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개혁·강경 한목소리…협상 유연성 신호

주목할 대목은 이란 국회의장을 지낸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지하 시설이나 산악 지역 시설에 대해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힌 점이다. 이란혁명수비대 준장 출신이자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라리자니의 발언은 이란 정치권 내부에서 개혁·개방파와 강경 원리주의 진영 간에 일종의 ‘공통분모’로 해석된다. 행정부의 유화 신호와 혁명수비대 등 강경 진영의 논리를 절충한 메시지라는 평가다.
이란은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한 권력 구조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행정부를 이끄는 이중 권력 체제를 갖고 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 내부에서 개혁·개방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최근 타흐트라반치 차관과 라리자니 사무총장의 잇단 발언은 행정부뿐 아니라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까지 협상 국면에서 일정 수준의 유연성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다만 행정부와 혁명수비대 모두 미사일 사거리 제한과 우라늄 농축의 영구 중단은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란 내부에서는 현실적인 타협안도 거론된다. 미국이 동결된 이란 자산을 해제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약 3년) 동안 우라늄 농축을 전면 중단하는 ‘한시적 동결’ 방안이 그 중 하나다. 이는 영구적 포기가 아닌 트럼프 행정부 임기 한정 조치라는 점에서 혁명수비대 등 강경파의 반발을 완화하려는 절충안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시나리오로는 이란 본토가 아닌 키시섬 등 특정 도서 지역에서 다자 컨소시엄 형태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는 이란이 농축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국제사회의 관리·감독 체계에 편입되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개혁·개방 성향 인사로 꼽히는 호세인 무사비안 전 주독일 이란대사는 최근 기고문에서 자신이 2013년부터 페르시아만과 더 넓은 중동 지역을 위한 공동 핵·우라늄 농축 컨소시엄 설립을 제안해 왔다고 밝혔다. 이란 외무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내부 개혁 진영에서 여전히 컨소시엄이 유효한 선택지로 거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미국은 협상과 병행해 군사적 압박 수위도 높이고 있다. USS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전단이 중동 지역에 전개돼 있으며, USS 제럴드 포드 항모전단도 합류를 앞두고 있다. 미 CNN은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와 달리 이란과 대화를 이어가는 배경으로, 단순한 ‘정권 교체’가 오히려 지역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한다고 짚었다.
결국 협상의 관건은 ‘농축 전면 중단’을 요구하는 미국과 ‘평화적 농축 권리’를 고수하는 이란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히느냐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과 체결한 이란핵합의(JCPOA)처럼,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을 완화하는 대신 우라늄 농축 상한을 3.67%로 제한하는 방식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번 협상에서는 한시적 동결과 다자 컨소시엄 등 보다 복합적인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란이 일정 수준의 농축 제한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이 금융·에너지 제재를 얼마나 완화할지가 최대 변수다. 특히 이란 중앙은행이 2019년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상황에서, 자산 동결 해제와 이란중앙은행에 대한 미 재무부의 제재 해제 여부는 협상 성패를 가를 핵심 카드로 꼽힌다.
김태욱 기자 tae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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