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조선에도 ‘기후대응’이 있었다···산림 보호, 취약계층 지원에 에너지 정책까지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일상이 되면서 기후대응은 정부 정책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다.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 기후취약계층 보호까지 정책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서울, 한성부의 기후대응 정책은 어땠을까. 과거에도 홍수와 가뭄, 한파, 폭염 등 시상이변은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피해가 커질 때마다 국가 차원의 대응이 이뤄졌다.
태종부터 고종까지 92차례 기후대응 정책 지시
17일 이태화 서울시립대 교수(도시행정학)의 ‘조선왕조실록에서 나타난 한성부의 도시환경・에너지・기후대응정책’ (2023년, 도시행정학보)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녹지·에너지·도시기후대응 등 다양한 정책을 실행했다.
조선시대 기후대응은 특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마련된 대책이 아니라, 한파·폭염·홍수 등 반복되는 기상이변에 대비해 상시적으로 운용된 정책 체계였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에서 도시일반환경·녹지정책·도시에너지정책·도시기후대응정책 관련 기록을 추려보면, 태종 4건, 세종 10건, 문종 4건, 세조 5건 등 태종부터 고종까지 모두 92건에 달한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책은 산림 관리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도성 안팎의 산림을 보호하고 벌목을 제한하거나 나무를 심도록 지시한 기록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산림 훼손 금지(태종 1424년), 벌목 금지(세종 1431·1436·1439년), 산림 관리 강화(숙종 1698·1703·1706년) 등 산림 관리는 특정 시기에 그치지 않고 여러 왕대에 걸쳐 시행됐다. 단순히 녹지를 늘리기 위한 조치를 넘어 홍수와 토사 유출, 하천 오염으로 이어지는 연쇄적 재난을 막기 위한 기후대응 수단이었다.
땔감·불·옷감 등 취약계층 지원책 시행
도성 내 산에 대한 벌목 금지 조항을 어기는 경우에는 엄격한 처벌이 따랐지만, 예외도 있었다. 예를 들어, 생계가 어려운 한양의 빈곤층은 벌목 금지 규정을 위반하더라도 처벌을 유예하거나 면제하기도 했다.
“지극히 가난한 자에 대해서는 도감 및 한성부의 오부로 하여금 그 생활 정도를 살피게 하여 금산의 소나무로서 집 지을 재목으로 적당히 주고”(세종실록 52권, 세종 13년 4월 9일 계묘, 1431년)

에너지 정책도 기후대응의 한 축을 이뤘다.
조선시대 한성부는 서민들의 생계를 고려해 땔나무와 숯을 공급하거나, 혹한기에는 ‘불을 나눠주는’ 방식의 에너지 지원 정책을 시행했다. 무분별한 벌목을 막으면서도 연료 부족으로 민생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려는 균형 감각을 반영한 정책이다. 오늘날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취약계층 지원이 중요한 것처럼, 당시에도 에너지 복지는 민생과 직결된 핵심 과제로 인식됐다.
“큰 기근 뒤에 추운 절기를 만났으니, 얼어 죽는 자가 틀림없이 많을 것이다. 해조와 해청으로 하여금 한성부에 분부하여 특히 그 중 심하여 의지할 데가 없어 얼어죽게 된 자에게는 동옷을 주거나 옷감을 지급하게 하라” (현종실록 18권, 현종 11년 10월 29일 계축, 1670년)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난 대응도 체계적이었다. 한성부는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구휼을 시행하는 한편, 하천 준설과 도로·배수로 정비 같은 도시 환경 개선 작업을 병행했다. 홍수·한파·가뭄·한재·뇌전·더위 등 재난이 발생하면 단순한 사후 복구에 그치지 않고, 반복된 재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예방 조치도 취했다.
조선시대의 기후대응은 오늘날처럼 온실가스 감축이나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재난을 막고 연료를 관리하며 백성의 삶을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기후정책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조선시대에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을 고려한 점은 오늘날 도시의 기후·에너지 정책이 취약계층을 고려하는 것과 역사적 연계성이 있음을 보여준다”며 “도시가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피해를 가장 크게 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과거의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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