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이를 방패 삼은 이혼 유예의 진실 [이수진의 이혼 이야기]

이수진 2026. 2. 16. 12:2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위한 인내라 믿은 이혼 유예가 결국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남도일보·AI 생성 이미지

"아이들 대학 갈 때까지만 참으려고요."

배우자의 외도를 알면서도, 무시와 멸시에 지쳤음에도 많은 분들이 이 한 마디를 방패 삼아 버팁니다. 완전한 가정이 아이에게 절대적이라는 믿음, 편부모 가정의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정작 십수 년을 견딘 끝에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밀어 함께 로펌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는 말합니다. "이제라도 제발 각자 행복하게 사세요." 부모는 배신감을 느낍니다. '내가 너 때문에 어떻게 살았는데.'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것은 애초에 자녀가 아닌 부모의 욕심은 아니었을까요.

'이혼한 가정'보다 '이혼해야 마땅함에도 하지 않는 가정'. 아이에게 더 해로웠던 것은 가정 내 흐르는 독성 짙은 공기입니다. 변호사로서 수많은 가정을 지켜보며 깨달은 사실입니다.

가정법원에서 친권자 양육권자 지정 사건을 다루다 보면, 부모 모두 "아이를 위해 참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주목하는 것은 '참았던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입니다. 법원이 양육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녀의 복리', 즉 아이의 실질적인 행복입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고 말하지만, 솔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이혼이라는 변화와 사회적 시선, 재산분할과 양육비 산정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자녀라는 방패 뒤로 숨은 것은 아닌지를.

한 내담자는 말했습니다. "변호사님, 저는 아이 앞에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그러나 그분의 성인이 된 딸은 면담에서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우리 집은 조용했어요. 너무 조용해서 무서울 정도로요. 엄마 아빠가 서로를 증오하는 게 눈빛만 봐도 느껴졌어요."

부모 사이의 냉기와 켜켜이 쌓인 원망, 억지로 만들어낸 평온함은 아이의 정서적 토양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가정폭력처럼 눈에 보이는 학대가 아니라 해도, 정서적 방임과 역기능적 가족 분위기는 아이의 애착 형성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혼 상담에서 "이혼하면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제 대답은 언제나 같습니다. "이미 아이는 상처받고 있습니다. 이제 질문은 '이혼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혼 이후 아이의 상처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입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묻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인 부모가 내려야 할 결정의 무게를 감당할 힘 없는 아이에게 떠미는,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입니다. 법적으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정을 내리든 아이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이를 보호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정의 형태가 아니라 양육자의 건강한 심리 상태입니다. 불행한 부모 밑에서 눈치 보며 자란 아이보다, 비록 한쪽 부모뿐이라도 평온하고 단단한 양육자 밑에서 자란 아이가 훨씬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희생'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행복'을 양분삼아 크는 나무입니다.

이혼은 가족의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양육 환경을 위한 용기 있는 재설계가 될 수 있습니다. 양육비 분담, 면접교섭권 행사, 공동친권 협의 같은 법적 장치들은 이혼 이후에도 부모가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참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인내인지, 아니면 문제를 유예하며 아이의 시간을 함께 소모하는 방관인지 차갑게 질문해 보십시오. 때로는 깨진 조각을 붙들고 손을 베이는 것보다, 조각을 치우고 새 길을 내는 것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일 때가 있습니다.

이수진 변호사 ·법무법인 수림
 
이수진 변호사.
남도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