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 고민하던 아이 장학금 받는 ‘명예경찰’ 별명이 생겼다…흔들리는 아이들 버팀목 된 경찰관

이용경 2026. 2. 17. 07:4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온기(溫記: 따스함을 기록하다)
‘학교전담경찰’ 김하은 경장 인터뷰
‘권위’보다는 ‘공감’의 힘을 믿는다
‘관심’과 ‘선한 영향력’은 순환한다
김하은 경장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여기, 흔들리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위태로운 청소년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정하게 붙잡고 그들의 불안한 하루하루를 ‘파수꾼’처럼 지켜낸다. 그에게서 용기를 얻은 어떤 아이는 방황을 멈추고 한 걸음씩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믿을 만한 어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직업적 소명과 인격을 갖춘 한 사람의 어른. 그가 건넨 따뜻한 시선과 손길은 한 아이의 삶에 이정표가 됐다. 이번 온기(溫記) 인터뷰의 주인공은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 일하는 김하은(29) 경장과 위탁보호청소년 은하(가명)* 양이다. 이들을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만났다.

*소년법 제68조 및 언론윤리 규범 등에 따라 학생의 이름을 가명으로 표기한다. 기타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사진·나이·소속·보호처분 내용 등도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권위’보다는 ‘공감’의 힘을 믿는다

‘보호’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청소년에게 보호는 종종 부담스런 존재로 다가온다. 법원과 경찰, 상담과 관리라는 말들이 언제나 함께 따라붙기 때문이다. 위탁보호 대상 청소년인 은하에게도 경찰서나 법원은 결코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보단 늘 혼나러 가는 곳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보다 법원과 보호관찰소 상담실이 더 익숙해질 무렵, 은하는 김 경장을 만났다. 그리고 이 선입견이 서서히 깨졌다고 했다. “경찰서에서 처음 만나기 전까진 막연하게 나이도 좀 많고 권위 있는 모습을 한 경찰관이 나오실 줄 알았는데, 막바로 ‘안녕’이라면서 웃으며 마중을 나오셨었어요. 경찰관이라는 느낌보단 그냥 ‘언니’ 같다는 느낌이 들어 호감이 갔어요.”

김 경장과 은하는 지난해 4월 위탁보호위원과 보호 대상 청소년의 관계로 처음 만났다. 위탁보호위원은 소년법 제32조 제1항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며 이들이 학교와 가정 등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김하은 경장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평소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컸던 김 경장 특유의 다정함이 은하의 마음을 움직였던 걸까. 평소 낯을 가리고 사람을 경계하던 은하도 김 경장과의 만남을 곧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김 경장은 “같은 청소년기를 지나며 그 시기가 어떤 감정인지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은하의 상황에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해 주고 싶었다”며 “호칭은 ‘경장님’이나 ‘선생님’이라고 불려도 내심 은하가 저를 언니처럼 친근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김 경장은 학창 시절부터 아동·청소년 심리 분야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도 아동복지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청소년 상담’ 수업을 들으면서 ‘학교폭력’을 주제로 배운 적이 있어요. 이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를 찾아보며 공부하다가 학교전담경찰관이 되면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도, 가해자인 학생도 각자에게 맞는 방법대로 지원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경찰 시험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결심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긴 김 경장은 스스로 바라던 대로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됐다. 그렇게 서울경찰청 아동청소년계와 청소년보호계 근무를 거쳐 현재는 서울 마포서 소속 SPO로서 은하를 비롯한 위기 청소년들에 대한 선도보호 및 면담을 이어가고 있다. 김 경장은 앞으로 청소년들의 마음 상태와 그들의 행복에 관한 연구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김 경장은 현재 아이들에게 ‘하은쌤’으로 통한다. 은하가 전하는 몇 가지 일화를 들어봐도 김 경장이 얼마나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지 느껴졌다. “다들 학교 선생님 부르듯이 ‘하은쌤 보고 싶다’고 말할 때가 많아요. 친구 집에서 맛있는 걸 먹거나 어딘가에 놀러 갔을 때도 하은쌤은 어떻게 알고 또 전화하세요. 그럴 때마다 ‘요즘은 누구랑 많이 논다’거나 ‘어떤 고민이 있다’ 등의 얘기를 나누는데 진짜 편한 친언니가 생긴 것 같았어요.”

‘관심’과 ‘선한 영향력’은 순환한다

아이들이 김 경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친절함 때문이 아니다. 김 경장이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서 분명한 원칙과 책임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면담관리를 할 때는 아이들이나 보호자의 자율성을 존중해 최대한 도와주려 노력한다”며 “선도와 보호를 하는 입장에서 안 되는 부분은 안 된다고 확실하게 얘기해주고 어떤 부분들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고 했다. 특히 김 경장은 “한순간 잘못된 행동을 한 학생에게 ‘너는 완전히 그런 애’라고 단정 짓지 않는 게 필요하다”며 SPO로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은하는 이러한 김 경장을 믿고 따른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도 가족보다 더 크게 기뻐하며 주변에 자랑하던 사람이 바로 김 경장이라고 한다. “하은쌤은 되게 작은 일도 칭찬해주는 성격이라서 항상 ‘잘한다’, ‘멋있다’고 말해줬어요. 이후부턴 쌤한테 자랑할 만한 게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한 번은 학교에서 몇 등을 했다고 하니 핸드폰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쌤이 여기저기 자랑을 했어요. 그 리액션이 정말 동기 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김 경장은 학기 도중 자퇴를 고민하던 은하를 설득해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은하는 “한창 힘들 때 자퇴하고 후회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데 그걸 사전에 방지해 준 게 하은쌤”이라며 “그 당시 전화를 했을 때 하은쌤의 첫 마디가 ‘은하야 자퇴는 아니야 다른 길을 찾아봐’였다”고 회상했다. 그간 김 경장과 쌓아 온 깊은 신뢰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은하는 곧바로 자퇴 생각을 단념하고 다시 학업에 전념했다.

김하은 경장이 12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제 은하는 결석을 반복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과목을 공부하고,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학교에 나간다. 지난달에는 법원에서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위탁보호위원인 김 경장이 은하를 장학금 대상자로 추천했다. 김 경장은 “우선 은하의 생활 태도가 정말 좋고, 평소 사람들을 만날 때 예의도 남다르다”며 “본인의 진로에 대해서도 스스로 주도적으로 계획해 나가는 모습에 장학금 대상자로 꼭 추천하고 싶었는데 마침 법원도 그러한 부분을 반영해 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은하는 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처음엔 하은쌤이 저를 추천해 주신다고 해서 선정될 거라는 큰 기대는 안 했어요. 그냥 한 번 도전해 보는 생각으로 하은쌤에게 ‘감사하다’고 하고 한참을 잊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화가 와서 조금 놀라긴 했어요.” 좋은 일로 법원에 간 건 처음이라던 은하. 장학금 수여식에서도 김 경장은 동료들과 함께 꽃다발과 축하 현수막을 만들어 은하를 응원했다고 한다. 은하는 덕분에 장학금 수상 이후 더 큰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위탁보호는 6개월이 지나면 종료된다. 하지만 김 경장은 최근 은하에 대한 위탁보호 기간을 더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어떤 문제가 있거나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은하가 계속해서 잘 지내고 성장하는 모습을 조금 더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김 경장은 “SPO로서 늘 보람을 갖고 일하고 있다”며 “특히 아이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항상 경찰관들이 있구나’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현장에서 진심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김하은 경장의 명함은 두 개다. 하나는 일반 명함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캐릭터가 그려진 명함이다. 청소년들이 SPO경찰관에 대해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하은 경장 제공]

이제 은하는 김 경장이 보여준 이러한 관심을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따금 ‘가족들에게 그렇게 하지 마라’, ‘학교에 나가라’, ‘안 좋은 친구 만나지 마라’라는 잔소리도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김 경장은 요즘 은하를 ‘명예경찰’로 부른다. 은하는 그러면서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은 방송 쪽으로 진로를 잡고 있지만, 하은쌤을 보면서 공무원이나 심리상담 분야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우연히 만나 특별한 인연을 쌓아가고 있는 김 경장과 은하에게 인터뷰 끝에 서로의 의미를 물어봤다. 김 경장은 은하를 세잎클로버 속에서 발견한 ‘네잎클로버’라고 말했다. 김 경장은 “은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말 성숙하고 자기만의 결단력으로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친구”라며 “업무로 힘들고 후회되는 순간에도 이 직업과 부서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은하는 김 경장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은하는 “고민이 있으면 혼자서 생각하던 타입이었는데 이제 그 고민을 털어놓고 답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며 “누구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지만, 정말 하은쌤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이제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경장과 은하는 인터뷰가 끝난 뒤 맛있는 걸 먹으러 갈 예정이라 했다. 떡볶이를 먹을지 아니면 다른 메뉴를 고를 지 고민하는 모습에서 ‘경찰’과 ‘위탁보호청소년’이 아니라 그저 ‘언니’와 ‘동생’으로 보였다.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