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와인은 취향의 영역이 아닙니다…‘지속가능성’ 구호에 가려진 함정 [전형민의 와인프릭]
얼마 전 패션계가 시끌벅적했습니다. 소위 K명품이라 불리며 글로벌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던 패션 브랜드 ‘우영미’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발단은 지난해 하반기 출시된 ‘블랙 플라워 패치 후드’였습니다. 알고 보니 상반기에 팔다 남은 ‘블랙 야자수 후드’의 앞판 야자수 위에 꽃자수를 덧씌우고 다른 디자인 등을 조합해 신상품으로 내놓은 것이었죠.
재고를 소각하지 않고 되살렸으니 환경을 생각한 ‘업사이클링’일까요? 브랜드 측은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재디자인이었으며, 법적 고지 의무는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소비자들은 화가 났습니다.
이 뉴스를 접하며 문득 특정 와인이 떠올랐습니다. 패션에 ‘꽃자수’가 있다면, 와인 업계에는 ‘내추럴(Natural)’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거든요. 그리고 때로는 이 화려한 수식어가 와인의 치명적인 결함을 가리는 만능 패치로 쓰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용어는 저 같은 까탈스러운 애호가들만의 은어가 아닙니다. 세계적인 와인 과학자이자 칼럼스트인 제이미 구드(Jamie Goode)는 이를 두고 “이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와인 오염(The wine taint of our times)”이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와인 백과사전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옥스퍼드 컴패니언 투 와인(The Oxford Companion to Wine) 역시 이를 명백한 미생물성 결함으로 분류합니다.
이건 명백한 와인의 결함(Fault)입니다. 양조 과정에서 위생 관리가 미흡했거나, 아황산염 사용을 극단적으로 배제하면서 젖산균이나 브레타노마이세스가 THP(Tetrahydropyridines)라는 화합물을 생성한 결과죠.
재미있는 건 이 THP입니다. 와인 잔 속에 있을 때는 산도에 눌려 숨어 있다가, 우리 입 속의 침과 만나 pH가 올라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역한 냄새를 풍기며 역후각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손님, 이건 상한 게 아니라 내추럴의 야생적인 매력이에요. 아직 이 정수를 잘 모르시나 봐요?”라며, 권위로 감각을 눌러버리는 설명이 붙는 순간, 결함이 ‘철학’으로 둔갑합니다.
물론 가죽향이나 흙내음은 취향의 영역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과 섞여 비린내를 풍기는 생쥐취는 타협할 수 없는 오염입니다. 취향을 논할 향이 아닙니다. 한 번 올라오면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는, 전형적인 결함의 신호를 두고 ‘철학’이라 우기는 건, 재고품에 자수 하나 박고 신상이라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만약 이 기만적인 결함이 의심된다면 판별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10초 이상 기다린 뒤 삼켰을 때, 뒷맛(Aftertaste)에서 역하게 치고 올라오는 비린내를 확인하는 것이죠. 혹은 와인 한 방울을 손등에 문질러 체온과 공기로 알코올을 날려보세요. 숨어있던 암모니아 뉘앙스, 눅눅한 옥수수 과자 냄새가 손등 위에서 선명해진다면 그것은 결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개인차에 따른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판별법은 완벽하다기보다는 현장에서 급하게 해볼 수 있는 팁 정도로 보셔야 합니다.
![내추럴 와인에 대한 wine folly의 정의. 아직 공식적인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winefolly]](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16/mk/20260216152705056mmrf.jpg)
적지 않은 와인 생산자들이 양조적 리스크를 안은 와인 라벨 위에 ‘유기농’ ‘비건’ ‘탄소중립’ 스티커를 덧대어 가장 불편한 질문, ‘그래서 맛은 괜찮은가’를 가리기도 합니다.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윤리적 가치로 덮어버리는 일종의 ‘도덕적 면죄부’ 마케팅이죠.
이런 인증은 가치의 신호일 뿐, 맛과 결함의 책임을 면제해주진 않습니다. 문제는 인증이 아니라, 인증을 방패로 삼아 품질 질문을 회피하는 태도입니다. 최근 와인 업계의 가장 큰 화두인 그린 워싱(Greenwashing)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실제 환경 보호보다는 친환경 이미지 세탁에 골몰하는 행태 말입니다.
‘지속가능성’을 내세운 와인들이 왜 더 비싸야 할까요?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면 인건비가 더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불하는 프리미엄의 상당 부분은 사실 ‘인증을 위한 통행료’에 가깝습니다. 데메테르(Demeter)나 에코서트(Ecocert) 같은 로고 하나를 라벨에 박기 위해 지불하는 막대한 행정 비용과 매년 갱신해야 하는 컨설팅비는 와인 가격에 고스란히 전가됩니다.
더 심각한 건, 이 화려한 인증 마크들이 ‘맛’까지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병 안에는 개성 없는 대량 생산 와인이 담겨 있는데, 라벨의 초록 마크 덕분에 가격만 껑충 뛴 와인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마주합니다.
이건 환경을 구하기 위한 정당한 대가일까요, 아니면 소비자의 도덕적 만족감을 자극해 브랜드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세금일까요? 꽃자수 아래 숨겨진 야자수처럼, 우리는 지금 ‘윤리’라는 이름의 화려한 포장지를 비싼 값에 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추럴 와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삽화. [출처=wine folly]](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16/mk/20260216152706321jpzw.jpg)
그동안 ‘지속가능성’과 ‘전통’을 외치면서 정작 무엇을 넣었는지는 비밀로 부쳤던 와인 업계의 모순에 법적 경종이 울린 셈입니다. 우영미 브랜드가 “법적 고지 의무가 없다”고 강변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제 와인 생산자들은 ‘투명성’이라는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결국, 와인은 맛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우영미 논란의 핵심이 ‘재활용’ 자체가 아니라 ‘투명성의 결여’였듯, 와인 역시 산화 뉘앙스가 강하다면, 혹은 필터링을 하지 않았다면 소비자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결함을 ‘내추럴의 정수’로, 마케팅 비용을 ‘지속가능한 투자’로 포장해 소비자의 눈과 혀를 속이는 행위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이고, 그 시간 속에는 생산자의 정직함이 포함돼야 합니다. 라벨의 화려한 자수보다는, 잔 속에서 정직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는 와인을 만나는 즐거움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 오늘 와인프릭은 모든 내추럴 와인이 아닌, 일부 내추럴의 이름 속에 결함을 감춘 와인과 그 와인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다뤘습니다. 내추럴 와인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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