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원 붕괴한 비트코인, 공포인가 기회인가

김태현 기자 2026. 2. 17. 06:36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식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 비트코인은 홀로 40% 증발했다. 현재 공포지수 8로 2020년 코로나 패닉에 가까운 수치 속에서, 이번 하락은 단순한 거품 조정이 아니라 비트코인을 지탱하던 세 개의 기둥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라는 얘기가 나온다.

[우먼센스] 2026년 2월 11일,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미국 주식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 비트코인은 홀로 1억 원 벽을 뚫고 추락했다. 지난해 10월 약 12만 7000달러 고점 대비 40% 이상 증발했다. 

사진=업비트 캡처

2월 13일 현재 코인마켓캡(CMC) 가상자산 공포탐욕지수는 8이다. 2020년 코로나 패닉 당시가 5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쟁급 공포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마이클 버리는 비트코인이 5만 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번 하락은 과거와 다르다. 단순한 거품 조정이 아니라 비트코인을 지탱하던 세 개의 기둥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표면의 악재: 금리와 규제

먼저 익숙한 이유부터 짚어보자.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하게 나오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꺾였다. 금리가 높으면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위험자산은 외면받는다. 지난해 10월 급락 이후 비트코인 ETF에서 약 80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평균 매수가 9만 달러, 현재 가격은 6만 달러대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채굴 자본의 대이동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생태계의 충성스러운 수호자였다. 고성능 컴퓨터로 복잡한 암호 퍼즐을 풀어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이들은 막대한 전기료를 감당하면서도 24시간 채굴기를 가동했다. 가격이 떨어져도 보유 비트코인을 매도하지 않고 반등을 기다렸다. 시장 바닥에서 가격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상황이 역전됐다. 아이리스 에너지(IREN), 코어 사이언티픽(CORZ) 같은 대형 채굴사들이 비트코인 채굴기를 중단하고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전력 인프라와 냉각 시스템, 24시간 가동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엔비디아 GPU만 설치하면 대형 생성형 AI 모델에 필요한 컴퓨팅 파워를 기업들에게 임대할 수 있다.

수익성이 비교가 안 된다. 비트코인 채굴은 가격 변동성이 크고 4년마다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반면 AI 연산 임대는 안정적이며 수익률도 2~3배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채굴사들은 보유 비트코인을 매도해 GPU를 확보하고, 전력 자원을 AI 연산에 우선 배분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을 지탱하던 '채굴 원가' 논리가 무너지는 중이다.

가상자산 커뮤니티 '변창호 코인사관학교'를 운영하는 변창호 씨는 "AI 이슈에 밀려 비트코인이 소외받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단기적으로 자금이 쏠리거나 빠져나가는 현상은 어떤 자산군에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 위협과 느린 대응

아직 먼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양자컴퓨터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비트코인 보안은 철통이라고 여겨졌다. 비트코인은 복잡한 수학 문제로 보호받고 있는데, 이를 푸는 데 슈퍼컴퓨터로도 수백 년이 걸리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논리였다. 어쩌면 양자컴퓨터는 이를 몇 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 

일부 보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양자컴퓨터가 비트코인 암호를 깰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언제 깰 것이냐의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오래된 비트코인 지갑들은 양자컴퓨터가 개인키를 역계산할 수 있어 취약하다.

기술적으로는 '양자 내성 암호'로 업그레이드하면 방어할 수 있다. 문제는 비트코인의 작동 방식이다. 비트코인은 전 세계에 흩어진 노드들이 합의를 통해 작동한다. 보안 업데이트를 하려면 노드들의 과반수 동의가 필요한데, 과거 업그레이드 논쟁은 수년씩 걸렸다. 

양자컴퓨터 공격은 며칠 내에 대응해야 하지만, 비트코인의 합의 구조는 그만큼 빠르지 않다. 탈중앙화라는 가장 큰 장점이 위기 대응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다.

진짜 디지털 금의 등장

비트코인의 가장 강력한 서사(내러티브)는 '디지털 금'이었다. 2,100만 개로 제한된 공급량, 중앙은행의 간섭을 받지 않는 탈중앙화 구조,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 이 내러티브로 비트코인은 금의 디지털 대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이 서사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실물자산 토큰화(RWA)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짜 금을 디지털로 거래할 수 있게 됐다. Pax Gold(PAXG) 같은 금 연동 토큰은 1토큰당 실물 금 1온스를 담보로 한다. 비트코인의 희소성 논리와 금의 실물 가치를 동시에 갖춘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마이클 버리는 "비트코인이 순수한 투기 자산임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금과 은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비트코인은 급락했다. 

버리는 '죽음의 소용돌이(Collateral Death Spiral)'를 경고한다. 비트코인이 현재 가격에서 10% 더 하락하면 마이크로스트래티지 같은 대규모 비트코인 보유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평가손실을 입게 되고,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스트래티지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게 되고, 그에 따라 가격 하락이 가속화된다는 시나리오다. 그가 제시한 임계점은 5만 달러선이다. 2월 13일 현재 비트코인은 약 6만 60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반면 변창호 씨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비트코인이 금과 비슷한 포지션은 맞지만 정확히 같은 포지션은 아니다. 미국이 달러를 더 많이 발행할수록 비트코인의 필요성은 커진다."

극도의 공포 속 자본의 움직임

공포가 극에 달했지만 자본은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스트래티지를 이끄는 마이클 세일러는 이번 하락을 "신념 있는 자들을 위한 선물"이라며 추가 매입에 나섰다. JP모간은 시장 시가총액이 한 달 만에 3조 1000억 달러에서 2조 3000억 달러로 감소했음에도 "2026년 기관투자자 주도의 자금 유입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변창호 씨는 "ETF로 유입된 기관 자금이 전부 손실 상태이고, 대형 기관들의 비트코인 포트폴리오 편입이 늘고 있다"며 "구매자는 분명 많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들의 베팅도 주목된다. 네이버는 업비트 운영사에 지분 투자를 진행하며 가상자산 시장과의 접점을 넓혀왔다.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미국 법인을 활용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인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블록체인 관련 조직을 확대하고 거래소급 인프라 구축을 위한 개발자 채용에 나섰다.

변창호 씨는 "3만 6,000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경우 코로나 시기와 유사한 가격대가 될 것"이라며 "자산 사이클상 조정 국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목표가를 두 달 만에 1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제프 켄드릭 디지털자산 리서치 총괄은 비트코인 5만 달러, 이더리움 1400달러까지 하락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번 조정이 2022년보다 덜 극단적이었고 주요 플랫폼의 연쇄 붕괴를 촉발하지 않았다"며 "자산 클래스가 성숙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격이 아니라 역할의 재정의

과거 비트코인 하락은 거품 조정이었다. 2017년 ICO 열풍, 2021년 밈코인 광풍 이후 하락했다가 반등했다. 이번은 다르다. 채굴 자본이 AI로 이동하고, 디지털 금 서사가 실물 담보 자산과 경쟁하며, 느린 합의 구조가 양자컴퓨터 시대의 약점이 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처음으로 산업적 경쟁에 직면했다.

과거에도 극도의 공포 국면이 있었다. 2018년 말, 2020년 3월, 2022년 하반기. 그때마다 반등이 왔지만, 과거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금 비트코인에 필요한 건 가격 반등이 아니라 새로운 증명이다. 디지털 금 서사만으로는 토큰화된 금과 경쟁할 수 없다. AI와의 수익 경쟁에서 밀린 채굴업체들을 재유입시킬 방법도 불투명하다. 양자컴퓨터 시대에 느린 합의 구조가 어떻게 작동할지도 미지수다.

"금이 시대적 요구를 만나 가치를 증명했듯 비트코인도 그 과정을 앞두고 있을지 모른다. 하락하고 있다고 해서 자산의 생명이 끝난 건 아니다."

한 가상자산 투자자는 이런 시각을 제시한다. "본인 역시 비트코인 투자자로서 낙관적인 편향이나 선입견이 투영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싶다. 다만 역사적으로 금이 오랜 외면 끝에 최근 시대적 요구를 만나 폭발적 가격 상승으로 가치를 증명했듯, 비트코인 역시 그 과정을 앞두고 있다고 본다"며 "'비트코인이 무조건 최고'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금 투자자가 하락장을 만났다고 해서 금의 시대가 끝났다고 쉽게 단정 짓지 않듯이, 자산의 본질을 믿고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은 지금 자신의 지위를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섰다. 앞서 투자자가 말했듯 지금의 진통은 이 자산이 다음 세대의 표준이 될 수 있는지 결정짓는 필연적인 시험대다. 증명에 성공하면 새로운 경제 표준의 한 축이 되겠지만, 실패하면 가치 저장 수단 지위를 경쟁자들에게 내줄 수도 있다. 가격보다 구조적 변화를 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Copyright © 우먼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