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900명 우르르, 신부 마음껏 고르라고?” 파격제안 父의 진짜 속마음[명화수집]
900명 인어의 유혹 받는 음악가
영영 심해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알려진 그림과 덜 알려진 명화, 아름다운 작품과 사연 있는 예술품을 찾아봅니다. 그렇게 1000점을 차곡차곡 수집합니다. [기자 구독]으로 이 과정을 함께 해주셔도 참 좋겠습니다.

내 딸, 인어 900명 중
한 명을 신부로 맞이할 기회를 주마.

사드코는 러시아 노브고로드 지방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악사입니다.
12세기에 실제로 살았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사드코는 종종 강과 호수에서 현악기 구슬리(Gusli)를 켜곤 했습니다. 실력은 훌륭했습니다. 연주를 하면 바다의 왕마저 귀 기울여 감상할 정도였습니다. “악사여. 마을 사람들을 다 불러보거라.” 언젠가 감동에 젖은 바다의 왕은 이 가난한 음악가에게 보답도 합니다. “황금 지느러미의 물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려라. 그들이 비웃으며 내기를 걸어오면, 못 이기는 척 판돈을 최대한 키우거라.” 신과 같은 존재의 말인 만큼, 사드코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결과는요. 역시 바다의 왕은 결정적 순간, 사드코의 낚싯바늘에 금빛 물고기를 줄줄이 걸어줍니다. 사드코는 이 덕에 불룩한 판돈을 모두 빨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자가 된 사드코의 두 번째 직업은 무역 상인이었습니다.
그사이 한 여인과 결혼도 할 수 있었지요. 사드코는 커다란 배를 몰고 바다를 가로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무역선은 망망대해에 그대로 표류하고 맙니다. 이는 바다의 왕이 벌인 일이었습니다. 왜? 사드코가 과거처럼 연주도 자주 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그 내기 사건 이후 직접 고마움을 표한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드코와 그의 선원들은 뒤늦게 바다로 황금을 던져봅니다. 귀한 유물, 반짝이는 보석도 바쳐봅니다. 하지만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끝내 ‘인간 제물’을 바치기로 합니다. 희생양은 제비뽑기로 가렸지만, 역시나 걸린 이는 사드코였습니다. 기구한 삶이로다…. 사드코는 이런 혼잣말과 함께,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아, 이곳이 저승인가.
눈을 뜬 사드코 앞에 펼쳐진 건 반짝이는 빛, 일렁이는 풍경이었습니다. 코끝은 짭짤하고, 몸은 살짝 떠 있는 듯 가벼웠습니다. 고개를 드니 거대한 해파리가 있고, 발밑에는 조개와 불가사리, 양옆에는 미역과 산호초가…. 사드코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곳은 저승이 아닌, 바다의 왕이 사는 심해였습니다.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려던 찰나, 진노한 바다의 왕이 사드코에게 다가옵니다.
건방지게 신의 도움을 받고도 제대로 된 제사 한 번 지내지 않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내가 네 녀석에게 건 마법을 풀면, 그대로 숨막히고 짓눌린 채 최악의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협박도 합니다. 사드코는 살아남기 위해 또 한 번 악기를 듭니다. 바다의 왕이 가장 즐겨듣던 음악을 연달아 연주했습니다. 효과는 좋았습니다. 분위기는 금방 누그러들었습니다. 바다의 왕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내 딸, 인어 900명 중 한 명을 신부로 맞이할 기회를 주마.” 문제의 이 제안은, 바로 이때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는 바다 왕의 계략이었습니다.
사드코를 사위로 맞아 평생 심해에 두기 위한 구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밤이고 낮이고 악기 연주만 시킬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미끼’로 준 딸이 12명 또는 300명이었다는 해석도 있긴 합니다. 사드코는 그런 왕의 꼬임도 모른 채 혼이 쏙 빠집니다. 아름다운 여인들 앞에서 심장만 쿵쿵 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낯선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사드코여. 딸들의 유혹을 모두 물리치거라. 맨 끝줄에 선 막내, 체르나바를 선택하면 뭍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명령을 한 자는, 당시 선원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 성 니콜라스였습니다. 앞서 사드코를 바다로 밀 수밖에 없던, 그 선원들이 혹시나해 올린 기도에 응답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드코는 눈을 질끈 감아봅니다.
유혹의 춤을 추는 온갖 인어를 모르는 척합니다. 육지 위 소박한 복장의 아내만을 생각한 채, 바다 왕의 막내딸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사드코>. 딱 그 장면을 담은 작품입니다. 무시당한 인어는 사드코를 노려봅니다. 뒤로 빼곡하게 선 인어들은,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치장과 몸짓에 힘을 씁니다. 보글보글 차오르는 거품, 입을 벌린 물고기와 고개 내민 해삼…. 꿈결같은 분위기가 마음을 더 들뜨게 할 듯합니다. 하지만, 사드코가 바라보는 건 육지의 아내뿐입니다. “제가 체르나바입니다.” 비로소, 마지막 인어가 사드코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합니다. 체르나바. 그녀는 언니들과 견주면 수수한 외모와 차림새였습니다. 다만, 맑은 눈과 빨려들어갈 듯 깊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성 니콜라스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나를 고르세요. 그런 뒤 첫날밤 나를 품지 않는다면, 당신을 곧장 육지로 보내드릴게요.” 사드코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바다의 왕도, 다른 899명의 인어도 놀란 기색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사드코의 운명은요. 사드코도, 체르나바도 약속을 지켰습니다. 다음 날 동이 틀 무렵, 사드코는 한 강물 위에 둥둥 뜬 채 바깥 공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 주민에게 물어보니, 그 강이 과거에는 체르나바강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드코는 아내와도 다시 마주합니다. 다행히 바다의 왕은 재차 심술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옛이야기다운 결말로 내용은 마무리됩니다.

레핀은 <사드코>를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그렸습니다.
<사드코>라는 서사시 자체에 흥미를 느낀 점도 컸지만, 이 그림을 그린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파리를 유학하며 여러 화려한 화풍을 마주한 그. 눈이 돌아갈 만큼 아름다운 양식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당시 가장 수수한, ‘우리 조국’의 기법을 택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분석입니다.
“사드코는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의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순진한 사드코는 기쁨에 겨워 (잠시)정신을 잃었지만, (뜻은)확고했다.
이것은 현재 나(레핀)의 상태, 어쩌면 우리 (조국)예술의 상황일 것이다.”
딕슨-케네디 등, 러시아 및 슬라브 신화와 전설 백과사전, 블룸즈베리 아카데믹
제임스 베일리, 사드코, 러시아 민속 서사시 선집, 라우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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