미지수

정치 일정상 올해 하반기 지방선거 이후 보유세 강화가 예상되면서, 다주택자들은 현금 흐름 확보를 위해 매물을 줄이거나 개발지 분양권으로 갈아타는 양상이다. 시장은 이를 ‘불안 자산 이동’으로 본다.

문제는 개발이익 환수 장치가 여전히 느슨하다는 점이다. 현재 모아타운은 조합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공공관리 제도를 통한 비용 통제가 어렵고, 민간 시행사가 사업비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재개발로 얻은 수익 대부분은 금융권과 건설사로 흘러가고, 주민은 대출이자와 분담금 부담만 늘어난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모아타운이 계획 취지대로 공공성을 확보하려면, 공공이 직접 분양가 상한제 수준의 가격 통제를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부동산 경기 부양과 민간 건설업계의 이해관계에 묶여, 실질적 규제 강화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천구 목동 일대 모아타운 위치도. 서울시 제공

토건 중심의 성장 모델, 언제까지 유지하나

이번 논란은 오로지 특정 지역의 재개발 문제가 아니라, 한국 도시정책의 뿌리에 자리한 ‘토건 중심 성장 구조’의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도시성장은 ‘철거→재건축→분양→시세 상승→다음 개발’로 이어지는 순환구조 속에서 이뤄졌다.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도시 이미지 개선과 세수 증가를 이끌지만, 장기적으로는 주거 양극화와 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악순환을 낳았다. 강남, 목동, 마포 등 대규모 재건축 지역의 집값이 전국 주택시장을 선도하면서, 서울 전체가 ‘아파트 중심의 도시에너지’로 몰리는 부작용도 이미 가시화됐다.

토건업계와 금융권이 이익을 분배하는 동안, 실제 거주민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성산동, 목3동, 등촌동 등도 이미 임대료 상승과 세입자 이탈이 시작됐고, ‘도시재생’이 아닌 ‘도시추방’이라는 표현이 현실감을 얻고 있다.

모아타운, 정치적 도구로 변질될 위험

정책의 타이밍 또한 미묘하다. 대선을 앞두고 도시정비 정책이 잇달아 발표되는 건 단순한 정책 추진이라기보다 ‘정치적 파급’을 고려한 일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개발 기대감은 단기간에 유권자 민심을 자극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모아타운 인질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도시사회학 연구자는 “개발정책이 선거 국면에서 발표될 때 그 메시지는 주민 삶보다 정권의 정치성과 연결될 때가 많다”며 “공공이 시장보다 먼저 주민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이는 또 다른 부동산 사이클을 자극하는 이벤트로 끝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심재생의 재정의’

서울은 이미 아파트 공화국으로 기운 도시다. 주거 다양성이 사라지고, 삶의 패턴이 표준화된 공간 속에서 ‘도시 공동체’는 점차 해체돼가고 있다. 모아타운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정책이 되려면 재개발이 아닌 ‘재생’이라는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를 위해선 우선 주민 동의 절차와 사업비 산정 구조를 완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분양이 아닌 장기임대와 공공임대 재배치 비율을 의무화해 원주민의 이탈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금융권의 대출 이익과 건설사 수익율을 일정 수준 제한하는 ‘공공이익 회수 기준’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세 가지는 단지 모아타운의 성공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앞으로 서울과 수도권이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계약이라는 게 시민사회의 중론이다.

개발에서 ‘삶’으로의 전환

지금의 모아타운 논란은 개발정책이 더 이상 땅값과 건물 높이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핵심은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다. 서울의 도시계획은 이제 더 이상 ‘건설 중심 성과지표’로 평가될 수 없다. 시민의 거주 안정, 지역공동체 회복, 공공 인프라의 균형 투자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한 부동산 컨설턴트는 "정부와 지자체가 이번 기회를 계기로 도시개발의 철학을 새로 세우지 않는다면 모아타운은 또 하나의 ‘조용한 투기지대’로 끝날 것"이라며 "서울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이 논의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투자자도, 시공사도 아닌 바로 그 지역에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