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몰래 두고 간 과일이 1279상자···이번 명절에도 찾아온 광주 하남동 ‘과일천사’

강현석 기자 2026. 2. 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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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쌀 기부, 이듬해부터 과일 기부
매년 “이웃과 함께 나눠 기쁘다” 메시지
2024년 추석에 기부 끊겼지만 작년 재개
“명절 알리는 신호탄, 마음 잘 전달할 것”
지난 9일 광주 광산구 하남동에 익명으로 배송된 배 30상자. 기부자는 15년째 설과 추석에 과일일 기부하고 있다. 광산구 제공.

“올해 설 명절에도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설을 앞두고 있던 지난 9일. 광주 광산구 하남동행정복지센터에 농협 하나로마트 배달 차량이 들어섰다. 차량에는 선물용으로 포장된 배 30상자가 실려 있었다.

배달 기사는 “익명으로 배달을 요청하신 분께서 함께 전달해 달라”고 했다며 배와 메시지를 행정복지센터 직원에게 건넸다. 이날 배달된 배는 명절을 앞두고 하남동에 전달된 28번째 ‘과일 기부’였다.

광주 광산구 하남동에는 15년째 설과 추석 명절이면 꼬박꼬박 익명으로 과일을 기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차량에 수십 상자의 과일을 직접 싣고 와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퇴근한 이후 몰래 두고 갔다.

첫 기부의 시작은 2011년 1월이었다. 그는 20㎏ 쌀 35포대를 행정복지센터 입구에 몰래 쌓아두고 갔다. 기부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2012년 9월부터는 기부 품목이 과일로 바뀌었다. 추석을 앞두고 출근한 공무원들은 포도 50상자를 발견했다. 이듬해 추석에도 포도 50상자가 기부됐다.

2014년부터는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 명절을 앞두고 꼬박꼬박 50상자 안팎의 과일이 행정복지센터에 쌓였다. 2014년 1월과 9월 사과 50상자가 도착했다. 이듬해에도 설과 추석에 배와 사과 50상자를 각각 기부했다. 하남동 주민들을 그를 ‘얼굴 없는 과일 천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행정복지센터가 기부받은 과일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명절을 열흘 정도 앞둔 시점에 기부해 왔던 과일 천사는 2016년 9월에는 연휴 시작을 이틀 앞둔 시점에 찾아왔다.

당시 월요일에 출근한 공무원들은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쌓인 사과 25상자와 배 25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위에는 “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려운 차상위계층에 전하면 좋겠습니다”라고 손으로 쓴 쪽지가 놓여 있었다.

2016년 추석을 앞두고 광주 광산구 하남동에 과일일 기부한 익명의 기부자가 남기고 간 메모. “과일 기부가 늦어서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광산구 제공.

행정복지센터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일요일이었던 9월11일 오후 10시10분쯤 누군가 차량에서 과일 상자를 주차장에 내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과일 천사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지만 기부자의 뜻을 생각해 누구인지 찾지 않기로 했다.

이후 기부를 다시 이어오던 과일 천사는 2024년 9월 처음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설에만 해도 배 28상자와 천혜향 22상자를 행정복지센터에 쌓아두고 갔지만 그해 추석에는 과일이 도착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혹시 기부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과일 기부는 2025년 1월 설을 앞두고 다시 이어졌다. 기부자는 샤인머스캣 50상자를 행정복지센터에 내려놓은 뒤 “지난 추석 찾아오지 못해 죄송했다. 아쉬운 마음만큼 더 자주 더 많은 이웃을 돕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직접 과일을 차량에 싣고 와 행정복지센터에 두고 가던 과일 천사는 올해 설에는 처음으로 ‘마트 배달’을 이용했다.

그가 지금까지 하남동에 기부한 과일은 1279상자에 달한다. 또 20㎏들이 쌀 35포대, 2㎏ 떡국 떡도 246봉지나 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 상당에 해당한다.

기부된 과일 등은 매년 명절 하남동 관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가정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과일 천사의 선행은 하남동에서는 명절을 알리는 신호로 자리 잡았다.

하남동 관계자는 “혹시라도 기부자가 숭고한 뜻을 해칠까 봐 누구인지 찾지 않으려 한다”면서 “이웃 모두가 따뜻한 명절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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