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있으면 좋지만, 존중은 없으면 안 된다

한겨레 2026. 2. 1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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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후의 정확한 위로]
싫다는 걸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자식이 말려도 ‘잔칫상’ 차리는 엄마의 마음

그날은 큰누나의 생일이었다. 엄마가 또다시 거대한 생일상을 차릴 것을 예상한 큰누나는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스무 번도 당부했지만, 엄마는 끝내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 집에 모인 세 남매가 마주한 것은 테이블 두 개를 이어 붙여 만든 육중한 잔칫상이었다. 수저를 놓을 자리조차 없이 음식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마장동에서 떼어왔다는 최상급 한우로 밤새 재워 구운 양념 소갈비와 소불고기, 산적. 영광에서 가장 품질이 좋다는 굴비, 오징어 숙회, 직접 무친 잡채, 다섯 가지가 넘는 나물, 하얗고 노랗고 퍼런 색의 떡, 전골과 과일, 홍어무침, 식혜, 케이크, 미역국까지.

삼 남매는 포기한 듯 묵묵히 수저를 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만하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코스, 또 그다음 코스를 끊임없이 내왔다. 결국 큰누나는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아니, 사람이 그만 먹겠다고 하면 그만 좀 내와. 정말!”

이때다 싶은 막내 남동생도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짜증을 터뜨렸다.

“아, 제발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요. 진짜 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자식들의 감탄과 감사를 기대했던 엄마는 깊은 상처를 받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둘째 누나가 폭발했다. 이왕 차려진 생일상 그냥 참고 먹지, 왜 굳이 엄마에게 그렇게까지 말하느냐며 형제들에게 화를 냈다.

이 장면은 ‘언니네 이발관’ 밴드 출신인 이석원 작가의 에세이 ‘슬픔의 모양’(김영사)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작가의 실제 가족 이야기이지만, 한반도의 어느 가정에서나 벌어지는 풍경이기도 하다.

내가 주고 싶은 걸 주는 ‘존중 없는’ 사랑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과 연로하고 아픈 어머니가 그저 편히 쉬기만을 바라는 자식의 마음이 만났지만, 결말은 파국이고 상처다.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들이 만났지만 결과는 왜 이 모양일까? 이에 대한 이석원 작가의 분석은 날카롭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나는 늘 말해왔다. 하나는 자기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사랑이라고. 우리 엄마는 절대적으로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아끼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을 주지 못하면 삐치고 속상해하고 병이 난다. (중략) 엄마는 자기가 주고 싶은 건 기어이 줘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략) 큰딸을 위해 뭔가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엄마는 생일의 주인공인 당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마음 편하고 즐겁게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를 헤아리는 데에는 정말 하나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저 평생 해온 대로, 자신이 주고 싶은 것, 아니 주어야만 한다고 믿는 것을 주려다가 결국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던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이 사달은 사랑은 있지만 ‘존중’이 없을 때 발생한다. 사랑은 상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존중은 상대가 원치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마음이다. 상대가 원치 않는데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는 이들은 꼭 “다 널 위해서야”라는 말을 덧붙이며, 상대가 고마워하지 않으면 서운함과 분노를 느낀다. 반면, 원치도 않는 걸 강제로 떠안은 상대 역시 사랑은커녕 분노와 짜증만 느낄 뿐이다. 존중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통제와 강압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많은 자녀가 부모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의 무한루프에 갇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양제 먹기 보다, 술·담배 끊어야

부모-자식 관계 다음으로 존중이 작동하지 않는 대표적인 관계는 부부 관계다.

‘이혼숙려캠프’나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부부 갈등의 핵심은 대개 상대가 “절대로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을 끝내 멈추지 않는 데 있다. 누군가는 잔소리를 싫어하고, 누군가는 연락 없이 늦게 들어오는 걸 견디지 못하며, 누군가는 양말을 뒤집어 벗어두는 걸 질색한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부탁하고, 애원하고, 때로는 협박까지 하지만 끝내 들어주지 않는 관계가 결국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건강을 지키는 데는 몸에 좋은 것을 하는 것보다 몸에 해로운 것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을 하는 것보다 술·담배를 끊는 일이 더 결정적인 것처럼 말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배우자의 생일에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꽃다발을 건네며 사랑을 속삭이는 것보다, 평소에 소리를 지르지 않고 화를 내지 않으며 무시·비난하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즉, 사랑보다 존중이 더 중요하다.

존중 없는 사랑은 무례·폭력

에리히 프롬은 “존중이란 상대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이란, 그가 좋아하는 것들과 그가 싫어하는 것의 점들을 촘촘히 연결한 선이다. 싫어하는 것들이 존중받지 못할 때 우리는 정체성이 짓밟히기 때문에 존중 없는 사랑은 무례나 폭력으로 느껴진다.

연애든 우정이든 결혼이든 오래가는 관계에는 반드시 존중이 있다. 사랑이 없다고 관계가 곧바로 끝나지는 않지만, 존중이 없다면 그 관계는 반드시 끝난다. 관계 심리학자 존 가트맨 역시 말했다. “사랑이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다. 존중의 부재가 관계를 끝낸다”고.

결론적으로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일방적으로 주는 건 자기만족 또는 자기도취일 뿐이고, 상대가 받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건네는 게 조언이고,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건네는 것이 위로다.

곧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이 다가온다. 이번 명절만큼은 사랑보다는 존중을, 조언보다는 위로를 건네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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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후 afterthislif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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