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 와인 제조기’ 필립 멜카의 역작, ‘나파 밸리 숨은 보석 컬트’ 로이 에스테이트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샤토 페트뤼스·샤토 오브리옹 만든 스타 와인메이커/2004 첫 빈티지부터 파커 점수 94점 받아/보르도 우아함·나파밸리 과실미 결합해 단숨에 ‘컬트 와인’ 반열 올라

AVA 규정을 지킬 수 없어 나파 밸리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브 AVA를 레이블에 표시하려면 그 곳 포도를 최소 85% 사용해야하는데, 유명 와이너리들은 뛰어난 여러 산지 포도를 섞어서 만들기 때문이 이를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장인 정신으로 소량의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은 좀 다릅니다. 여러 지역 포도를 섞지 않고 직접 소유한 아주 작은 면적의 싱글빈야드에서 공들여 재배한 포도로 빼어난 와인을 선보입니다. 로이 에스테이트(Roy Estate)가 대표적입니다.

와이너리는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토목 기술자이자 건축가인 찰스 로이(Charles Roy)와 회계사이자 미식과 와인을 사랑하는 셜리 로이(Shirley Roy)는 함께 운영하던 오피스 빌딩 개발·설계 컨설팅 회사를 매각하고 여생을 보낼 곳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다 1999년 나파 밸리에서 한 저택과 땅 42에이커를 구입했는데 유명 프로 골퍼 조니 밀러(Johnny Miller)가 소유했던 곳입니다.
부부는 처음부터 와인을 만들 생각을 없었습니다. 단지 포도나무를 조금 심어 판매하려했는데 우연히 유명 와인 메이커 헬렌 털리(Helen Turley)가 땅을 보고 뛰어난 컬트 와인이 탄생할 잠재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간파합니다. 이에 7ha에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쁘띠 베르도를 심었고 2004년 첫 빈티지 와인이 탄생합니다.




나파 타운에서 동북쪽으로 차로 10여분을 달리면 스택스 립 디스트릭트 남단에 있는 로이 에스테이트를 만납니다. 실버 오크(Silver Oak) 와이너리의 소다 캐넌 랜치 빈야드(Soda Canyon Ranch Vineyard)와 바로 붙어있는 곳으로 포도 재배에 뛰어난 떼루아를 지녔습니다.
바카 산맥에 속한 해발고도 약 800m 아틀라스 피크가 동쪽 내륙에서 오는 더운 기운을 막아주고 큰 일교차를 선사합니다. 남쪽 산 파블로 베이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잘 들어옵니다. 덕분에 천천히 완숙에 도달해 집중도가 뛰어난 포도가 생산되고 나파밸리 북부보다 상대적으로 신선하고 우아한 스타일의 와인이 빚어집니다. 로이 에스테이트는 이런 포도밭 7ha에서 세 종류 와인을 연간 1만8000병만 생산합니다. 포도가 아주 뛰어난 해에만 생산하는 라 레뵈즈(La Rêveuse)는 600병에 불과합니다.


이에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쁘띠 베르도를 섞은 미스터 에반스 프로프라이터리 레드(Mr. Evans Proprietary Red)와 쁘띠 베르도를 소량 블렌딩한 카베르네 소비뇽 두 종류가 탄생합니다. 파커는 2004 빈티지 카베르네 소비뇽에 94점을 줬고 이듬해 프로프라이어터리 레드가 95점을 받으면서 로이 에스테이트는 첫 빈티지부터 컬트 와인 수준의 반열에 오릅니다. 특히 보르도의 우아함과 나파밸리의 과실미를 모두 지닌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로이 에스테이트는 서울와인앤스피릿(SWS)이 수입합니다. 한국을 찾은 수출 디렉터 브라이언 주폰(Bryan Zupon)은 “로이 에스테이트는 25년전만 해도 소와 돼지를 기르던 목장이었어요. 약 7ha 규모로, 나파밸리의 다른 와이너리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모든 와인은 외부 포도를 구입하지 않고 이 단일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만으로 생산한답니다. 로이가 뛰어난 품질을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죠. 필립이 20년 넘게 와인 메이킹을 맡아 일관된 스타일을 만드어 내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는 배경입니다. 필립은 나파밸리에서도 프리미엄 보르도 스타일 블렌딩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해요. 구조감과 균형을 중시하는 스타일을 잘 유지합니다. 메를로 비율이 높은 미스터 에반스는 부드럽과 과일향이 뛰어나 안심 요리와 잘 어울려요. 카베르네 소비뇽은 구조감이 강해 기름기가 좀 있는 등심 요리와 궁합이 좋답니다.”



카베르네 소비뇽 94%, 쁘띠 베르도 6%
블랙 체리, 블랙 플럼, 블루베리 등 검푸른 과실 향이 폭발적으로 피어오르고 타임, 민트, 펜넬 같은 야생 허브 향과 볶은 커피 빈, 베이킹 스파이스, 갓 일군 흙의 뉘앙스, 토스트 곡물과 마른 건초향이 겹겹이 쌓여 복합미를 더합니다. 입에서는 잘 익은 검은 과실과 다크 초콜릿, 에스프레소, 흑연 풍미가 느껴집니다. 로이 에스테이트 특유의 화산재 토양에서 오는 미네랄리티와 벨벳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탄닌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피니시에서 매우 길고 층층이 쌓인 풍미가 이어지집니다. 신선한 산도 덕분에 뒷맛이 깔끔하고 우아하게 마무리됩니다. 그릴에 구운 립아이 스테이크, 허브를 곁들인 양갈비 구이, 와인 소스를 곁들인 소갈비찜, 감칠맛의 야생 버섯 리조또, 구운 포토벨로로 잘 어울립니다. 연간 300~450케이스 생산. 최고급 프랑스 오크통 타랑소(Taransaud) 새 오크통에서 최대 29개월 숙성.


카베르네 소비뇽 60%, 메를로 29%, 프티 베르도 11%
갓 으깬 블랙베리, 붉은 자두향이 지배적이고 말린 장미 꽃잎, 세이지, 은은한 삼나무와 바닐라의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입안에서 질감은 매우 실키하고 세련됐습니다. 메를로가 주는 부드러운 과실미와 카베르네 소비뇽의 구조감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토피, 카카오 닙스, 다크 초콜릿과 연필심의 힌트가 우아함을 더합니다. 탄닌이 매우 곱고 신선한 산도와 함께 긴 여운을 남깁니다. 부드러운 안심 스테이크, 허브 시즈닝을 한 로스트 치킨, 천천히 익힌 오리 가슴살 요리, 트러플 오일을 곁들인 버섯 파스타나 라구 소스 라자냐와 잘 어울립니다. 프로프라이터리 레드로 생산하던 와인을 2015 빈티지부터 미스 에반스(Mr. Evans) 변경했습니다. 연간 400~750케이스 생산. 타랑소 새 오크통에서 최대 19개월 숙성.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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