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설 연휴 고단한 귀향길·귀성길 고속도로에서 마주치는 럼블 스트립은 졸음운전을 예방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특히 옆좌석 탑승자가 세상 모르게 자고 있으면, 믿을 건 럼블 스트립과 졸음쉼터뿐이다. [현대자동차 블로그]
럼블 스트립이다. 도로 위에 울퉁불퉁한 요철(凹凸)을 내서, 차량이 지나갈 때 진동과 소리가 나도록 한 설비다. 진동과 소음을 통해 운전자의 졸음운전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갓길이나 중앙선 노면에 설치해 운전자가 차로를 이탈할 경우 진동이나 소음으로 상황을 인지하게 돕는다. 톨게이트 하이패스 진입 구간·급경사·터널 부근에서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하고 감속을 유도하는 용도로도 쓴다.
럼블 스트립이란 이름은 우르릉·웅웅대는 소리, 덜커덩거리며 나아가다 라는 뜻의 영어 단어 럼블 rumble에 가느다란 조각, 띠를 뜻하는 스트립 strip을 합친 것이다. 말 그대로 웅웅대는 띠란 의미. 우리말 규범 표기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판 등에는 노래하는 도로라는 직관적인 이름으로 소개하곤 한다. 국내 법령이나 도로교통 관련 지침에서는 노면요철포장, 감속유도시설 등으로 표기한다. 특허 문서에서도 차로이탈 인식시설, 도로 줄눈 등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명칭을 쓴다.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소음띠’가 마음에 든다. 왠지 귀엽다.
해외에서는 럼블 스트립을 주로 중앙선이나 갓길 등 차선 이탈을 막을 용도로 쓴다. 사진은 미국 뉴햄프셔주 헤니커 소재 202번 도로 노면에 시공된 럼블 스트립. [위키피디아/SayCheeeeeese ]
졸음운전 사고는 과속사고보다 위험하다. 전자의 사고 치사율(사고 1건당 사망자 발생비율)이 후자보다 2.4배 높다는 통계¹가 있을 정도. 다른 사고 유형과 달리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거나 대처할 겨를이 없다 보니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는 얘기다. 한국도로공사가 눈에 불을 켜고 전국 곳곳에 졸음쉼터를 설치하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미국 전역의 차선 갓길과 중앙선에 럼블 스트립을 설치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졸음운전과 이로 인한 차선 이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국고속도로관련시설물연구 프로그램(NCHRP)의 2009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 2차선 도로에서 갓길 럼블 스트립 설치 이후² 차선 이탈 사고는 15% 줄었고,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는 29% 감소했다. 중앙선 럼블 스트립의 효과는 더욱더 극적이다. 도심 2차선 도로에서 사고는 40% 감소했으며, 사상자 발생 사고는 64%나 급감했다.
다른 국가에서도 럼블 스트립의 효과는 검증됐다.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와 제2 도시인 쿠마시를 잇는 고속도로 수훔 나들목(Suhum Junction)의 경우, 사고 다발 구역이었던 이곳에 럼블 스트립 설치하자 1년 4개월 만에 전체 사고는 35%, 사망 사고는 55%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World Bank)은 해당 사례를 소개하며 개발도상국에서 비교적 저비용으로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럼블 스트립을 소개하고 있다.
¹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고속도로에서 2012~2016년 발생한 총 2241건의 졸음운전 사고에서 414명이 사망했다. 졸음운전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18.5%로 과속사고 치사율(7.8%)의 2.4배, 전체 사고 치사율(12.2%)의 1.5배에 달했다. │ ² NCHRP 리포트 641 ‘Guidance for the Design and Application of Shoulder and Centerline Rumble Strips’ 인용. 해당 보고서에서는 미국 5개 주의 교통사고 기록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해 1990년대 후반~2005년 설치 전후 동일 기간의 사고율을 분석하고 있다. 특정 연도 간의 직접적인 비교가 아닌, 차량 통행량과 기상, 도로 특성이 유지된 상태에서 럼블 스트립의 유무가 사고율에 미친 영향을 통계적으로 보정한 수치로 보면 적합하다.
WHO의 보고서 ‘Speed management’(2008)에 실린 가나 고속도로의 럼블 스트립. 그냥 다소곳한 과속방지턱 아닌가 싶지만, 럼블 스트립이라고 하니 넘어가자. [WHO]
시공 방식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도로에 홈을 파는 음각 시공, 기존 도로 위에 포장재를 덧대는 양각 시공이다. 음각 시공은 주로 콘크리트³ 노면에 이뤄지는데, 이는 재료의 강도가 높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아스팔트(아스콘⁴) 도로의 경우 음각 시공을 하게 되면 홈 주변이 빠르게 마모된다. 방향은 차량 주행 방향과 수평적인 종방향(세로방향), 주행 방향과 수직으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방향(가로방향)으로 구분한다.
최초로 럼블 스트립 개념이 등장한 장소는 1943년 미국 뉴저지주 6번 도로다. 중앙선을 따라 파둔 홈이 차량의 전조등 불빛을 반사해 가시성을 향상했고, 차선을 이탈할 경우 소음으로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했다. 럼블 스트립의 효과가 충분히 증명됨에 따라, 1950년대 뉴저지 고속도로청장 랜스포드 J 애벗(Ransford J. Abbott)이 뉴저지 동부 지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유료도로 가든 스테이트 파크웨이의 노면 가장자리에 럼블 스트립 시공을 의무화했다. 그래서 여러 사료에서 1952년 뉴저지주의 가든 스테이트 파크웨이를 공식적으로 럼블 스트립을 시공한 최초의 사례로 꼽는다.
³ 정확한 명칭은 시멘트 콘크리트(cement concrete) 도로다. │ ⁴ 아스팔트 콘크리트여서 아스콘으로 줄여 부른 것.
잡지 ‘Popular Mechanics’ 1953년 2월호에서 설명하고 있는 가든 스테이트 파크웨이의 럼블 스트립. ‘노래하는 안전 차선(singing safety lanes)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Popular Mechanics]
총길이 277.45㎞의 가든 스테이트 파크웨이는 1950년 준공됐다. [위키피디아/오픈스트리트맵]
럼블 스트립과 비슷하지만 다른 그루빙(grooving) 공법도 있다. 도로 위에 죽죽 홈을 파둔 ‘그거’다. 일직선으로 다이아몬드나 탄화텅스텐 등 고강도 날이 달린 기계로 도로 노면을 깎아 홈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굳지 않은 도로 포장 면을 갈퀴 같은 기구로 긁어 홈을 만드는 타이닝(tining) 공법도 있다.
어? 그냥 럼블 스트립이잖아. 아니다. 럼블 스트립이 소음과 진동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루빙과 티이닝은 차량의 마찰력과 조향성을 증대시켜 미끄럼을 방지하고, 우천 시 배수를 도와 도로에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하는 도로포장 기법이다. 도로에 그루빙이 없으면 물이 고이거나 눈이 쌓여 수막현상이나 블랙아이스가 쉽게 발생한다. 자동차 타이어 표면에 있는 홈, 트레드 패턴(tread pattern) 혹은 그루브(groove) 역시 젖은 노면에서 배수를 도와 수막현상을 막고 제동 성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횡방향으로 시공한 그루빙의 경우 진동과 소음이 발생하므로, 럼블 스트립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루빙은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항공기 안전을 위해 처음 개발했다.
종방향 그루빙 시공사례. [태양천 그루빙 홈페이지]
그루빙 유무에 따른 수막현상 발생 차이. [공공 저작물]
모든 일이 그렇듯, 럼블 스트립 역시 만능은 아니다. 일반 차량의 차로 이탈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 있어 비용 대비 탁월한 효능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오토바이나 자전거, 보행객 등 다른 도로 이용자에 불편과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바퀴 폭이 좁은 오토바이나 자전거에 있어 고속 주행 시 럼블 스트립은 차체를 흔들리게 하거나 조향이 틀어지게 만들어 운전 정숙성을 해치고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종방향 그루빙 역시 차량의 타이어 홈과 맞물려 흔들림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지속적인 소음도 유발한다. 운전자 입장에서야 잠깐 지나가는 구간일 뿐이지만, 도로 인근 주민에는 24시간 쉬지 않고 울리는 자명종 소리나 진배없다. 위와 같은 이유로 국내에서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진입로나 터널 내부 등 일부 구간에만 럼블 스트립을 설치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2007년 10월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도리 JC 판교 방향에 설치된 럼블 스트립이 최초 사례이나, 한밤중에 귀신 소리가 들린다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에 3년 만에 폐지된 바 있다.
노래하는 도로 ‘그거’도 있다
단순히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반복하는 럼블 스트립도 있지만, 요철을 정교하게 계산하고 시공해 차량 바퀴의 마찰음이 특정 음역대가 되도록 만들어 음악이 들리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다. 요철과 요철의 간격이 가까울수록 음이 높아진다. 예컨대 홈과 홈 사이 간격(돌출 턱 길이)이 46㎜일 때는 도, 39㎜이면 레, 32㎜는 미 음계로 들린다. 음의 길이는 홈의 개수로 조절한다. 도 음을 1초 동안 내려면 46㎜ 간격의 럼블 스트립을 28미터 길이로 시공하면 된다.
이런 ‘노래하는 도로’를 가리키는 특별한 명칭도 있다. 국내에서는 멜로디 도로나 노래하는 도로, 일본에서는 멜로디 로드, 영어권 국가에서는 뮤지컬 로드라고 부른다. 모두 낭만적인 이름이다.
강원도 정선의 럼블스트립 표지. [한국교통안전공단]
덴마크 지역 방송국 TV2 Østjylland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 아스팔토폰. 구독자 18명의 유튜버가 2008년 올려준 영상 하나에서 귀중한 사료를 건져냈다. 사이버 사관, 사이버 고고학자라고 부르자. [Jassen95 유튜브]
아스팔토폰(asphaltophone)이라는 좀 많이 거창한 이름도 있는데, 이는 1995년 10월에 등장한 세계 최초의 멜로디 도로에 붙은 명칭이다. 도로포장재 소재로 많이 쓰이는 아스팔트와 소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접미사 폰을 결합한 이름이다. 아스팔토폰은 설치 예술로 발명됐다. 두 명의 덴마크 예술가⁵가 덴마크의 작은 마을 길링(Gylling) 도로 노면에 돌출된 점의 형태로 된 양각 조형물을 설치한 것. 차량이 그 위를 지나가며 발생하는 진동이 음악으로 들리도록 한 원리는 동일하다. 이때 흘러나온 곡은 F장조 아르페지오였다.
⁵ 스틴 크라루프 옌셴 Steen Krarup Jensen(1950~)과 야콥 프로이트 마그누스 Jakob Freud-Magnus. 스틴 크라루프 옌센은 덴마크 조각가 노조 창립자이기도 한데, 1981년 조각가를 비롯한 예술가에 대한 정부의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로 자신의 조각 작품을 폭파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쿨한 할아버지 같지만 실은 ‘폭발은 예술이다’ 할아범이었던 스틴 크라루프 옌셴. [본인 홈페이지]
일본의 멜로디 로드는 관광 상품에 가깝다. 2004년 홋카이도 시베츠시(士別町)에 위치한 시노다 공업의 시노다 시즈오(篠田静男)이 최초로 고안했다. 멜로디 로드는 실수, 아니 사고의 산물이다. 그 시작은 1985년 도로 공사 중 양생이 덜 된 도로포장 위를 토목 장비로 지나가 버린 참사였다. 한순간의 실수는 도로 위의 궤도 바퀴 자국으로 박제됐다. 하지만 시노다는 자국 위를 차로 달리면 소리가 난다는 걸 깨달았다. 차의 속도에 따라서 음의 높이가 변한다는 사실도. 이후 시노다 공업은 20년간 품어온 아이디어를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고, 2005년 멜로디 로드 특허를 출원했다.
홋카이도 산업연구소는 시노다의 아이디어를 적용·개선해 홋카이도 나카시베츠시(中標津町) 도로에 최초의 멜로디 로드를 만들었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시레토코 사랑 노래(知床旅情·시레토코 여정)로, 모리시게 히사야(森繁久彌, 1913~2009)가 작곡한 노래다. 홋카이도 동쪽 오호츠크해에 접한 시레토코반도를 소재로 삼은 이 곡은, 1962년 ‘오호츠크의 뱃노래’란 이름으로 공개됐으나 1970년대 뒤늦게 인기를 끌었다. 카토 토키코(加藤 登紀子, 1943~)가 부른 1970년 음반은 100만장 이상 팔리고, 이듬해 오리콘 차트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찾아보면 가왕 조용필이 부른 버전도 있다.
일본의 멜로디 로드는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관광 스폿으로 만드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표지판에 음악이 가장 잘 들리는 속도(예를 들면 시속 60㎞)를 명기해, 운전자들이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교통안전 효과도 있다.
홋카이도 나카시베츠시에 설치된 멜로디 로드. 높은음자리표 표지가 귀엽다. [구글스트리트뷰]
일본의 멜로디 로드를 개발한 시노다 시즈오 시노다 공업 대표이사 사장. [くるまも]
국내 멜로디 도로는 한국도로공사 도로개량사업단 신승환 차장(2023년 소속·직책 기준⁶)이 발명했다. 그의 ‘도로의 음원생성장치 및 그 시공방법’은 음원을 계산해 그루빙 시공에 반영하는 방법에 대한 특허로, 2008년 출원했다. 일본과 달리 처음부터 졸음운전 방지책으로 고안했다. 신승환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멜로디 도로의 발명 취지에 대해 “졸음운전을 인위적으로 깨울 수 없기 때문에, 외부적인 자극을 고민하다가 그루빙에 돌출 턱의 길이와 깊이를 달리해서 노래를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멜로디 도로가 동요 위주로 선곡하게 된 이유는 간명하다. 음계가 쉽고, 대다수 국민에 익숙한 노래이기 때문. 물론 예외도 있다. 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 부근 멜로디 도로에서는 가수 장윤정의 ‘어머나’가 흘러나온다. 해당 곡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선곡에 도저히 불만을 가질 수 없다.
⁶ 취재대행소 왱, 2023년 2월 22일, ‘이거 누가 만들었을까?’ 인용.
한국도로공사의 특허 문서 내에서 예시로 설명한 동요 ‘비행기’의 멜로디 도로 시공 방법. [한국도로공사]
5000년 역사의 포장도로
럼블 스트립도 멜로디 도로도 모두 포장도로가 있기에 성립 가능한 기술이다. 사실 비포장도로는 상시 럼블 스트립, 돌림노래 도로다. 자의든 타의든 오프로드 주행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천연 럼블 스트립에 추간판이 탈출하는 마술적 경험을 해봤으리라.
포장도로의 역사는 유구하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흙벽돌을 타일처럼 지면에 깔아 최초의 포장도로를 만들었다. 도로가 꺼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벽돌 사이에 역청(瀝靑)을 발라 결합했다. 역청은 아스팔트다. 웬 아스팔트 - 싶지만 사실이다. 자연에서 얻은 끈적거리는 검은 물질을 모두 역청이라 일컫는데, 이 재료는 수만 년 이전 석기시대부터 사용해온 천연 접착제였다. 피치(pitch) 혹은 타르(tar)라고 부르는 역청의 원재료는 다양하다. 나무 수액으로 만들어지면 목(木)타르, 석탄으로 만들어지면 콜타르(coal tar), 석유가 휘발하고 남는 잔류물은 아스팔트 혹은 바이투먼(bitumen)으로 부른다.
카리브해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있는 피치 호수(Pitch Lake). 세계에서 가장 큰 역청 매장지다. 1595년 발견된 이곳은, 180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아스팔트를 채굴해왔다. 뉴욕과 워싱턴D.C. 등 미국 동부 주요 도시의 초기 도로는 모두 이곳에서 채굴한 아스팔트로 포장한 것이다. [www.vaasphalt.org]
포장도로로 유명한 고대 국가는 로마제국이다. 군사와 물류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기원전 300년 무렵부터 로마 가도(viae Romanae·위아이 로마나이)를 놓기 시작했는데, 로마 공화국이 확장·통합되며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동안 가도 역시 영토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땅을 1~1.5m 가량 단단한 지반까지 파내고 자갈로 지반을 다진 뒤, 돌과 자갈·점토를 섞어서 붓고 그 위에 쇄석, 표면엔 마름돌을 빈틈없이 깔았다. 빗물이 도로에 고이지 않도록 도로 중앙부를 살짝 높여 경사지게 했으며, 도로 양 옆으로는 배수로를 뒀다. 그 옆으로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보도까지 정비해뒀다. 만듦새가 워낙에 꼼꼼하다보니 수천 년이 지난 지금 다니기에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어떤 정성은 세월의 무상함마저 이기는 법이다.
3세기 말 제국 113개 주(州)를 연결한 372개의 주요 도로는 총연장 40만㎞에 달했으며, 이중 돌로 포장된 도로만 8만㎞를 넘는 규모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OMNES VIAE ROMAM DUCUNT)’라는 말이 제국의 강대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적인 표현이 아닌 사실을 적시한 표현이었던 셈. 참고로 오늘날 한국의 고속도로(2024년 기준)의 총연장은 약 5151㎞다.
고대 로마 시절 만들어진 아피아 가도(Appian Way). 로마와 이탈리아 남동쪽 브린디시를 연결하는 도로로, 기원전 312년경 만든 도로를 연장한 것이다. [LuisaV72/위키피디아]
산업혁명 이후 포장도로 수요가 늘어나며, 효율적인 도로 공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스코틀랜드의 토목 기술자이자 도로 건설가인 존 로던 머캐덤⁷(John Loudon McAdam, 1756~1836)이다.
현대 도로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지반을 다진 뒤 그 위에 일정 크기로 부순 돌, 쇄석을 층층이 쌓고 다져서 단단히 맞물리게 하는 공법을 고안했다. 단순한 구조와 빠른 공정, 저렴한 재료만으로 배수 성능과 교통 하중 분산 효과가 뛰어난 도로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이었다.
⁷ 맥아담이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는 미국식 발음이다. 영국식 발음으로는 머캐덤이 맞는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자갈을 겉에 펴고 굳게 다져 만든 길’을 지칭하는 표준어를 머캐덤으로 소개한다.
영국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존 로던 머캐덤 초상화. [Stephencdickson/위키피디아]
저렴·신속·단순 세 가지 장점 덕분에 머캐덤의 이름은 그 자체로 현대식 도로 공법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머캐덤화(macadamisation) 혹은 머캐덤으로 불리는 이 공법에 대해 혹자는 로마 제국 이후 도로 건설의 가장 큰 진보로 평하기도 했다. 국내 현장에서는 주로 마카담이라고 부른다. 마카다미아가 생각나서 괜히 구수하다. 1816년 머캐덤이 관리하던 브리스틀 유료도로에서 최초로 시공된 이래, 머캐덤 도로는 전 세계로 확산했다. 1837년 완공된 미국 최초의 연방 고속도로인 내셔널 로드(컴벌랜드 로드)와 19세기 유럽 주요 도로 대부분 머캐덤 공법으로 만들었다.
1969년 춘천 시가지 이면도로를 머캐덤 공법으로 포장하고 있다. [춘천디지털기록관/허일영 제공]
다만 머캐덤 도로는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태생적 문제에 덧붙여, 교통수단이 빨라지고 무거워짐에 따라 내구성의 한계가 있었다.
1901년 영국의 발명가 에드거 퍼넬 훌리(Edgar Purnell Hooley, 1860~1942) 도로에 쏟아진 타르가 자갈과 뒤섞여 굳어진 것을 보고 머캐덤 도로 표면 위에 콜타르를 입히는 방식을 도입한다. 타르가 접착제 역할을 해 기존 머캐덤 도로의 먼지와 자갈 이탈을 효과적으로 방지했고 매끄러운 노면을 만들 수 있었다. 이때 붙여진 이름이 타르 머캐덤, 줄여서 타맥(tarmac)이다. 홀리가 발명했지만 훌리 도로가 아니라 머캐덤 도로라니, 역시 발명도 작명도 선착순이다.
1920년대부터 타르 대비 물성이 뛰어나고 공급량도 많았던 석유계 역청, 아스팔트가 타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머캐덤의 쇄석 기반 위에 아스팔트 혼합물(Asphalt Concrete, 아스콘)을 덮은 아스팔트 도로는 현대 도로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아스팔트 도로를 만들 때 쓰는 장비에도 머캐덤의 유산은 남아있다. 왼쪽 상단부터 도로공사할때 ‘그거’ 시계 방향으로 머캐덤 롤러(공사현장 마카담로라), 타이어 롤러, 탠덤 롤러(단뎀로라), 콤바인 롤러(콤비로라) [SAK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