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찾아 북상하는 긴코박쥐...기후위기가 바꾼 이동 경로
기후 영향에 이동·행동 변화하는 종 증가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야생동물의 경로가 달라지고 있다. 멕시코 긴코박쥐(Leptonycteris nivalis)가 전통적인 서식지를 넘어 더 북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와 먹이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박쥐뿐만 아니라 전세계 다양한 종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동성 동물들의 전통적인 먹이 탐색과 번식지 및 중간 기착지가 기후위기 등 다양한 요인으로 교란되면서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가뭄·고온으로 용설란 개화 줄고 시기 달라져
국제박쥐보존협회(Bat Conservation International, BCI)는 3일 멕시코 긴코박쥐가 주요 먹이원인 용설란의 꿀을 찾아 이동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박쥐는 길게 발달한 혀를 이용해 용설란 속 꿀을 빨아먹는 종으로 이 과정에서 꽃가루를 옮기며 중요한 수분 매개 역할을 한다. 미국과 멕시코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으며 전체 개체수는 1만 마리 미만으로 추정된다.
용설란 꿀은 긴코박쥐의 오랜 비행 여정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가뭄과 고온 현상이 반복되면서 일부 지역의 용설란 개화가 줄어들거나 시기가 달라졌다. 그 결과 박쥐들이 충분한 먹이를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BCI는 이러한 환경 변화가 긴코박쥐의 이동 패턴에 영향을 미쳐 과거보다 더 북쪽 지역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긴코박쥐는 매년 여름 멕시코에서 미국 남부 지역으로 이동한다. 전통적으로 텍사스 빅벤드 국립공원과 뉴멕시코의 히달고군 부트힐 지역까지 날아오지만 지난해 DNA 증거를 통해 아리조나주까지 이동하는 것이 확인됐다.
먹이 찾아 약 160km 북쪽까지 이동
BCI는 뉴멕시코 주 지라 국유림 주변에서 아가베 식물과 벌새 먹이통에 남아 있는 박쥐 DNA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이 박쥐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위치보다 약 160km 더 북쪽까지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계절 이동을 넘어 생태계 구조 변화의 신호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긴코박쥐는 용설란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종으로 이들의 이동은 곧 식물 분포와 지역 생태계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서다.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 변화는 이미 여러 지역에서 관찰되고 있지만 먹이 식물의 개화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례는 기후위기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분명히 보여준다.

멸종위기 이동성 동물 위협 증가
이러한 변화는 멕시코 긴코박쥐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니다. 전세계 여러 종이 전통적인 서식지와 먹이원을 잃거나 변화함에 따라 생존 전략을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후위기와 인간 활동이 야생동물의 이동 패턴, 먹이 행동, 서식지 접근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컨대 북극의 기후 변화도 극단적인 환경을 만들면서 일부 동물 행동에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노르웨이 스발바르 지역의 북극곰 개체들은 해빙이 줄면서 바다 얼음 위에서 물개를 사냥하는 대신 사슴, 바다코끼리, 새의 알 등 새로운 먹이를 찾는 행동이 관찰되고 있다. 이는 일부 지역에서의 적응적 행동으로 평가되지만 북극 전역의 모든 개체가 이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장기적인 생존은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했다.
북극 순록도 먹이 접근성 감소로 이동 거리가 증가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 자료 등 생태 연구에 따르면, 바렌그라운드 순록은 북극 지역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전통적인 먹이인 지의류에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겨울철 비와 얼음으로 지의류가 얼어붙으면 순록들은 더 멀리 이동하며 먹이를 찾아야 하는데, 에너지 소모가 커지고 생존율이 낮아진다. 이는 먹이 접근성이 직접적으로 종의 이동 패턴과 생존 전략에 영향을 끼치는 사례로 평가된다.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이동성 야생동물 보호협약(CMS)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이동성 야생동물의 약 22%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조류·어류·포유류 등 다양한 그룹에서 멸종 위험 수준이 높으며 특히 어류는 97%가 멸종위기 단계에 포함되는 등 먹이와 이동 관련 위협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단순히 온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생태계의 기본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야생동물의 이동성, 먹이원 접근성, 번식 시기 등이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행동 패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거나 예측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한 종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기능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 보전 단체들은 이처럼 먹이원 감소, 서식지 변화, 이동 패턴 변화를 겪는 종들을 보호하기 위해 생태적 연결성 강화, 먹이원 복원, 서식지 보호 확대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