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기후변화는 사기극”…농사를 안 지어봐서 하는 소리다
기후변화 실감나는 시골

농촌에선 기후변화 부정 못한다
트럼프가 농사를 지어 봤다면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못했을 거다. 하긴 그가 뭘 안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인물도 아니니 부질없는 상상이다. 어쩌면 그는 재산이 조 단위인 부자여서 기후변화가 사실이든 말든 상관없는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먼저, 더 가혹하게 영향을 끼치니까.

농사 경력이라야 10년 안쪽이지만, 내게 기후변화는 몸으로 느껴지는 사실이다. 자연을 가까이 접하는 농촌에서는 계절이 오고 가는 감각이 도시보다 생생하다. 기후와 작물 생육의 변화가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는 말이 딱 맞다. 50~60년 농사를 지은 마을 어르신들도 풀 죽은 목소리로 “농사 짓기가 요즘처럼 어려워서야…” 한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어려운 시골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는 버거운 짐을 하나 더 얹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기후변화는 ‘봄·가을의 느낌’이 사라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봄이면 봄답고, 가을이면 가을다웠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온갖 생명이 꿈틀대고, 갈색 대지에 연둣빛이 번져가는 게 봄이었다. 청명한 햇살을 받아 과일과 나락이 무르익고, 주황색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면 마음이 괜히 소슬해지는 게 가을이었다.
그런데 근래 몇 년간 이런 봄·가을의 정서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봄은 따뜻한 2월, 4월 말의 뜬금없는 된서리, 5월부터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가 섞인 ‘심란한’ 계절이 됐다. 꽃은 순서 없이 몰아서 피고, 색상도 자태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가을은 늘어진 여름 더위에 밀려 늦게 와서 짧게 지나간다. 일 년 중 가장 청명해야 할 가을에 장마인 양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 잦아졌다.
농사가 잘 될 턱이 있나
우리뿐 아니라 전국의 사과, 배 농가가 이런 피해를 봐 사과, 배 생산량이 그 해에 30% 정도 줄어들었다. 가을 추석 무렵 마트에서 사과 한 알에 1만 원의 가격표가 붙었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금사과’라고 불렀지만 농민에겐 웃을 일이 아니었다. 개화기 및 착과기의 불순한 일기와 꿀벌 감소로 인한 과일 수확감소는 사과, 배, 복숭아, 자두 등 여러 과일에 걸쳐 일상화하고 있다.

극심한 병충해에 농약 사용 늘어가고
농사가 어떻게 될지 예측 불허이다 보니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보상해 주는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 농가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벼, 콩 등 식량은 전체 재배면적 기준 59.9%, 과수는 49.6%, 채소는 40.7% 가 보험에 들었다고 한다. 농작물 피해를 조사하는 손해평가사는 은퇴자들 사이에 유망한 자격증으로 소문이 나 1차 시험 지원자가 2020년에서 2024년 사이에 두 배가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화하면서 여름에 잦아지는 극단적인 호우는 농촌 마을과 농지가 감내할 수 있는 임계치를 뛰어넘는다. 농촌 마을은 그곳에 살다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경험한 강우의 최대치에 맞춰 수로와 하천 제방을 만들고 관리해 왔다. 하지만 그런 ‘암묵지’는 최근 변한 기후에 통하지 않는다. 지난 7월 중순 우리의 농막이 있는 공주시 신풍면 일대에는 24시간 만에 300mm가 넘는 큰비가 내렸다. 특히 우리 동네 주변은 17일 아침 1시간 동안 물동이로 퍼붓는 듯한 극한적 호우가 내렸다. 산에 내린 비가 골짜기 냇물로 모여들면서 물기둥이 서서 걸어온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무서운 속도로 물이 불었다. 거센 물살에 제방이 쓸려나가자 그 위에 있는 시멘트 도로가 허망하게 무너져내렸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위로 황톳물이 넘쳐 흘렀고, 작년에 보수한 제방은 다시 터져 논을 쓸었다. 냇물이 꺾어지는 쪽 제방 너머에 있던 집은 마당 절반이 쓸려나가 기초가 드러났다. 집주인 부부는 119 소방대의 다급한 경고방송을 듣고 무너질 위기에 놓인 집에서 몸만 빠져나왔다. 20여년 전 귀농할 때 나름 안전하다고 생각한 터에 집을 지은 이 분은 처음 보는 물살에 놀라고 무너진 삶의 터전에 낙심했다. 어느 해부터인지 가을걷이가 끝난 겨울 하천에서 굴착기들이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는 작업을 하는 게 일상이 됐다.

먹거리 가격 저렴한 시절이 끝나간다
농사를 지어보면 먹거리 가격이 저렴했던 시대는 끝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반도체와 자동차 팔아 쌀이든 사과든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라 다른 나라도 작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식량이 부족해 농산물이 교역의 무기가 되는 세상이 오면 식량 자급율이 아주 낮은 우리 나라는 고통이 클 것이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다시 보고 농사의 가치를 새롭게 봐야 할 때가 왔다.
#이봉현의 농막일기는?
기자로 35년간 서울에서 일했습니다. 혼자 집중할 때 에너지를 얻는 편이어서, 텃밭과 정원이 있는 호젓한 공간을 꿈꿔왔습니다. 마침내 충남 공주의 산간마을 밭을 사 2018년 사과대추, 자두 등 유실수를 심었습니다, 2020년 봄부터는 농막을 들여놓고 금요일 밤에 내려가 주말 텃밭 농사를 짓고 옵니다. 5년간의 ‘5도2촌’ 생활에서 경험한 기쁨, 시행착오, 지역의 현실 등을 담아 격주로 독자를 만나려 합니다. 한겨레 로그인 콘텐츠 ‘오늘의 스페셜’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뉴스 페이지에서는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주소창에 아래 링크를 복사해 붙여넣어 읽을 수 있습니다.)
▶농막 7년차…‘대추나무 암’에 눈물을 머금고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9196.html?h=s
▶‘5도 2촌’ 농막에서 트랙터까지 몰게 될 줄은 몰랐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6592.html?h=s
▶가을 다람쥐처럼 농막에 모으는 것은?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3889.html?h=s
▶농막을 위협하는 야생동물 3대장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0841.html?h=s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노모 집 찾은 ‘주택 6채’ 장동혁 “대통령 때문에 불효자는 운다”
- 윤석열·김건희, 나란히 ‘옥중 떡국’ 먹는다…두 번째 구치소 명절
- ‘윤 선고 D-3’ 윤상현 “윤석열, 대국민 사과해야”…민주 “본인부터”
- ‘사형 구형’ 윤석열, ‘운명의 19일’ 불출석하면 어떻게 될까
- 이 대통령 뒤로 7m ‘통영항’ 그림…청와대 146점 근현대 컬렉션
- “항상 너뿐이었어” 밀라노 거리서 청혼…라이벌서 평생 약속한 사연
- 이 대통령, ‘주택 6채’ 장동혁에 “다주택 특혜 유지해야 한다고 보시나”
- 과음·피로에 높아지는 뇌졸중 위험…‘이웃손발시선’ 기억하자
- ‘충주맨’ 사직에 구독자도 떠났다…15만명 줄어 80만명 밑돌아
- 2천만원 BYD ‘돌핀’ 세련됐지만 소통 서툴러…한국 시장 ‘메기’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