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트럼프 열기’…사상 최고치 4개월 만에 ‘크립토 윈터’ 오나

김진철 기자 2026. 2. 1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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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 ‘나노 바나나’에 기사를 읽고 그리라고 명령해 얻은 삽화.

가상자산 시장에 공포가 가득하다. 가상자산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이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올해 들어 20% 이상 폭락하며 사실상 ‘크립토 윈터’(가상자산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17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트럼프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 것은 물론 그보다 더 많이 빠졌다. 비트코인이 치솟기 시작한 것은 2024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다. 당시 7만달러대에 머물던 비트코인은 ‘랠리’를 거듭하며 2025년 10월6일 사상 최고가인 12만5천달러선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흘 뒤인 10일 190억달러 규모의 레버리지 물량이 단번에 청산되며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고점에서 누적된 레버리지 물량이 일거에 쏟아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탓에 시장 심리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후 뚜렷한 반등 계기가 나타나지 않았고 4개월 넘게 하락세를 지속해 지난 2월5일 6만70달러까지 밀렸다.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한 것이다.

비트코인 외에 주요 알트코인들은 더 크게 빠졌다.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이 최고점을 찍은 직후인 지난해 10월7일 9920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지난 5일 4150달러까지 주저앉았다. 고성능 블록체인으로 주목받은 솔라나는 지난해 10월8일 740달러까지 오르며 폭발적 상승세를 보였다가 이달 210달러대까지 빠졌다. 오랜 소송 리스크를 털어낸 리플 역시 지난해 10월9일 4.82달러까지 급등했지만 현재는 1.5달러대까지 추락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인덱스 구실을 하는 비트코인이 흔들리자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큰 알트코인에서 자금은 더욱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선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시각마저 제기된다. 무엇보다 강력한 대목은 비트코인을 지탱하는 핵심 논리인 ‘디지털 금’ 서사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 가격과 함께 움직이며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던 비트코인은 최근 미국 나스닥 등 기술주와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격 추이가 초위험 자산의 성격을 드러내는 가운데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상자산 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의 리서치 총괄 잭 팬들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이 최근 금이 아닌 기술주와 밀접하게 움직이고 있다. 2024년 초부터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으며 비트코인의 단기 가격 움직임은 안전자산 성격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짚었다.

수급 악재까지 겹쳤다. 상승장을 지탱하던 저가 매수 심리는 사라졌고 매도 물량만 쏟아지는 ‘유동성 절벽’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시장을 가장 크게 흔드는 것은 ‘트럼프 랠리’를 주도한 기관 투자자들의 이탈이다. 특히 현물 상장지수펀드 (ETF )에서 자금 유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 주요 운용사의 비트코인 현물 이티에프에서는 지난 1월 말~이달 초 하루 평균 3억5천만달러가 순유출됐다.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비트코인 지지선마저 붕괴하자 기관들이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

채굴자와 개인투자자들도 시장을 떠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채굴 손익분기점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떨어지자, 운영 자금 압박을 느낀 중소형 채굴업체들이 보유 물량을 시장에 던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채굴자 보유량(Miner Reserve)은 2024년 반감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매도 압력을 가중하고 있다.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의 현물 거래량이 전고점 대비 70% 이상 급감하고 선물시장에도 상승에 거는 매수세가 사실상 전멸한 것은 개인투자자들이 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주요 금융기관들은 비트코인 가격 전망치를 잇달아 낮춰잡고 있다. 낙관론은 자취를 감췄고 단기 하방 압력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제이피(JP)모건은 “시장 내 거품 붕괴와 채굴 비용 증가 등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 4만2천달러까지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5만달러 지지선이 붕괴할 경우 패닉 셀링(공황 매도)이 가속화되며 바닥을 다지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 상황은 장기 침체의 초입일 수 있다는 경고도 쏟아지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맥스 창립자 아서 헤이즈는 최근 기고문에서 “‘트럼프 펌프’는 죽었다. 빙하기에 온 것을 환영한다. 유동성이 고갈된 상황에서 2026년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L’자형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마이크 맥글론 수석 전략가는 “시장은 ‘위대한 되돌림’(Great Reversion)에 직면해 있다. 비트코인이 6만달러 지지선을 내줄 경우, 다음 바닥은 5만달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10x 리서치는 ‘기관들이 떠나고 있다’(End of ETF Era)는 보고서를 내어 “현재는 2022년 하락장 초입과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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