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동맹 믿었다가 망할 판…美에 손 내미는 캄보디아

안준현 기자 2026. 2. 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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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전쟁에 도움 외면한 中
‘스캠보디아’ 오명에 美 제재 덮치자 백기 들어

캄보디아가 30년간 고수해 온 친중 노선을 접고 미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지난해 태국과의 국경 전쟁에서 ‘철통 동맹’ 중국이 군사 지원을 거부하자 받은 충격의 여파다. ‘스캠보디아(Scambodia·온라인 사기를 뜻하는 스캠과 캄보디아의 합성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사이버 범죄와의 전쟁도 선포했다. 미국 금융 제재가 달러화 경제인 캄보디아의 숨통을 죌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되, 안보는 미국과 손잡는 캄보디아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줄타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中 돈으로 지은 기지에 美 군함이

지난 1월 미 해군 연안전투함 USS 신시내티호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리엄 해군 기지에 들어갔다. ‘우호 방문·군사협력 확대’가 이유로, 미국 군함이 이 기지를 찾은 건 처음이다. 리엄 기지는 중국 자본으로 재건돼 ‘중국 전용 비밀 기지’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캄보디아는 이곳에 미국 군함을 불러들여 중국의 독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냈다.

USS 신시내티호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리엄 해군기지에 들어섰다. /AP 연합뉴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캄보디아는 남중국해 행동 준칙에 대한 입장도 뒤집었다. 그간 중국 뜻에 따라 반대해왔는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합의에 동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만든 평화위원회에도 이름을 올렸다. ASEAN 국가 중 유일한 창립 회원국이다. 모두 중국 뜻과는 다른 행보다. 2017년 이후 중단됐던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 ‘앙코르 센티넬’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재개된다. 그러자 미국은 2021년 캄보디아에 걸었던 무기 판매 금지를 올해 초 풀었다. 캄보디아는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 규모의 보잉 항공기 구매 계약도 맺었다.

캄보디아가 미국 쪽으로 눈을 돌린 결정적 배경에는 지난해 태국과의 국경 분쟁에서 겪은 ‘동맹의 배신’이 있다. 지난해 5월 프레아비헤아르 사원 인근에서 태국과 첫 교전이 벌어졌고 7월 전면전으로 번졌다. 캄보디아가 다연장로켓을 쐈고 태국 F-16 전투기가 공습했다.

태국과 캄보디아 분쟁으로 무너진 다리 /AFP 연합뉴스

캄보디아는 ‘철통 동맹’ 중국이 도와줄 줄 알았지만 중립을 지켰고 무기도 보내지 않았다. 중국은 “모든 장비는 과거 협력의 결과”라며 신규 지원을 부인했다. 전투기가 없는 캄보디아는 태국 F-16과 그리펜 전투기를 당해낼 수 없었다. 11월과 12월 다시 교전이 벌어져 101명이 더 숨졌고 피란민은 50만명으로 불었다. 그러자 캄보디아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실망감이 퍼졌다고 한다. 중국이 안보까지는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분쟁은 미국과 중국의 중재 경쟁 무대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나서 10월 휴전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두 달 만에 깨졌다. 12월 2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섰다. 윈난성에서 3국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16개 항 평화안을 도출했다. 휴전, 중화기 철수, 드론 금지구역 설정, 지뢰 제거, 포로 교환 등이 담겼다. 중국은 국경 지역 재건 비용도 대겠다고 했다. 캄보디아는 복합적인 교훈을 얻었다. 중국은 군사 지원은 안 하지만 외교 중재와 경제 보상에서는 여전히 핵심 파트너라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태국 찬타부리주 프룸-반팍카드 국경검문소에서 낫타폰 낙파니트(오른쪽) 태국 국방 장관과 티아 세하 캄보디아 부총리 겸 국방 장관이 양국 간 휴전 합의 후 악수하고 있다. 양국은 이날 낮 12시를 기해 지난 7일부터 이어진 전쟁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AFP 연합뉴스

태국 총선이 분수령이었다. 8일 태국 총선에서 아누틴 찬위라쿤 총리의 품차이타이당이 194석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에서는 3위였는데 결과를 뒤집었다. 보수 성향의 아누틴 총리는 국경 분쟁 때 F-16 공습을 직접 지휘하며 ‘국가 수호자’ 이미지를 굳혔다. 캄보디아에는 나쁜 소식이다. 그는 “캄보디아 국경에 100㎞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약했다. 선거 직후 2001년 양국이 체결한 해양 자원 공동 개발 양해각서를 전격 취소했다. 17개 국경 통과 지점 대부분도 닫힌 상태다. 캄보디아로서는 전통적 우방이었던 태국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고,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미국과의 협력이 절실해졌다.

◇GDP 절반이 사기 수익, ‘스캠보디아’ 떨쳐낼까

캄보디아가 미국에 손을 내민 또 다른 이유는 사이버 범죄다. ‘스캠보디아(Scambodia)’라는 오명을 씻기 위한 소탕 작전은 캄보디아의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다.

캄보디아에는 대규모 온라인 사기 조직 거점이 50곳 넘게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25억~190억달러(약 18조~27조원)다.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60%에 이른다. 이들 거점에는 10만~15만명이 갇혀 있다. 대부분 거짓 구인 광고에 속아 끌려온 외국인이 폭력에 시달리며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 전화를 건다. 국제 사회는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한다.

캄보디아 프놈펜 주요 범죄 단지로 알려진 원구 단지./뉴스1

한국도 피해를 입었다. 한국 외교부에 접수된 캄보디아 관련 납치·실종·감금 신고는 2023년 17건에서 2024년 220건으로 13배 뛰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인 대학생이 사기 조직에 끌려가 살해됐다. 한국 정부는 합동대응팀을 급파하고 훈마넷 총리와 고위급 회동을 했다. 한국-캄보디아 합동 태스크포스 협정이 체결됐고 캄보디아 경찰은 한국인 가담자 59명을 추방했다.

미국은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고 강력한 금융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캄보디아 사기 산업의 핵심이자 정권 고위층의 자문역이었던 천즈(陳志)와 그의 프린스그룹을 제재하고, 비트코인 150억달러(약 21조원)를 압류했다. 경제 거래의 91%가 미국 달러로 이뤄지는 캄보디아 입장에서 미국의 금융 제재는 곧 국가 경제 전체의 마비를 의미한다.

그러자 훈마넷 총리는 범죄 소탕에 나섰다. 지난해 7월 전담 태스크포스를 발표하고 전국적 단속을 시행했다. 올해 2월 기준 사기 거점 약 200곳을 폐쇄했다. 핵심 인물 173명을 잡고 외국인 11만여 명을 추방했다. 1월에는 천즈를 중국에 넘겼다. 캄보디아 내무부는 4월까지 사이버 범죄망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했다. 훈마넷은 “기술 범죄 소탕이 국가 우선 과제”라고 선언했다. 캄보디아는 지난해 10월 유엔 사이버 범죄 협약에도 서명했다.

다만 단속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단지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군 헌병에 의해 억류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보이스피싱 단지 운영자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중국으로 송환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7일 천 회장 등을 체포해 중국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CCTV

◇동맹 없는 줄타기, 성공은 글쎄

그럼에도 캄보디아가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해 캄보디아 외국인직접투자(FDI)의 73%가 중국 자본이었다. 34억달러(약 4조9000억원) 규모다. 제조업과 인프라 건설의 중심축이다. 17억달러(약 2조4000억원) 규모의 ‘푸난 테초 운하’ 사업도 있다. 중국 자본으로 짓는 이 운하는 베트남 항구 의존도를 낮추고 물류비를 최대 70% 줄일 수 있다. 캄보디아 경제 자립의 핵심 사업으로 중국의 자금 지원 없이는 진행이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결국 캄보디아의 행보는 한국과 같이 탄탄한 동맹이 없는 상태에서 벌이는 처절한 ‘생존형 줄타기’라 할 수 있어 성공 여부도 미지수다.

훈마넷 총리는 19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평화위원회 창립 회의에 참석한다. 아직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캄보디아 측에선 회담 개최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성공할지에 국제 사회의 이목이 쏠린다. 프놈펜포스트의 한 칼럼니스트는 “캄보디아의 전략적 창은 지금 열려 있지만 영원히 열려 있지는 않다”고 했다. 중립은 더 이상 자동으로 존중되는 시대가 아니며, 캄보디아의 안보는 법적 정당성이 아닌 전략적 준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노로돔 시아모니 캄보디아 국왕/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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