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부상 답답 임성재, 어릴 적 우상 AK 극적 부활에 감동. "나 역시 큰 기쁨"

김종석 기자 2026. 2. 1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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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미국 TPI에서 만난 인연. 다정한 동생처럼 대해 줘.
- 앤서니 호주 LIV 우승 대회 우승 응원, 축하 문자 발송
- 손목 다쳐 복귀 시점 계속 늦춰져. 3월 초 출전 계획
- 가족의 소중함,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인상적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TPI에서 만난 임성재와 앤서니 김. 램퍼트 심 제공

임성재(28·CJ)는 최근 자신의 SNS에 재미교포 골퍼 앤서니 김(41)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 역시도 앤서니 김이 15일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끝난 LIV 골프 애들레이드(총상금 3000만 달러) 대회에서 16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임성재는 앤서니 김에게 우승 축하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며 자기 일인 양 반겼습니다.

  서울에 새로 장만한 자택에 머물며 부상 치료를 위해 전념 다 하는 임성재는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하던 선수였고, (2년 전) LIV 복귀 이후에도 좋은 모습 보여주기를 바라며 꾸준히 응원해 왔다. 이번 우승을 지켜보며 진심으로 감동하였다. 나 역시 큰 기쁨을 느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제주 해병대 신병교육대에서 군사훈련을 마친 임성재는 겨울 동안 추운 날씨에도 샷을 하다 손목을 다쳐 시즌 초반 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초 1월 개막전부터 출전 예정이었지만 부상 탓에 올해 들어 한 번도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일 개막하는 PGA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 나가려 했지만, 회복이 더뎌 3월로 복귀 시점을 미뤘습니다. MRI 재촬영 결과 손목 부위에 일부 염증과 통증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임성재를 관리하는 올댓스포츠(대표 구동회) 골프사업부 심용주 부장에 따르면 3월 4일 개막하는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부터 출전한다고 밝혔습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딴 임성재. 올댓스포츠 제공

2개월 넘게 쉬게 되면서 임성재는 "부상으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해 답답하다"라고 심경을 밝히면서도 "오랜 시간 기다려 주신 팬 분들께 감사드리며, 첫 대회부터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속이 상한 임성재에게는 10년 넘는 공백 끝에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부활한 앤서니 김에게 힘을 얻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심용주 부장은 "앤서니 김이 호주 대회 시작부터 잘하는 걸 보고 임성재 프로가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하더라"라고 전했습니다. 

  앤서니 김은 20년 전인 2006년 20대 초반 나이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뛰어들어 2010년 4월 셸 휴스턴오픈에서 개인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앞서 2008년에만 와코비아 챔피언십과 AT&T 내셔널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25세 이전 3승 클럽'에 가입하며 필 미컬슨, 타이거 우즈, 세르히오 가르시아, 애덤 스콧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2009년 '명인 열전' 마스터스 2라운드에서는 11개의 버디를 기록해 단일 라운드 최다 버디 기록도 세웠습니다.

  상한가를 누린 앤서니 김은 2008년 제주 핀크스골프장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현 DP월드투어) 밸런타인 챔피언십과 천안 우정힐스에서 열린 코오롱 한국오픈에도 출전했습니다. 2010년 한국오픈과 2011년 최경주 CJ 인비테이셜에도 나설 만큼 국내 무대 단골손님까지 됐습니다. 당시 현장 취재를 한 필자의 기억에는 앳된 표정에 해맑게 웃던 앤서니 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울러 앤서니 김의 등에 커다란 문신이 있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문신이 있으면 골프장 사우나에 출입할 수 없다는 안내를 쉽게 볼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20대 초반 전성기에 한국 대회를 찾은 앤서니 김. 최경주 모습도 보인다. 

제주 방문 후 그해에만 앤서니 김이 PGA투어에서 2승을 거두게 되자 부모님 나라에서 좋은 기운을 받았다는 '해석'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7세 때 골프를 시작한 임성재가 열 살 때 일이었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골프 스타를 꿈꾸는 어린 성재에게는 앤서니 김이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2010년 다시 한국오픈을 찾아 뜨거운 주목을 받은 앤서니 김은 2012년 아킬레스건 수술 후 갑자기 필드에서 사라졌습니다. 현재 임성재보다도 한 살 어린 27세의 나이였습니다. 한창 시원찮을 판에 종적을 감추면서 그 이유를 분석하는 '아니면 말고'에 가까운 보도까지 쏟아졌습니다. "거액의 보험금을 받는 조건으로 복귀하지 않게 됐다"라는 루머가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10년 넘게 팬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던 앤서니 김은 2024년 LIV 골프를 통해 복귀했습니다. 와일드카드로 앤서니 김을 영입했지만, 주위의 시선을 차갑기만 했습니다. '스포츠 워싱'이라는 비난을 듣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을 기반으로 한 LIV 골프가 풍운아 앤서니 김을 앞세워 깜짝 흥행카드로 쓰려한다는 비난도 나왔습니다. 

  LIV 골프 두 시즌 동안 그는 오랜 공백을 극복하지 못했던지 최하위를 전전한 끝에 시드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지난달 올해 시드권이 걸린 LIV 골프 프로모션에서 3위에 오르며 극적으로 출전권을 되찾은 끝에 이번에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골프를 넘어 스포츠 역사에 새겨질 만한 '컴백 드라마'를 썼습니다. 

앤서니 김이 LIV 골프 애들레이드 대회에서 우승한 뒤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LIV 골프

앤서니 김은 최종 4라운드에 마치 '그분'이 오신 듯 보기 없이 버디만 9개 몰아치는 완벽한 플레이를 펼쳐 역전극을 완성했습니다. LIV 골프를 대표하는 욘 람(20언더파), 브라이슨 디섐보(17언더파)를 제쳤습니다. 

  미스터리 같던 앤서니 김의 잠적 사유도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허리, 손, 어깨 등 여기저기 수술을 거쳤고 약물 알코올 중독에 빠져 극단적인 행동 직전까지 갔다는 겁니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특정 마약과 관련 있을 것이란 말도 나왔습니다. 

  임성재 역시 "한동안 투어를 떠나 있던 시간 동안 여러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시간을 잘 이겨내고 다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언제나 응원하고 싶은 선수 중 한 명이다"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앤서니 김 가족과 반갑게 인사 나누는 임성재. 

임성재는 지난해 이맘때 미국 캘리포니아주 바다 옆에 있는 '타이틀리스트 퍼포먼스 인스티튜드(TPI)'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앤서니 김을 만났습니다. 퍼터 브랜드 스카티 캐머런 직원의 소개로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하고 있던 앤서니 김, 그 아내 에밀리, 딸 벨라, 반려견과 인사를 나눈 겁니다. 

  임성재는 "그때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는데 직접 보니 매우 쿨하고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가끔 안부를 나누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현장을 동행한 재미교포 골프 사업가 램퍼트 심 씨는 "앤서니가 진심 어린 미소로 임성재 프로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임 프로 역시 에밀리와 벨라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던 훈훈한 풍경이 떠올랐다"라고 전했습니다. 심 씨 역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참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텐데 앤서니가 그 모든 역경을 극복했다. 긴 공백을 깨고 다시 정상에 선 그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라고 했습니다. 

앤서니 김이 딸과 LIV 골프 애들레이드 우승 트로피를 안고 있다. LIV 골프

김하진이란 한국 이름을 가진 앤서니 김은 이번 우승의 비결로 가족을 꼽았습니다. 구원의 힘이 바로 가족이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생기기 전까지는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딸에게 아빠가 '패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몸부림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앤서니 김이 애들레이드 대회 마지막 날 마지막 18번 홀에서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습니다. 그런 앤서니 김에게 예정일보다 석 달 일찍 세상에 나온 네 살 딸이 그린을 가로질러 달려와 아빠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껴안았습니다. 4만4000명 넘는 갤러리는 한 가족의 감동 드라마의 감동에 젖어 들었습니다.

임성재가 국내 대회에서 우승한 뒤 아내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KPGA 제공

임성재는 2022년 12월 결혼한 뒤 "새로운 마음으로 투어 생활을 하고 있다. 다른 면에서도 더 열심히 하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앤서니 김은 이번 우승만으로 개인전 우승 상금 400만 달러와 단체전 3위 상금의 25%인 22만5000달러를 더해 422만5000달러(약 61억원)를 벌었습니다. '로또'를 맞은 셈이지만 무엇보다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며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던 음울한 과거에서 벗어나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20대 초반 같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이번 우승 한 방은 지난 14년 세월을 단번에 보상하고도 남을 '로또'가 됐습니다. 5796일 만에 다시 맛본 앤서니 김의 우승에 대해 SNS에는 그에 대한 찬사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LIV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희석되는 분위기입니다. 앤서니 김을 마스터스에 초청해야 한다거나, PGA투어에 출전할 가능성까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임성재와 앤서니 김이 같은 대회에서 만날 공산도 있습니다. 

2010년 셀 휴스턴 오픈 우승 후 5796일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은 앤서니 김.

물론 오랜 공백기와 신체 한계를 고려할 때 앤서니 김의 경쟁력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확실합니다. 그는 우승 후 중독, 정신적 고통, 재활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강인함은 완벽함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용기'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앤서니 김의 절규는 자신을 향한 다짐이었지만 많은 선수와 팬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임성재 역시 누구보다 그런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다시 필드에 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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