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투혼’ 최가온의 스노보드…출발은 헛간에서 만든 너저분한 발명품이었다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6. 2. 16. 07: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흥부전-142][브랜드로남은사람들-75] 제이크 버튼 카펜터

[브랜드로 남은 사람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은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창업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최가온의 금메달, 그녀를 지탱한 보드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스노보드 선수 최가온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설상종목 금메달. 그녀는 앞선 2차례의 도전을 모두 실패한 뒤 부상을 안고 도전한 마지막 3차 시기에서 연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역전 우승을 했다.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동안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마음을 졸였다. 그리고 그녀의 발아래를 지탱하던 보드 바닥에는 큼지막한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1차시도에 나선 최가온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바로 Burton. 스노보드 브랜드다. 지금은 올림픽 무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스노보드 브랜드지만, 그 시작은 초라했다. 방송에 나왔던 5살 꼬마아이가 금메달리스트로 성장했던 것처럼, 버튼의 스토리도 그러했다. 버몬트의 낡은 헛간, 손으로 깎아 만든 보드, 그리고 시장도 없던 시대에 탄생한 버튼의 역사는 스노보드 산업의 역사이자, 한 사람이 새로운 스포츠와 문화를 만들어낸 이야기다.
스키를 좋아했던 한 아이, 산과 눈을 향하다
버튼의 창업자 제이크 버튼 카펜터는 195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롱아일랜드 시더허스트였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평범한 중산층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의 관심은 늘 도심이 아니라 산과 눈을 향해 있었다. 겨울이 되면 가족과 함께 스키장을 찾았고, 눈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어린 제이크에게 스키는 놀이를 넘어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이었고, 자연 속에서 자유를 느끼게 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버튼 로고
학창 시절에도 그의 관심은 한결같았다. 그는 매사추세츠의 브룩스 스쿨(Brooks School)과 코네티컷의 마블우드 스쿨(Marvelwood School)을 거치며 학업과 함께 스키에 몰두했다. 특히 경쟁 스키에 대한 열정이 컸다. 대학에 진학하면 선수로 활동하겠다는 목표도 분명했다. 이후 그는 콜로라도대학교 볼더 캠퍼스에 입학했다. 이 대학은 당시 NCAA 챔피언을 배출할 정도로 강력한 스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제이크 역시 그 팀에 합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큰 부상으로 꿈을 접은 청년
그러나 대학 시절 발생한 교통사고가 그의 계획을 송두리채 바꿔놓았다. 부상으로 인해 경쟁 선수로서의 길은 사실상 끝났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목표가 사라지면서 그는 한동안 방향을 잃었다. 대학을 잠시 떠나 방황하던 그는 이후 뉴욕대학교(NYU)로 옮겨 경제학을 전공하며 학업을 마무리했다. 스키 선수의 꿈은 접었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카펜터
졸업 후 그는 뉴욕 맨해튼의 한 소형 투자은행에 취직했다. 월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작은 회사였지만, 기업 재무와 자금 조달 업무를 배우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하루 10~12시간씩 사무실에 앉아 숫자와 서류를 처리하는 일이 반복됐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그에게는 숨이 막히는 생활이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그가 원하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되돌아간 남자
그의 마음은 여전히 산에 있었고, 눈 위에서 느꼈던 자유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결심했다. 안정된 직장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무모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그는 확신이 있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뉴욕을 떠나 버몬트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있던 물건 하나를 떠올렸다. 스너퍼(Snurfer). 눈 위에서 타는 장난감 같은 보드였다.
스너퍼를 타는 사람들
스노보드의 원형이 된 장난감, 스너퍼
1965년 겨울, 미국 미시간주 머스키건. 엔지니어였던 셔먼 포펜은 눈 덮인 마당에서 놀던 두 딸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왔지만, 곧 지루해했다. 포펜은 아이들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 어린이용 스키 두 개를 가져왔다.

그는 그 스키를 나란히 붙였다. 하나의 넓은 판처럼 만든 뒤, 앞부분에 로프를 달았다. 아이들이 손으로 잡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위에 올라서서 눈 위를 미끄러져 내려오게 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단순히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몸의 중심을 이동하며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 작은 발명은 곧 이웃 아이들에게도 퍼졌고, 마을 전체의 겨울 놀이가 되었다.

스너퍼를 타는 카펜터
포펜은 이 장난감에 이름을 붙였다. Snow와 Surfing을 합친 말, ‘Snurfer’. 스노우보드의 시작이 된 스너퍼의 발명이다. 이 장치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매우 단순했다. 발을 고정하는 장치도 없었고, 방향을 정교하게 조절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나무판 위에 올라서서 균형을 잡으며 내려오는 정도였다. 스포츠라기보다는 겨울철 놀이기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장난감은 예상 밖의 반응을 얻었다. 제조업체가 생산을 맡으면서 스너퍼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1960~1970년대 동안 100만 개 이상이 판매됐고, 지역 대회를 넘어 전국 규모의 스너퍼 대회까지 열렸다. 겨울이면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언덕에 모여 누가 더 빠르고 멀리, 더 멋지게 내려오는지 겨루었다. 사람들은 당시까지도 그것을 스포츠라고 부르지 않았다. 장비도, 규칙도, 시장도 없었다. 그저 눈 위에서 즐기는 새로운 놀이였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었다. 처음으로 사람들은 두 발을 하나의 보드에 올려 눈 위를 내려오는 경험을 하게 됐다. 스키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몸 전체로 균형을 잡고, 눈의 상태를 발바닥으로 느끼며, 서핑처럼 흐름을 타는 움직임이었다.

스너퍼서 착안해 스노우보드를 발명하다
그리고 이 단순한 나무판을 눈여겨본 한 젊은이가 바로 제이크 버튼 카펜터였다. 어린 시절 그는 그것을 타고 언덕을 내려오며 스키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너퍼는 아이들의 놀이기구에 불과했지만, 그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스키를 사랑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직감했다. 발을 고정할 수 있다면?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면? 속도와 기술을 더할 수 있다면? 제대로 만든다면 장난감이 아니라 스포츠가 될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
제이크 버튼 카펜터
1977년, 그는 버몬트 런던데리의 작은 헛간을 작업실로 삼았다. 공장도, 투자자도, 제대로 된 장비도 없었다.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에서 그는 나무를 자르고, 접착제를 바르고, 프레스로 눌러 보드를 만들었다. 낮에는 제작을 하고, 밤에는 직접 눈 위에서 테스트를 했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헛간으로 돌아와 구조를 바꾸고, 각도를 조정하고, 재료를 바꿨다. 그에게 제품 개발은 설계와 생산, 테스트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사실상 혼자서 연구소와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셈이었다.
첫번째 영업, 실패로 끝나다
그렇게 완성한 첫 번째 제품을 차에 싣고 그는 뉴욕으로 향했다. 스키 장비 매장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그가 개발한 스노보드를 보여줬다. 당시만 해도 스노보드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어떤 딜러는 “이걸 누가 타느냐”고 물었고, 어떤 곳에서는 아예 진열조차 거절했다. 그는 직접 보드의 개념을 설명하고, 눈 위에서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며 설득해야 했다. 장비를 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스포츠를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제이크 버튼 카펜터와 스노우보드 그래픽 노블
그럼에도 몇몇 매장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그가 받아든 주문량은 총 38개. 작은 수량이었지만, 혼자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팔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버몬트로 돌아오는 길, 그는 비로소 사업이 시작됐다고 느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딜러가 연락을 해왔다. 고객이 구입한 보드 두 개를 반품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타기 어렵고, 아직은 시장에서 수요가 불확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반품된 제품을 다시 차에 싣고 돌아와야 했다.
제품이 아닌 시장을 팔아야 한다!
그날 이후 그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제품을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노보드를 팔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품판매가 아니라 스포츠 문화를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사업은 판매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의 카펜터
먼저 그는 문제를 기술로 해결했다. 스너퍼의 가장 큰 한계는 조작성이었다. 발이 보드에 고정되지 않아 속도를 높이거나 방향을 정교하게 제어하기 어려웠다. 그는 먼저 발을 단단히 잡아주는 바인딩을 만들었다. 이어 여러 겹의 나무를 압착한 라미네이트 합판 코어를 적용해 보드의 탄성과 강성을 높였다. 단순히 미끄러지는 장난감이 아니라, 속도와 턴을 제어할 수 있는 장비가 된 것이다. 오늘날 스노보드의 기본 구조는 이 시기에 사실상 완성됐다.
미들네임을 브랜드로 쓴 이유
기술개발과 함께 그는 브랜드의 이름도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 일부를 브랜드로 사용해 제품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하고 싶었다. 이름을 건다는 것은 품질과 성능이 곧 개인의 명예와 직결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의 성인 카펜터는 흔한 이름이며 나무를 자르고 다루는 목수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그래서 그는 미들네임인 버튼을 택했다.
카펜터와 버튼
Burton은 짧고 발음이 간결했으며, 제품에 로고로 새기기에도 적합했다. 실제로 당시 그는 보드의 노즈 부분에 스티커 형태로 브랜드 이름을 붙였는데 시각적으로도 Burton이 더 멋스러웠다. 그는 평생 직접 보드를 타며 제품을 테스트했다. “내 이름이 붙은 제품이라면 내가 먼저 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스노우보드 사용조차 금지됐던 스키장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제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시장 자체였다. 1970년대 후반까지 대부분의 스키 리조트는 스노보드를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 장의 보드를 타고 정면이 아닌 옆으로 서서 슬로프를 내려오는 모습은 위험해 보였고, 통제가 어렵다고 생각됐다. 당연히 리프트 이용도 불가능했다.

당시 스키장은 ‘스노보드 금지(No Snowboards)’라는 안내문을 내걸었고, 스노보더는 아예 입장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 상황에서 제이크 버튼 카펜터가 만든 보드는 팔릴 수가 없었다. 장비는 있었지만 탈 장소가 없었다. 그는 이 문제를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제품 판매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장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스노우보드 금지사인
스키장 설득에 성공하다
그는 직접 보드를 차에 싣고 스키장을 찾아다녔다. 리조트 운영자들을 만나 스노보드를 시연했고, 장비의 구조와 안전성을 설명했다. 때로는 스노보더들을 모아 단체로 시연을 하기도 했다. 눈 위에서 질서 있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이 통제되지 않는 장난이 아니라 하나의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했다. 단순한 영업이 아니라 새로운 종목을 인정받기 위한 캠페인에 가까웠다.
버튼과 보드
이 노력은 조금씩 결과를 만들어냈다. 1982년 버몬트 폼프렛에 위치한 수어사이드 식스(Suicide Six) 스키장이 스노보더의 리프트 이용을 처음으로 허용했다. 이는 미국에서 스노보드를 받아들인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후 스트래튼(Stratton), 제이피크(Jay Peak), 스토우(Stowe) 등 주요 리조트들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스노보더가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올라갈 수 있게 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장비를 경험하기 시작했고 시장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노보드는 더 이상 언덕에서 내려오는 놀이가 아니라, 리조트에서 즐기는 겨울 스포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직접 스노보드 대회를 만든 버튼의 노림수
하지만 제이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장비와 장소가 생겼다면, 이제는 경쟁과 기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대회와 스타가 있어야 했다. 1982년 그는 수어사이드 식스에서 열린 전국 스노보드 선수권 대회에 참여하며 장비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리고 1985년, 버몬트 스트래튼 마운틴에서 ‘US 오픈 스노보드 챔피언십’이란 대회를 열고 운영을 시작했다. 이 대회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스노보드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하프파이프와 레이싱 종목이 도입되면서 기술 수준이 빠르게 발전했고, 뛰어난 라이더들이 등장했다. 경쟁이 만들어지고, 기록이 축적되며, 관중과 미디어의 관심도 커졌다.
버튼이 창설한 US OPEN 스노우보딩 챔피언십
이후 US 오픈은 세계 최고의 스노보드 대회로 성장했고,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는 흐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이 대회를 통해 스노보드는 더 이상 새로운 놀이가 아니라 하나의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스노우보드 산업을 태동시킨 카펜터의 노력
이 과정에서 버튼의 역할은 단순한 장비 제조업체의 수준을 넘어섰다. 제이크 버튼 카펜터는 보드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스키장의 문을 열었고, 대회를 만들었으며, 선수들이 활동할 무대를 구축했다. 장비, 장소, 경쟁, 문화가 함께 만들어지면서 스노보드 산업 전체가 형성됐다. 결국 버튼은 제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스노보드라는 스포츠와 그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낸 브랜드가 됐다.
버튼의 보드
이후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1985년 오스트리아에 유럽 법인을 세웠고, 일본과 캐나다로 시장을 확대했다. 글로벌 유통망이 구축되면서 버튼은 세계 스노보드 시장의 40% 안팎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1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현재 버튼 제품은 전 세계 4000개 이상의 매장에서 판매되며, 직원 수는 약 900~1000명 수준이다. 비상장 기업이지만 업계에서는 연매출을 약 8억~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 안팎 규모로 추정한다. 지역별로는 미국이 약 35%, 유럽이 약 30%를 차지하고 일본과 캐나다 등 아시아 시장이 그 뒤를 잇는다.

버튼은 장비 제조를 넘어 브랜드의 영역을 확장했다. 아우터웨어와 라이프스타일 의류, 고글과 헬멧 브랜드까지 사업을 넓혔고, 프로 선수 후원과 청소년 프로그램, 초보자 교육 시스템을 통해 스노보드를 하나의 문화로 키웠다. 회사의 공식 철학은 단순하다.

“스노보드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스노우보드 산업을 만든 버튼의 유산
제이크 버튼은 말년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환암이 재발했고, 2019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회사는 그의 아내 도나 카펜터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겨울 시즌이 짧아지고 동계 스포츠 인구가 줄어드는 등 주변 환경은 녹록지 않지만, 버튼은 여전히 프리미엄 브랜드 충성도와 올림픽 무대에서의 존재감을 바탕으로 글로벌 스노보드 산업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버튼 카펜터와 그의 아내
버튼과 스노우보드, 대한민국의 첫 설상 금메달
그리고 그 긴 시간의 끝에서 우리는 동계올림픽 하프파이프 위의 한 장면에서 다시 최가온 선수의 비상과 버튼의 이름을 마주하게 됐다. 최가온의 금메달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첫 번째 시도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고 두 번째 시도는 마무리짓지도 못했다. 절망적인 벼랑 끝 순간, 최가온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이 날아올랐고 완벽하게 착지했다. 그 순간, 그녀의 점수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두 번의 실패를 넘어선 최고의 반전이 됐다.

버튼의 역사도 그와 닮아 있다.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개척해 기존에 없었던 문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리조트의 문을 열고 대회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스노보드는 놀이에서 스포츠가 되었고, 결국 올림픽 종목이 됐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최가온, 한국 설상 첫 금메달 (리비뇨=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획득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최가온이 금메달을 목에 건 뒤 태극기를 들고 있다. 있다. 2026.2.13 ham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하프파이프 위에서 마지막 시도를 선택하는 순간, 최가온은 두 가지를 믿는다. 자신의 도전과, 발 아래 장비다. 최가온의 세 번째 점프는 한 선수의 반전이었고, 그를 지탱한 버튼은 한 브랜드가 반세기 동안 이어온 도전의 결과였다. 실패를 두 번 겪어도 세 번째 도전이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버튼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그 믿음 위에 서 있다.

버몬트의 작은 헛간에서 버튼 카펜터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노보드는 스포츠가 되었고 올림픽 종목이 되었다. 그 긴 시간의 축적 위에서, 한국은 마침내 설상 종목 첫 금메달이라는 역사를 썼다. 만약 그때 그 헛간에서의 도전이 없었다면 오늘 하프파이프 위의 이 장면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최가온의 금메달은 한 선수의 승리이자, 스노보드를 세상에 남기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한 브랜드의 시간까지 함께 올라간 결과다.

제이크 버튼 카펜터
[흥부전]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