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힘과 브릭스 우정 사이...속타는 남아공
중견국 남아공, 전략적 압박 고수 중?

“우리는 단지 개최지 역할을 했을 뿐이다. 훈련은 중국이 주도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했다. 지난달 16일까지 일주일에 걸쳐 진행된 중국, 러시아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의 첫 연합 국방 훈련이 남아공에서 개최됐는데, 이 훈련 때문에 남아공이 들썩이자 해명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지난달 개최된 브릭스의 ‘평화를 위한 의지’는 브릭스 국가들이 처음으로 진행한 안보 훈련으로 “브릭스가 전통적인 경제 협력에서 벗어나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관심을 모았다. 중국, 러시아, 남아공이 지난 2019년, 2023년에 한 차례씩 공동으로 진행했던 ‘모시 훈련(Exercise Mosi)’이 브릭스 이름을 내건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번 훈련 사실이 알려지자 백악관은 “미국이 국제사회 경쟁자로 분류하는 국가에서 보낸 군함들이 파견된 것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남아공은 “정치적이지 않은 훈련”이라고 했지만 러시아와 중국 군함들이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에 주둔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목을 끌었다.

문제는 훈련에 이란이 참석했다는 사실이었다. 작년 12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이란 반정부 시위 탓에 미국과 이란 정부가 대립각을 세우자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란 측에 “훈련 규모를 축소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대통령 명령 전달에도 불구하고 이란 측 군함 세 척이 남아공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했다. 이보다 앞선 작년 2월에는 남아공을 대상으로 제공되던 원조를 전면 차단하고, 작년 5월 백악관에 방문한 라마포사 대통령을 향해 ‘남아공에서 백인 농장주들이 학살당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또 미국은 G20 의장국이었던 남아공을 G20에서 퇴출해야 한다면서 남아공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런 상황 속 이란과 함께하는 군사훈련은 남아공 입장에서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었다. 주남아공 미국 대사관은 훈련 기간 막바지에 이란의 참가를 문제 삼으며 “해양 안보를 훼손하고, 이란 정권이 자국민을 탄압하는 상황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도 냈다. 남아공 대통령실은 즉시 대통령 지시가 왜곡, 무시됐는지 조사하라고 명령했고, 현재 관련 정황 파악이 이어지고 있다.
남아공은 2010년에 신흥 경제 성장국 모임인 브릭스에 가입했다. 당시 남아공의 가입으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머리글자만 땄던 ‘브릭스(BRICs)’ 명칭이 남아공의 머릿글자까지 합해 ‘BRICS’로 진화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중국, 러시아 관계가 경직되자 남아공은 브릭스의 주축을 이루는 국가 중 하나이면서도 미국 눈치를 보면서 진땀 빼는 신세가 됐다. “브릭스와 트럼프 사이 중견국이 택한 전략적인 압박 환경”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외교하고 있는 또다른 브릭스 국가인 인도는 이번 훈련에 불참했다. 인도 외교부는 “이 훈련은 전적으로 남아공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일부 브릭스 회원국이 참여한 것”이라면서 “정기적이거나 제도화된 BRICS 활동이 아니었고, 모든 BRICS 회원국이 참여한 것도 아니며 인도는 이전에도 이러한 활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경제 정책은 줄타기 하지만, 군사 동맹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그외 브라질, 이집트,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등 브릭스 동맹 국가들은 참관국 자격으로만 참석했다. 브릭스가 더 가까이 뭉치려고 노력하는 한편 트럼프의 그림자를 떨칠 수 없는 상황이 이번 해상 훈련을 둘러싸고 더욱 명확해지면서, 브릭스가 동맹의 ‘알맹이’를 채우기 위한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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