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의사는 부자를 치료할까, 서민을 치료할까

한겨레 2026. 2. 1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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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의학과 서사(106):
수술 로봇과 의료 위임의 미래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최근 피터 디아만디스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문샷(Moonshots)”에 출연한 일론 머스크의 발언이 화제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거론하며 “북한이 굳이 침공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비꼬았던 바로 그 인터뷰다. 인구 소멸에 대한 진단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무턱대고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그다음의 발언이다. 그는 3년 안에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가 인간보다 더 훌륭하게 수술을 집도할 것이기에, “의대에 갈 필요가 없다”라고 단언했다.

나는 머스크의 이 말이 거짓이라고 말할 생각이 없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말들을 “의료의 의자도 모르는 허풍”이라며 철저히 부정해 왔음 또한 고백해야겠다. 인공지능 의사는 불가능하다고 여러 이유를 드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수술 로봇,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단 인공지능, 상담 로봇, 왜 못 만들겠는가. 이미 다빈치와 같은 로봇 수술은 (비록 오랫동안 인간 의사가 그것을 조종해 왔지만) 인간보다 훨씬 정교한 수술이 가능함을 자랑해 왔다. 조종간을 의사에서 인공지능으로 바꾸는 게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데이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이미 십 년 이상, 그들은 충분한 수술 데이터를 쌓아 왔다. 또, 인간 없이 로봇은 복강경 수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음을 이미 2022년에 존스홉킨스 연구팀의 스타(STAR) 로봇이 돼지 조직 대상으로 증명했다.

3년 이내에 이들이 모든 병원에 배치되는 것을 장담하진 못하겠지만, “인간보다 정밀한 수술 기계”의 개발에만 초점을 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생각을 바꾼 이유는 첫째로 내가 생각하던 미래와 그들이 말하던 미래가 달랐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동료로 기능하는 “로봇 의사”를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런 인간 의사의 대체물을 만들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그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를 조각내 한 부분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했을 때 개별 업무의 대체 가능성은 충분하다. 둘째, 내가 직접 인공지능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처지에, 의사 업무는 안 될 게 뭐란 말인가, 라는 생각을 매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스크가 감추고 있는 것이 있다. 그는 “정밀함”만을 평가의 척도로 삼으며, 로봇이 인간보다 훨씬 정밀하다고 강변한다. 그 점 자체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병원에서 중요한 것이 정밀함만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존스홉킨스의 연구진이 개발한 스타 로봇은 이미 2022년에 돼지 장 문합(이어 붙이기) 수술에 성공했다. 존스홉킨스 허브

다수를 위한 보급형 로봇 의료

많은 이들은 머스크의 발언을 듣고 “로봇이 인간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여, 누구나 저렴하게 최고의 수술을 받는 이상향”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이 도래할 리는 없다. 수술 로봇은 평균적인 의사보다 잘할 것이다. 그러나, 로봇은 최고의 외과 의사보다 잘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다수의 데이터로 훈련한다. 그 말은, 인공지능은 현재의 표준을 습득한다는 뜻이다.

알파고를 떠올리실 분들이 있겠지만, 수술은 바둑도, 체스도 아니다. 정해진 규칙이 있어서 그 안에서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의료의 최선은 상대적으로 희귀하며, 그것을 데이터 기반으로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잘 된다”라는 보장을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다시, 그것은 게임처럼 규칙이 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이유에서 환자가 잘 낫게 되는 것일 뿐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반복 학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술 로봇을 배치하는 근미래를 상상하자. 그러면 수술 로봇을 누가 쓸까. 나는 당연히, 일반인들이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소득이 있다면 보험을 통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좋은 일일지 모른다. 보험 재정을 아껴야 하는 국가나, 불만이 많은 의료인들을 어떻게든 관리해야 하는 병원으로선 축복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렴하고, 빠르고, 불평이 없으니.

소수를 위한 고급 인간 의료

문제는, 소위 “명의”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있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부자들은 로봇에게 수술을 받을까. 솔직히 그럴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 수술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고의 실력을 지닌 의사에게 수술받을 수 있다면, 받으면 된다. 게다가, 수술 로봇의 등장은 많은 수술 건수를 로봇이 해결할 것임을 전제한다. “명의”들의 시간이 남게 된다. 병원이 이들에게 무엇을 시킬까. 브이아이피(VIP) 클리닉을 이들이 맡으리라는 것은 과한 예측이 아니다. 왜? 평균적인 로봇보다 그들이 뛰어나니까. 게다가 그들은 로봇이 처리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을 다른 누구보다 잘 다룰 수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지급 능력이 있는 이들은 그런 상황을 이전부터 원해 왔다.

심지어 이제 두 서비스를 가를 수 있는 명확한 선도 주어진다. 소수를 위한 인간 의료와 다수를 위한 로봇 의료 말이다.

먼 미래엔 영화 “엘리시움”처럼, 완벽한 치료 로봇이 나와 모든 병을 해결해 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것은 지금은 그만두자. 당장 우리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은 이전 의료영리화나 차등 의료라는 이름으로 걱정했던 바로 그 진료에서의 계층 구별이,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구현될 것이리라는 현실이니까.

머스크는 자신이 그에 대해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을 것이다. 글쎄, 우리는?

에이전틱 인공지능과 위임의 함정

문제는 이런 변화를 꼭 머스크라는 개인이나 기술 기업이 주도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미 의료계 또한 인공지능과 로봇의 자장 안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으며, 그 가운데 의료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내어주고 있다.

예컨대, 나는 위치 때문에 의료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특히 연구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어떻게 더 좋은 과정과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를 자주 맡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강의를 갈 때마다, 뜨악한 경험을 종종 한다.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강연 중엔 인공지능에게 이만큼 시킬 수 있고 이들이 얼마만큼 결과물을 가져다주는지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소위 “딸깍”, 질문만 넣었더니, 또는 자료만 넣었더니 인공지능이 논문을 거의 다 만들어준다고 자랑하고, 이를 위해 어떤 “에이전틱(agentic)” 도구들을 활용하고 있는지 말한다. 작년엔 최근 메타(Meta)에 인수된 매너스(Manus)와 젠스파크(Genspark)였다. 올해는 안티그래비티(Antigravity)다.

이들 도구는 내부에서 인공지능을 다회 또는 중첩적으로 활용하여, 사용자의 요청에 맞는 결과물을 알아서 내준다. 강의 슬라이드를 만들어 주고, 보고서를 써 주며, 논문 구성도 해 준다. “질문 하나만 던지면 인공지능이 논문을 다 만들어 줍니다”라느니 “코드 하나 몰라도 앱을 뚝딱 만든다”라는 표현에 딱 맞는 도구들.

물론 편리하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 뒤에는 위임이라는 함정이 있다. 과정을 기계에 맡기고 검토와 승인을 피하는 방식이 퍼져간다. 더 맡길수록, 우리는 편리해진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의 결정 권한도, 범위도, 힘도 줄어들어 간다.

편안한 위임인가, 고단한 자율성인가

이런 상황 앞에서 내가 떠올렸던 것은 2012년부터 방영한 일본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PSYCHO-PASS)”의 한 장면이다. 작품 속 미래 경찰들은 ‘도미네이터’라는 특수한 총을 들고 다닌다. 이 총은 경찰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빌 시스템’이라는 중앙 집중 인공지능의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시스템은 대상의 범죄 계수를 실시간으로 측정, “집행 대상”이라고 확정하고 그들을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현장에 부여한다. 반대로, 현장에서 아무리 끔찍한 일을 벌여도 인공지능이 대상자를 “안전하다”라고 판단하면 총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품에서 인간 형사는 체포와 해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 대신, 그저 방아쇠를 올려놓는 삼각대에 불과하다.

머스크가 그리는 미래, 그리고 우리가 인공지능을 대하는 방식에서 나는 애니메이션의 끔찍한 미래를 겹쳐 떠올린다. 진단도, 수술도, 연구도 인공지능이 알아서 잘할 것이다. 더 좋은 의료는 소수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어느 대부호나 막강한 정치권력이 의사들을 강압적으로 밀어 붙여서 이룩한 미래가 아니다. 당장의 편리함이 주는 유혹에 휩쓸린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내준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가 일을 위임할수록 인공지능과 로봇은 하나둘씩 인간 의료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점차 기술은 빠르게 인간 수준으로 올라올 것이고, 어느샌가 “왜 로봇을 쓰느냐”라는 질문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명확히 갈라진 “고급” 의료와 “보통” 의료의 선을 보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미래에 저항하는 일은 우리의 경향성에 대해 저항하는 일과 같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좋다. 아니, 활용하는 방법을 잘 익혀야 한다. 그러나, 그 도구들에게 우리의 일을 던져 놓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나는 고단하더라도, 위임하지 않는 기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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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로봇”이라는 가짜 소식이 알려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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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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