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만든 새 풍경 …'오징어 도시'가 '정어리 도시' 됐다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2026. 2. 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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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하코다테 수산물시장 르포
수온 오르면서 어종 변화
오징어 어획량 90% 급감
참정어리·청어·대구 늘어
'안초비' 사업 시작해 대박
킹연어·다시마 양식 성공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시 수산물도매시장에서 경매를 기다리는 수산물들. 오징어는 단 한 상자도 보이지 않는다. 하코다테 이승훈 특파원

"오늘 경매에 오징어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하코다테가 오징어의 도시로 불렸던 곳인데요. 10년 전과 비교하면 어획량이 10분의 1 수준입니다."

새벽 공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이달 초,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시 수산물도매시장. 경매장 한복판에서 만난 상인의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았다. 이곳은 하코다테의 명물 '아사이치(아침시장)'는 물론 일본 전역에 수산물을 공급하는 핵심 시장이다. 매일 오전 6시,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경매가 시작된다. 이날 경매장에는 평균보다 많은 21t의 수산물이 바닥을 메우고 있었다. 얼음 위에 줄지어 놓인 생선 상자 사이로 경매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러나 하코다테의 상징이었던 오징어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산물 도매회사 '마루히라 가와무라 수산'을 운영하는 가와무라 준야 대표는 경매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하코다테는 매년 8월이면 시민들이 모여 오징어 춤을 출 정도로 오징어 어업이 생활이자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수온이 오르면서 오징어는 사라졌고, 대신 참정어리나 청어, 방어 같은 어종이 잡히기 시작했죠."

실제로 경매장에 오른 것은 대구와 청어, 정어리가 대부분이었다. 가자미와 임연수어가 간간이 눈에 띌 뿐, 오징어 상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통계는 현장의 체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코다테시에 따르면 2014년 연간 1만6706t에 달했던 오징어 어획량은 2024년 877t으로 급감했다. 불과 10년 새 90% 가까이 줄었다. 어업 종사 업체도 1993년 3357곳에서 2023년 1156곳으로, 65%가량 감소했다.

하코다테 안초비 프로젝트로 생산된 안초비 제품을 후쿠다 구미코 후쿠다해산 대표가 소개하고 있다. 하코다테 이승훈 특파원

하코다테 앞바다는 쓰가루해협을 중심으로 동해의 쓰시마 해류, 태평양의 구로시오 해류, 러시아 쪽에서 내려오는 한류가 만나는 곳이다. 각종 해류가 뒤섞이며 양질의 플랑크톤이 생성되고, 이를 따라 다양한 어종이 모여드는 '천혜의 어장'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그 질서를 바꿔놓았다. 가와무라 대표는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해서는 어종 변화에 맞춰 유통과 가공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며 "신선도를 높이는 어획법과 고급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코다테시는 일본 내각부 산업활성화기금을 지원받아 2022년부터 10년짜리 '지역 수산업 지속가능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핵심 사업은 다시마와 킹연어 양식이다. 사토 다카히로 하코다테시 농림수산부 과장은 "킹연어는 연어 중에서도 가장 크고 맛이 뛰어나 '바다의 와규'로 불릴 정도의 최고급 어종"이라며 "뉴질랜드나 알래스카가 주산지인데, 완전 양식에 성공한 것은 하코다테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하코다테시는 2023년 12월 지름 12m, 깊이 8m의 해상 양식시설에서 킹연어 양식을 시작했다. 7개월 만에 1세대 치어가 약 4.8㎏까지 성장했다. 사토 과장은 "일본 소비자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는 품종 개량을 이어갈 것"이라며 "기후변화로 줄어든 일거리를 양식업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기후변화는 새로운 산업도 낳았다. 오징어가 사라진 자리를 참정어리가 채우면서 이를 활용한 '안초비(젓갈)'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로컬 레볼루션(Local Revolution)'을 운영하는 오카모토 게이고 대표는 "참정어리는 일본 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어종이라 값이 싸거나 아예 외면받았다"며 "늘어난 참정어리에 가치를 부여하자는 생각에서 안초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안초비는 보통 작은 멸치로 만든다. 크기가 큰 참정어리를 안초비로 가공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카모토 대표는 "참정어리, 쌀겨기름, 소금 세 가지만으로 기존 안초비에 뒤지지 않는 맛을 구현했다"며 "병당 1200엔인데도 생산량이 판매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지역 상생 구조다. 어민에게는 ㎏당 수십 엔에 불과하던 참정어리를 200엔에 매입해 소득을 보장했다. 가공업체 후쿠다해산은 대규모 설비투자 없이 염장 가공만 맡아 부담을 줄였다. 손질과 병입처럼 노동력이 많이 드는 작업은 지역 장애인 취업지원시설에 위탁했고, 기존보다 약 60% 높은 공임을 지급했다. 하코다테 안초비 프로젝트는 일본 정부도 주목했다. 지난달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1차 산업 활성화 부문'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코다테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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