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인센티브는 왜 ‘부당한 유인책’인가

한겨레 2026. 2. 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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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의학과 서사(105):
플랜 75, 세일즈맨의 죽음, 그리고 부당한 유인
영화 ‘플랜 75’ 포스터. 아이엠디비

75살 이상 노인이 생을 일찍 마치기로 선택하는 경우, 백만원의 ‘준비금’을 지급하고 사망 이후 발생하는 여러 절차도 국가가 책임지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인센티브의 용처는 묻지 않는다. 작별 여행을 가도 좋고, 근사한 식사를 해도 된다. 아니면, 남은 가족에게 전달해도 된다.

얼마 전 논란이 된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이 들고 있던 메모가 유출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것은 2022년 영화 ‘플랜 75’의 설정이다. 영화에서 초고령 사회 일본은 고령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랜 75’를 입법한다. 플랜 75는 이름처럼, 75살 이상에 대한 사회의 ‘해결책’, 조력사망을 선택하는 노인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인구 조절 정책이다.

국가가 고령 인구를 조절해도 되는가

영화는 메시지에 끌려다니다 보니 서사나 연출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진 못했다. 하지만, 영화가 던지고자 했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정책을 입안해도 되는가. 다시, 국가가 고령 인구 조절을 위해 죽음의 비용을 따져도 되는가.

정책이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상을 제공하여 약간의 유인을 만든다 한들, 기본적으로 죽음을 결정하는 무거운 문제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자발적인 선택이기만 하다면 오히려 죽기 전에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더 좋은 일이다. 사회적으로도 유리하다. 노인 인구 부양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재정 대신, 명확히 한정이 있는 예산만 소비하면 되니까.

그러나, 누군가엔 이런 경제적인 논의가 직관적으로 불편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이득은 분명 이득인데 어딘가 석연치 않다. 단지 노인의 생명 문제라서일까? 불편함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다음 사례를 검토해 보자.

세일즈맨, 죽음을 선택하다

아서 밀러의 1949년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여전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작품이다. 희곡의 중심에는 63살 윌리 로먼, 평생 아메리칸드림을 좇으며 살아온 외판원이 있다. 한때 그는 잘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정해진 급여도 없이 실적에 따라 추가 보상만 받는 조건으로 회사에 등록되어 겨우 연명하는 처지다. 설상가상, 그의 정신 건강 상태도 온전치 않다. 과거의 환영을 보는가 하면, 기억은 점차 왜곡되어 간다.

두 자녀를 두었고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소위 자식 농사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운동선수가 될 거라 생각했던 큰아들은 방황 중이고, 둘째 아들은 로먼의 표현에 따르면 ‘삼류 건달’이 되어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계속 싸우기만 하던 첫째가 오랜만에 집에 들어오고, 아버지와 저녁 식사를 약속한다. 그는 돈을 빌려 동생과 함께 스포츠용품 유통 회사를 차리겠다는 꿈을 꾸지만, 애초에 헛된 생각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런 아들들을 보며, 로먼은 자신이 과거에 한 번 시도했던 일을 다시 떠올린다.

자동차 사고로 위장한 자살. 자신이 성공한다면 자녀들에게 2만 달러가 보험금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들들은 이를 밑천으로 삼아 그동안 거두지 못했던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장례식은 성대하게 차려질 것이고, 가족과 이전의 동료들은 자신을 추억할 것이다.

로먼의 계획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세일즈맨의 죽음’이 발표된 지 7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계속 이야기되고 있는 이유는 작품의 고민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로먼은 아버지로서 믿는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은 죽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의 생각은 왜곡되었다. 왜? 경제적 유인 때문에 판단력을 상실한 것이다.

희곡의 문제의식과 “플랜 75”의 거리낌, 그리고 연명의료 인센티브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마치, 이런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다. ‘당신이 살아 있다면, 당신은 자녀와 국가에 짐이 된다. 당신이 지금 떠난다면, 당신은 모두에게, 심지어 당신 자신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로먼의 자살 계획이 비극인 이유는 그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믿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연명의료에 인센티브를 더하는 정책이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75년이 지난 지금도 무대에 오른다. 25년 1월 국내 무대의 포스터. 쇼앤텔플레이

유인책이 판단을 왜곡할 때

이런 논의를 의료윤리에서는 ‘부당한 유인책(undue inducement)’이라고 부른다. 표현 그대로, 어떤 정책이 이득을 준다고 말하며 실제로 이득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 설계가 부당하므로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부당성은, 유인이 판단을 왜곡하여 평소엔 하지 않았을 결정을 하게 만드는 데에서 발생한다.

임상시험을 예로 들어보자. 가능성은 미미하지만 발생할 경우 몇 주 입원이 필요할 정도의 꽤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신약을 검증하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위험 회피 성향을 지니며, 따라서 이런 제안을 피한다. 그러나, 여기에 거절하기 어려운 유인책이 더해지는 경우라면? 당장의 빈곤을 해결할 사례비나, 제도권 바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치료 기회이거나, 공포에서 벗어날 심리적 피난처를 제공하는 경우 말이다. 절망 앞 지푸라기를 잡아야 하는 이들에게 임상시험은 도박이 아닌 구원으로 제시되고, 그들은 치명적인 위험을 잊어버린다.

이것이 그저 가정이면 좋겠다. 그러나,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진행된 에이즈 예방 임상시험(CAPRISA 008)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한 참여자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숨기고 소변 표본을 조작(다른 사람의 소변을 제출했다)하여 연구에 참여했다. 그녀는 원치 않은 임신 이후 동거인의 외도 위협으로 에이즈 감염 공포에 시달렸고, 연구 참여시 제공되는 예방약을 절실히 원했다. 그녀의 절박함은 태아에게 미칠 수 있는 약물 부작용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중간에 임신 사실이 확인되었고 연구 참여는 중단되었으며, 몇 달 뒤 다행히 그녀는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 일은 연구 위반 사례로 박제되었다.

너무 먼 곳의 일인가. 시계를 더 돌리자. 2005년 황우석 사태에서 당시 줄기세포 연구용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에게 과배란 주사(난자 생성을 유도하는 주사)를 맞는 대가로 150만원 정도의 실비가 제공되었다. 물론, 여기엔 추가적인 문제도 있었다. 연구진이 여성 공여자에게 난자 채취에 따른 후유증이나 부작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부작용이 있다’ 정도만 설명하고 연구를 진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20년 전 150만원이 상당히 큰 금액이었으며, 누군가에겐 간절할 수도 있는 비용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사례들은 보여준다. 보상이 끼어드는 순간, 순전한 결정은 온갖 계산으로 오염된다. 연구 사례를 예로 들었지만, 연명의료나 조력사망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순간, 누군가는 원래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합리적’인 것으로 오해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로먼이 그랬던 것처럼, 아니, ‘플랜 75’에서 여러 노인이 선택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인센티브, 무지의 영수증

대통령의 연명의료 인센티브 언급이 나쁜 의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행까지 연명의료를 문제 삼으며 보고서에서 연명의료비 지출이 2070년 16.9조 원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상황에서 미래를 걱정하며 내놓은 표현일 것이다. 단지, 연명의료의 지속과 중단 결정이 지닌 복잡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다. 심지어 이런 일을 전공했다고 하는 나 자신조차, 이것이 내 일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논문 쓰고 강의하며 심지어 다른 이들의 일에 조언하던 것과, 내 가족의 일이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있기에 나는 말할 수 있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인센티브가 아니라 제대로 알고 알리는 것이다.

당장 자문해 보자. 법에서 정한 연명의료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연명의료 중단 절차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그렇다면 이 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처음부터 너무 멀리 갔다. 말기의료에서 부모님에게, 아니 당신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무엇인지는 아는가?

“의사와 병원이 알아서 하겠지” 또는 “지금 그런 문제까지 신경 쓰기엔 다른 할 일이 너무 많아”라고 답할 때, 우리는 또다시 존엄을 포기한다. 병원의 일이니 알아서, 라고 말한다면 연명의료 결정 제도가 왜 필요한가. 이전에도 병원은 알아서 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 “의료”의 방향에, 일단 “살려야 한다”라는 그 정신과는 다른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런 문제까지 신경 쓰기엔 너무 바쁘다면, 중병에 걸렸을 땐 그 문제에 신경 쓸 시간이 날까. 아니, 훨씬 바쁘고 경황이 없으며 심적으로 무너져 있기에 제대로 결정하기 어렵다.

나는 ‘인센티브’라는 단어를 다시 읽는다. 해결책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무관심이 낳은 영수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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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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