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유해진 "변신의 귀재? 작은 장면 하나하나에 녹아드는 것이 목표"[인터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한국 영화계 신뢰의 아이콘 배우 유해진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설 연휴 흥행 대전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17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는 17일 오전 309만 1474명을 달성하며 개봉 13일 만에 3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다.
유해진과 박지훈이 주연을 맡고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쫒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그렸다. 한국 영화 최초로 조선 6대왕 단종의 이야기를 스크린의 중심에 담았다. 박지훈이 단종 이홍위 역을, 유해진이 청령포 촌장 엄흥도 역을 맡았고, 유지태가 한명회 역을, 전미도가 궁녀 매화 역을 연기했다. 극초반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와서 보수주인 엄흥도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게 되는 과정까지를 유려한 코믹 터치에 담았다면 악의 축 한명회로 인해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단종과 보수주인 엄흥도의 신분의 차를 넘어선 우정과 이별을 다룬 결말은 근래 한국 영화 중 단연 엄지손을 치켜 들만한 아름다운 비극으로 탄생했다.
특히 유해진은 웃음기 쏙 뺀 얼굴로 권력욕에 눈이 먼 인조 역을 열연해 호평을 받았던 영화 '올빼미'와 신분 상승을 노리는 검사 역을 맡아 천의 얼굴을 펼쳐 보인 '야당'에서 선보였던 캐릭터들과는 180도 거리가 조선시대 필부 엄흥도 역을 맡아 웃음부터 눈물까지 감정의 진폭이 넓은 연기를 자유자재로 선보이며 재미와 의미를 다 잡은 완성도 높은 영화 탄생에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나선 배우 유해진은 "매번 제 변신을 크게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옷만 바꿔 입었을 뿐 결국 유해진 아닌가. 제가 노력하려고 하는 부분은 이야기 속에 잘 녹아있으려 하는 것이다. 캐릭터가 이야기 속에 잘 살아 있느냐 아니면 이야기 속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가 하는 차이 같다. 만일 불편했다면 제가 연기를 잘못한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유해진이 이야기 속에 잘 묻어나고 녹아든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의 목표는 작은 장면에 잘 녹아들고 그 장면의 대사를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느냐가 관객들께 제대로 녹아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왕과 사는 남자' 시나리오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소감이 궁금하다.
▶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모처럼 폭넓은 세대가 볼 수 있는 작품이겠구나 싶더라. 그런 작품들이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요즘 주로 20~30대 관객을 주요 타깃으로 한 작품들이 나오지 않나. 우리 작품은 그 전후의 세대들도 좋아하실 수 있는 이야기겠더라. 이야기 자체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어서 저 같은 경우는 오래 가더라. 중간 중간 많이 울었다. 시간 흐른 후에도 많이 남아있을 것 같다.
- 단종 역 박지훈을 너무 예뻐하는 것이 느껴진다.
▶ 지금도 박지훈 눈빛이 아른거린다. 눈빛만 봐도 감정이 와닿더라. 주요 감정신에서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미 지훈이의 눈이 그렁그렁하더라. 그때 동정심이 확 들고 어린 단종 그 자체로 보이더라. 그런데 지훈 배우와는 후반부에서 이런 감정신을 눈빛으로 서로 자주 주고 받았다.
- 단종 역에 박지훈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나서 든 생각은.
▶ 촬영 전에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어떤 통통한 아이가 왔더라. 저는 그의 이전 연기를 본 적이 없었다. '약한 영웅'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못본 상태였다. 그런데 촬영 직전 나타났는데 반쪽이 돼서 왔더라. 15kg을 빼고 왔다더라. 촬영장에서도 아무것도 안 먹었다. '너 그렇게까지 하면 쓰러져'라고 말해주곤 했다. 초반 감정신을 맞춰 보는데 그 에너지에 깜짝 놀랐다. 발성도 너무 좋더라. 어제 누가 '아역때부터 연기한 배우들이 내공이 있다'고 하던데 제가 지훈 배우에게 깜짝 놀랐다. 이홍위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릴 때 제가 딱 잡는 장면이 있지 않나? 처음 말리고 나서 두 번째 산에 올라가서 말리는 장면이 있다. 그때 지훈의 에너지에 깜짝 놀랐다. 흥도의 아들 태산이 곤장을 맞을 때 한명회를 향해 '네 이놈, 왕족을 능멸하느냐'라고 대사를 할 때도 표현이 진솔하고 가볍지 않다는 걸 느꼈다. 실제 지훈과도 많이 닮아 있더라.
- 극초반에는 포복절도할 웃음 장면이 많다. 실제 아이디어를 낸 장면이 있다면.
▶ 쌀밥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다. 제가 직접 만든 대사가 들어간 장면도 여럿 있다. 무를 먹으며 거들먹거리는 장면은 제가 만들어냈다. 엔딩부분에 나오는 단종이 개울가에서 물을 튀기고 있고 흥도가 애처롭게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제가 아이디어를 낸 장면 중 가장 뿌듯했다.
- 물장구 장면은 꽤 깊은 여운을 주는 장면이다. 어떻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나.
▶ 스태프 중 한분이 개인 SNS에 올렸더라. 원래 공개되면 안되는데 박지훈 배우가 강가에서 손을 씻고 있는 사진을 올렸더라. 그런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실제 단종이었어도 저랬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가에 가서 한양을 그리워하며 시선은 먼곳을 보며 물장구를 치겠구나. 그걸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있는 엄흥도도 같이 찍으면 좋겠더라. 엄흥도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겠나. 그런 흥도의 모습에 처음으로 애비 같은 마음을 가졌을 것 같다.
- 주요 배경인 청령포 장면의 촬영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 애로 사항이 전혀 없었다. 너무 좋은 장소였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앞에 강이 흐르고 강 바로 앞에 절벽이 있는 것은 실제와 같았다. 물안개가 수시로 피어나고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촬영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배우, 스태프 모두 그 장소를 좋아했다. 분장 버스 같은 큰 차는 못들어가는 곳이라 걸어서 다녔다. 2km정도 거리가 되는 길을 걸으며 박지훈과 작품 이야기도 하고 쓸데 없는 이야기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돈독해졌다. 박지훈도 그가 표현한 단종처럼 진지한 면이 있다. 묵직함도 있었다. 젊은 나이 또래 그대로의 발랄함도 있었다. 참 괜찮은 청년이었다. 함께 촬영장까지 걸으며 왔다갔다 하면서 가까워지고 그러면서 서로 감정의 마일리지가 쌓였다. 유배를 온 단종이 엄흥도와 가까워지게 된 것처럼 청년 박지훈과 배우 유해진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서로 감정을 쌓아갔다.
- 영화에서 단종이 맞이하는 죽음과 관련해 실제 역사적 근거는 있나. 얼마나 사실적으로 표현된 건가.
▶ 영화 속에서는 단종이 엄흥도에게 청을 하는 것으로 표현됐는데 엔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결국 영화적인 결말을 맺기로 결론을 냈다. 관객들도 영화적 결말을 이해해주시지 않겠나 싶었다. 영화 속 표현된 내용은 단종의 여러가지 죽음에 관한 설 중 하나였다.

- 코로나 19이후 총 6편의 영화를 내놨고 1편을 빼고 모두 큰 흥행을 이뤘다. 유해진 흥행 불패설이 나올 정도다. 이번 작품 흥행에 대한 전망은.
▶ 당연히 부담이 있다. 예전에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다고 하면 좋아했다. 자본이 크니 표현도 여유롭게 할 수 있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다고 하면 겁이 난다. 어떻게 본전을 맞출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 생각에는 손익분기점만 넘으면 좋겠다.
- 특별 출연한 안재홍과의 코믹 배틀도 상당했다. 안재홍과 호흡 소감은.
▶ 안재홍은 너무 훌륭한 배우다. 재홍 씨 같은 친구들을 보면 후배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 그 친구들을 보면 큰 자극을 받는다. 제가 너무 고여있지 않나 생각도 든다. 그런 후배들과 함께 하게 되면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저 스스로 안주하지 말아야겠다 싶다.
- 단종의 역사를 그린 다른 콘텐츠들과 차별점은 무엇인가.
▶ '단종이 유배지에 와서 어떤 시간을 보내셨을까, 마지막에 어떻게 쓸쓸히 가셨을까'에 대해 역사에 나오지 않았던 부분에 상상력을 가미해 그렸다는 것이 차별성 아닐까.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인간이 다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그렸다는 점도 이 시대와 관통하는 주제를 담은 것 같다.
- 엄흥도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떻게 연구를 했나.
▶ 실제 엄씨 가문에서 굉장히 존경 받는 분으로 알고 있다. 그분을 표현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했다. 실제 역사에는 기록이 2줄 밖에 없다. 엄흥도라는 분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훌륭한 분께 누가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됐다. 영화를 다 보신 관객들은 엄흥도가 대단한 분이셨다는 것을 잘 아시겠지만 그 결말을 전하려고 초중반까지 너무 극이 무겁게 흐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극 초중반에 재미있는 요소들을 넣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희화화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상당히 조심하고 노력하면서 만들었다.
- 장항준 감독에 대한 상당한 신뢰감이 느껴진다. 장항준 감독 현장의 특징이 궁금하다.
▶ 장항준 감독은 늘 가볍고 열려 있다. 사람의 마음을 늘 풀어준다. 그럼에도 어떤 것들을 제시하고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잘 받아준다. 평소 작업할 때 일방적인 것을 싫어한다. 감독과 교류하며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같이 이야기하며 만들어나간다. 그런 소통이 되게 어렵다거나 그런 분들은 없는 것 같다. 장항준 감독은 개인적으로 친구 관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독님을 향한 필터가 덜 하다. 아이디어를 평소보다 더 말하게 된다. 감독님과 다른 스태프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글을 참 잘 쓰는 감독님이기도 하다. 어떤 아이디어나 이런 것을 전달드리면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하시고 뚝딱 고쳐 오시더라.

- '왕사남'만의 흥행 비결을 꼽는다면.
▶ 우리 작품은 타겟이 20~30대만은 아닌 것 같다. 12세 등급이 나왔고 온 가족이 봐도 좋을 영화다. 젊은 층은 충분히 박지훈이가 커버할 거다. 팬들이 항상 '지훈아, 지훈아'라 부르며 쫓아다니더라. 이야기도 많은 세대 관객들이 좋아하실만한 이야기다. 모처럼 많은 세대가 폭넓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나왔다.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만났다. 설 명절과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 나왔다.
- '올빼미'에서 웃음기 쏙 뺀 얼굴로 인조 역을 열연해 호평을 받았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그에 정반대인 필부 엄흥도 역을 만타 웃음부터 눈물까지 감정의 진폭이 넓은 연기를 자유자재로 선보였다. 매번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를 맞춤옷처럼 소화해내는 비결은 뭔가.
▶ 글쎄 옷만 다르게 입었을 뿐 유해진 아닌가.(웃음) 제가 노력하려고 하는 부분은 이야기 속에 잘 녹아있으려 하는 것이다. 캐릭터가 이야기 속에 잘 살아 있느냐 아니면 이야기 속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가 하는 차이 같다. 만일 불편했다면 제가 연기를 잘 못한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유해진이 이야기 속에 잘 묻어나고 녹아든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의 목표는 작은 장면에 잘 녹아들고 그 장면의 대사를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느냐가 관객들께 제대로 녹아들 수 있다.
- 다른 작품들에서도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모든 장면에 칼을 갈았다고 느껴질 만큼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
▶ 저는 할려고 했는데 그렇게 보여졌다면 다행이다. 모든 작품에서 다 칼을 간다. 이 작품이 그런 면이 더 보여질 수 있도록 나온 것 같다. 아무래도 가장 신경을 쓴 장면은 마지막 엔딩이다. 어떤 계산도 하지 않고 엄흥도의 그 마음만 가지려고 했다 정말 중요한 감정신이기에 카메라도 두 세대를 준비해 주셨다. 제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 제 감정을 최대한 해치지 않게 담아내려고 촬영팀에서도 최영환 기사님이 많이 신경을 써주셨다.
- 데뷔이후 우상향하는 성공 흥행 공식을 써왔다. 50대 중반이 넘어선 흥행이나 작품성, 인기 면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는데 유해진만의 생존 비결이 있었다면.
▶ 제가 생존하려고 한다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다 생존할려고 하지 않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어떻게 작품을 할 수 있나' 생각해보면 연출을 맡은 감독님 그리고 제작하는 분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에 서로 도움이 될려고 노력해왔지 않나 싶다. 계속 아이템도 내고 아이디어도 내면서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동참하려 해왔다. 그런 것에 생존 비결이 있지 않을까. 연기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번 작품은 분장 차량에서 촬영 현장까지 2km를 걸어가야만 했다. 그런 시간에 매우 중요하고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있다면 늘 책을 보면서 그 상황에 대해 되뇌이고 되뇌였다. 무식하게 접근하는 방법 밖에 없다. 대사가 잘 안외워질 때가 있는데 늘 대본을 놓지 않는다. 뭐가 있겠지 생각하면서 대본을 놓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좋은 무엇인가가 태어난다. 그런 방법 밖에는 없다.
- 작품 활동을 하며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시간은?
▶ 햇빛이 좋은 날 현장에서 사람들과 행복하게 작업을 마친 후 소주 한잔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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