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의 연대기’ 감독 데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모든 걸 질투하다

드디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한 여자에 대해 말할 차례가 됐다. 커리어, 능력, 태도, 쏘아보는 듯한 눈빛, 비음 섞인 낮은 목소리, 대충 쓸어 넘긴 거친 머리칼, 청바지 밑단을 롤업해 발목을 드러내고 스니커즈를 구겨 신는 스타일, 흡연을 하는 포즈, 삶을 대하는 방식,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질투 나는 그 여자,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대하여.
왜 지금이냐 하면, 그 여자가 첫 장편영화 연출작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것이 끝내주게 훌륭했기 때문이다. 영화 ‘물의 연대기’는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트라우마로 얼룩진 여자의 자기 고백적 글쓰기와 더불어, 그것이 재구성해내는 삶을 담은 작품이다.
원작을 펼쳐 들자마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신체적 감응”을 느껴 단 40페이지를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결정은 무척 과감했다. 자전적 소설과 에세이 사이에 있는 이 원작엔 선형적인 서사가 없다. 원작자가 기억을 호출하는 방식은 둘쭉날쭉하고 파편화되어 있으며, 이야기로서 성립할 만한 기승전결의 사건들 대신, 날 것의 감각과 이리저리 날뛰는 생각들에 대한 묘사만이 만연체로 흘러넘친다.
어느 용감한 감독이, 제작자가, 스튜디오가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덤비겠는가? 그것을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했다. 그것도 자신의 첫 영화 연출작으로. 스튜어트는 8년 간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또 썼고, 이 평범하지 않은 작품이 왜 영화가 될 수 있는지 숱한 이들을 설득해야 했으며, 찍고 또 찍으며 편집을 거듭했다.
그리고 스튜어트 자신만의 언어로 만들어낸 영화 ‘물의 연대기’가 도착했다. 원작과는 또 다른, 넘어서는, 넘쳐흐르는, 16mm 필름으로 담아낸 빛과 색, 소리와 통각, 살결과 물길로 재구성한 총체적인 세계가. 연출자로서 스튜어트는 누군가의 전기나 회고록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강렬한 존재감의 배우 이모젠 푸츠의 몸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기억의 파편들을 시처럼 재구성하고, 글보다 영화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인 감각적인 심상들을 운율에 따라 배치하며, 때론 그것이 이야기 대신 말하게 하고(학대의 경험을 젖은 피부에 달라붙는 반복적인 매질 소리나 벽 모서리의 까만 얼룩을 응시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듯이), 자기 고백적 글쓰기가 어떻게 트라우마에 매몰된 여성의 삶을 기어이 재탄생시킬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다시 태어남. 자신의 삶을 재정의함. 트라우마와 실패와 치부로 얼룩진 삶의 조각조각들을 꺼내어, 수치심을 넘어 고백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화함. 그것을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 ‘물의 연대기’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상흔과 비밀과 실패를 간직한 채 살아온 이 땅의 취약한 이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건넨다.

알다시피,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양성애자이다. 2025년 여름, 오랜 연인이던 여성 시나리오 작가 딜런 메이어와 결혼했다. 그가 처음부터 양성애자임을 알린 건 아니다. 영화 ‘패닉룸’의 아역으로 일찌감치 대중에게 존재를 알린 스튜어트는 십 대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어마어마한 흥행작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여자 주인공 ‘벨라’의 이미지로 할리우드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마찬가지로 인기를 얻은 남자 주인공인 로버트 패틴슨과의 뜨거운 열애로 ‘롭스틴’이라는 거대한 커플 팬덤을 형성했다. 그때까지는 ‘발 연기’ 소리도 꽤나 들었고, 미모와 가십을 앞세우는 젊은 스타 여배우의 이미지가 한동안 낙인처럼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결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벨라’의 치렁치렁한 헤어스타일에서 벗어났고,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구겨 신은 중성적인 스타일링으로 등장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발렌틴’을 기억하는가?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마리아’의 매니저 역할로 출연한 그는 마리아가 자신보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 배우를 의식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어르고 달래다, 마침내 떠나버린다. 그들이 늘 하이킹하던 알프스 실스마리아의 산기슭에서, 그냥 홀연히.
나는 뿔테안경을 낀 수수한 차림으로 거칠게 풀어헤친 머리를 쓸어 넘기는 발렌틴에게 꽂혔고, 유령과 디지털과 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소외된 영혼을 그려낸 영화 ‘퍼스널 쇼퍼’의 ‘모린’을 사랑하게 됐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레드카펫에 서서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서는 퍼포먼스를 할 때 나는 완전히 열광적인 상태였다. 때마침 스튜어트는 동성 연인과 교제 중임이 드러났고, 이어 가수 쇼코, 세인트 빈센트, 모델 스텔라 맥스웰 등과 짧은 연애를 하였으며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한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레즈비언 역할을 맡았다. 호쾌하고 거침없는 최근작 ‘러브라이즈 블리딩’부터 레즈비언 연인이 보수적인 가정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코미디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전근대 가부장제의 여성 억압과 그 파멸을 그려낸 ‘리지’까지, 스튜어트는 늘 영화 속에서 강력하고 쿨한 레즈비언들과 사랑에 빠지곤 했고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며 격렬한 로맨스를 나눴다. 퀴어물은 아니지만 영화 ‘언더워터’나 ‘미녀삼총사3’에선 쇼트커트에 꽤 터프한 차림새의, 스튜어트의 실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시, 스튜어트는 그곳에만 머물지 않았다.
스튜어트는 영화 ‘스펜서’에서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 역할을 맡아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마찬가지로 전기영화 ‘세버그’에서는 프랑스 누벨바그 아이콘인 배우 진 세버그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들에겐 크리스틴이 없었다. 오직 스펜서와 세버그 뿐. 특히 ‘스펜서’에서의 연기는 놀라웠는데, 실제 다이애나비의 옥죄인 내면과 속삭이는 듯한 말투,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자부심과 품위를 눈빛과 몸짓으로 섬세하게 전달했다. 우디 앨런의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에서는 그녀 답지 않다는 평을 들은, 극도로 페미닌한 ‘레이디라이크’룩을 선보이며 제시 아이젠버그(그와는 무려 3편의 영화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지만 서로 어떤 이성적 감정도 든 적 없는 친구라고 한다)와 할리우드 전성기의 향수를 떠오르게 하는 고전적인 첫사랑 여인으로 분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늘 스튜어트이면서 다른 무엇이었다. 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 자신이었다.
스튜어트는 연출에 대한 오랜 욕망을 종종 고백했고(“전 더 이상 선택당하길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제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사람이고 싶어요.”) 8년간 매달려 온 첫 연출작 ‘물의 연대기’를 선보였다. 배우 출신 감독들이 으레 그러하듯 자신이 주조연이나 카메오로 등장하는 일 따위 없이, 오직 연출자로서 빚어낸 세계를, 나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내보였다. 그 작품은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최초로 공개됐고, 황금카메라상의 후보로 지명됐다.
인간의 가장 예쁜 모습을 모사해서 만든 인형들에게 그러하듯, 우리는 종종 아름다운 외형의 피조물들엔 영혼이 깃들어 있을 리 없다고 넘겨짚곤 한다. 특히 여성들에게 그렇다. 저렇게 아름다운 눈과 입, 깎아놓은 듯한 코와 턱, 모공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를 지닌 여자에게 영혼이 있을 리가 없다고.
그들이 아름다움 그 자체로서 ‘사용되지’ 않고 주체로서의 욕망에 사로잡혀 끌과 망치를 들고 대리석을 직접 내리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도 그런 편이다. 아름다운 인간에게라면 그저 대책 없이 홀려서 다른 차원의 피조물인 양 감상하며, 그가 자의로 무언가를 하고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매우 신기해하고 심지어는 대견해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다. 그러므로 지성과 욕망이 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자기 고백적 글쓰기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재구성하는지, 상흔으로 얼룩진 삶을 빛나게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내면에서 그 이야기를 마주한 후부터 줄곧 자기 자신에게서 꺼내고 싶어 했다.
스튜어트는 말한다. “여성은 존재한 이래로 늘 억압당해 왔고, 침묵하라는 말을 들었으며, 깊은 수치심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모두에게 공유된 그 마음의 짐은 여성의 집단의식 속 맥박처럼 흐르고 있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 이미지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화면에서 솟구치고 분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죠.”
그리고 8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또 쓰고, 카메라 앞에 서는 대신 뒤에 서서 디렉팅하고, 찍고, 편집하고, 집요하게 매달린 끝에 그것을 총체적 예술로 움켜쥔 것이다. 그래도 이 여성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찍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영혼을 지녔다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워 보이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다른 면모를 들여다본다. 그는 어릴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정확히는 따돌림을 당해) 홈스쿨링을 했고, 대단히 내향적인 성격이며, 아직도 인터뷰어 앞에서는 사뭇 쑥스러운 듯 보인다. 동시에 SNL에 나와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당신은 지금의 나를 더 싫어할걸? 난 게이니까!”라고 일갈하기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생방송 도중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푸틴을 향해서 “꺼지라”며 가운뎃손가락을 날렸다.

이제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충분히 엄청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스튜어트는 영화 ‘물의 연대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저와 그리고 원작 소설이 세상과 맺는 관계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책은 동지들을, 부적응자들을 끌어모으죠. (...) 이건 ‘정상적인’ 영화가 아니거든요.” 원작자인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부적응자로 사는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한 테드 강연처럼, 정상성의 궤도에서 탈락한, 이상한, 괴짜의, 망가진, 더러워진, 재기불능의, 엉망진창이 된, 모든 실패하고 흠집 난 것들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대해 ‘물의 연대기’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말한다.
레드카펫에서 힐을 벗어 던지는 순간부터, 나는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리고 비로소 그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이해하게 됐다.
이제는 배우자가 된 딜런 메이어와 함께 영화사 네버마인드를 창립한 스튜어트는 첫 작품으로 감독 데뷔작 ‘물의 연대기’를 선보였고, 현재는 딜런 메이어의 연출작인 ‘잘못된 소녀들’(The Wrong Girls)을 함께 준비 중이다. 한편, 배우로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혼합된 형태의 수전 손택의 전기영화를 촬영 중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매력적인 사실을 알려주자면, 그녀는 또래 배우들과 다르게 SNS를 일절 하지 않는다.(적어도 공개된 형태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는 이제 내가 사랑하는 감독들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이제 창작자로서, 나의 사랑과 질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하는 중이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https://www.hani.co.kr/arti/SERIES/3196?h=s)에서 사랑스러운 질투로 파고든 인사이트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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