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㉓ 윤희에게-부재와 금기, 희화를 지나 치유로

1. 한국 퀴어서사의 전개와 <윤희에게>의 자리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2019)는 한국영화사에서 퀴어서사의 궤적을 논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한 중년 여성의 첫사랑을 회고하는 잔잔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는 한국 퀴영화의 역사적 전개와 수용사적 맥락을 집약하며, 퀴어 정체성을 보편적 감정의 차원으로 확장한 성숙기의 지점을 보여준다.
한국영화에서 퀴어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검열과 사회적 금기가 강했던 1990년대초반까지 퀴어는 <아담이 눈뜰 때>(김호선, 1993)의 오디오 가게 사장 캐릭터와 같이 희화화되거나 병리화된 주변 인물로만 소비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내일로 흐르는 강>(박재호, 1996),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김태용, 민규동, 1999)에서 초기적 등장이 이뤄졌고, 2000년대 들어 <로드무비>(김인식, 2002), <후회하지 않아>(이송희일, 2006)가 본격적으로 퀴어서사를 전면화했다. 이후 <친구 사이?>(2009),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상 김조광수, 2012)과 같은 작품은 결혼 제도와 가족 규범을 정면으로 다루며 퀴어 정체성을 시민권의 문제와 연결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윤희에게>는 기존 퀴어서사의 특수성과 저항의 국면을 넘어 치유와 보편성의 감수성을 제시하는 새로운 단계로 등장한다.

2. 서사 구조와 멜로드라마적 정조
이 영화에서는 고등학생 새봄(김소혜)이 엄마 윤희(김희애)의 서랍에서 일본 오타루에서 온 편지를 발견하는 장면이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동한다. 편지는 윤희의 과거 연인 준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모녀는 봉인된 기억을 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영화는 편지-여행-재회-귀환이라는 순환 구조를 따르며, 절정은 폭발적 사건이 아닌 침묵과 시선, 설경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사건 중심의 갈등 대신 서정적 정조가 중심을 이루며, 그렇게 구조화된 사건 끝에서 윤희는 과거에 묶인 자신을 벗어나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러한 구조는 퀴어서사가 단순한 금기 서사가 아니라 보편적 멜로드라마의 변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임대형 감독이 이 영화에서 연출한 감정의 내면화와 여백의 미학은 퀴어서사를 사회적 갈등의 전시장에서 보편적 감성인 서정성의 장으로 옮겨 놓았다.

3. 보편성의 획득과 가족 서사의 결합
<윤희에게>의 가장 큰 성취는 퀴어서사의 보편성 획득이다. 윤희와 준의 관계는 특수한 정체성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첫사랑의 기억과 회한으로 그려진다. 이는 국외 퀴어영화의 성취와도 맞닿아 있다. <모리스>(제임스 아이보리, 1987)는 퀴어 멜로드라마가 희망적 결말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아이다호>(구스 반 산트, 1991)는 퀴어영화가 전위적이고 시적인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거기에 <브로크백 마운틴>(리안, 2005), <캐롤>(토드 헤인즈, 2015),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루카 구아다니노, 2017)은 퀴어서사가 보편적 사랑 이야기로 수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윤희에게>는 바로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한국적 맥락과 결합한 작품인 것이다.
특히, 모녀 관계의 도입은 한국적 특수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새봄은 엄마의 퀴어 정체성을 거부하기보다 여행을 통해 이해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강력한 가족 중심 문화와 연결되며, 퀴어서사가 고립된 정체성의 서사를 넘어 가족 및 세대 담론 속에서 수용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윤희에게>가 가족드라마의 외피를 두른 퀴어 멜로드라마라는 점은 한국영화사에서 퀴어서사가 주류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4. 치유와 보편성의 이정표
결론적으로, <윤희에게>는 한국영화사에서 퀴어서사가 ‘초기 등장-본격화-정치적 발언’의 단계를 거쳐 도달한 ‘성숙기’의 징표이다. 그 이유는, 임대형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퀴어서사를 소수자의 이야기로 특수화하지 않고 보편적 사랑, 기억, 화해의 정서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희에게>는 영평상과 청룡영화상 등에서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을 수상하며 퀴어서사가 주류 영화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결국 <윤희에게>는 한국영화사에서 퀴어서사가 비극과 저항의 국면을 넘어 보편성과 치유의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상징하는 이정표로 평가할 수 있겠다. 퀴어서사가 멜로드라마와 가족드라마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는 한국영화사의 다양성과 그 성숙도를 입증하는 증거로 남는다.
■ 영화와 관련한 사소한 이야기들
<윤희에게>라는 제목은 영화 속 편지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인데, 시나리오 작업 초기에는 다른 제목도 있었으나 결국 가장 단순하면서도 관객에게 정서를 바로 전달할 수 있는 편지의 호칭을 제목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편지, 엽서, 작은 기념품들은 대부분 소품팀이 직접 제작한 유일한 물건들이라고 한다. 특히, 윤희가 받은 편지는 배우 김희애가 실제로 손에 쥐고 연기할 수 있도록 오래된 종이 질감을 구현해 제작되었는데, 관객은 잠깐 보지만 배우는 정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였다.
글 : 영화평론가 윤필립
https://news.kbs.co.kr/special/films2025/main.htm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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