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른자 띄운 쌍화탕 마시고, 6070 음반까지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윤성우 기자 2026. 2. 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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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중구의 한 음반 가게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음반을 둘러보고 있다./윤성우 기자

“60년대 음반은 어디 있나요?”

지난 8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인근 지하 상가의 한 음반 판매점. 일본 도쿄에서 온 이토(52)씨가 음반 서가를 열심히 살폈다. 그는 영어를 섞어가며 점원에게 가격을 묻더니 한국 밴드 ‘산울림’의 LP를 하나 구매했다. 이미 구매한 다른 앨범도 함께 들고 있었다. “산울림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산울림의 노래를 해외 밴드가 따라 부른 영상을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12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연합뉴스

30여 년간 서울에서 음반 판매점을 운영해 온 서모(54)씨는 “최근에는 외국인들이 부쩍 가게를 많이 찾는다”고 했다. 아이돌 앨범만 찾을 줄 알았더니, 한국 청년들도 잘 모르는 신중현, 김추자, 바니걸스의 초판 음반을 사간다고 한다. 그는 “유튜브로 접한 뒤 원곡 성지순례를 온다”며 “10만원 넘는 돈을 턱턱 내며 음반을 사 간다”고 했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한국의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 드라마나 유명 연예인,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한국의 옛것을 접한 이들이 이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이날 음반 가게에서 만난 미국인 A(29)씨는 “최근 K팝이 공산품이라면, 그 시절 한국 가요는 날것의 매력이 있다”며 “이들의 ‘명반’을 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이그나시오(27)는 “한국에 짐을 풀자마자 여기부터 왔다”고 했다.

오래된 다방에도 외국인들이 모인다. 지난 12일, 서울 을지로에서 41년째 영업 중인 한 다방에선 대만에서 온 관광객들이 낡은 황갈색 소파에 앉아 활기차게 대화를 나눴다. 테이블엔 라면과 노른자를 띄운 쌍화탕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최근 어르신과 외국인 손님 비율이 반반이라고 한다. 사장 박옥분씨는 “BTS가 복귀 공연을 한다는 3월 21일 전날에는 미국인 관광객 60명이 단체 예약을 해뒀다”고 했다.

젊은 한국인들은 ‘촌스럽다’며 잘 쓰지 않는 물건 역시 외국인들에겐 여행 기념품으로 통한다. 특히 꽃무늬 김장 조끼가 외국인들에게 인기다. 12일 서울 광장시장 내 일부 의류 매장은 수십 가지 디자인의 꽃무늬 조끼를 진열해 뒀다. 필리핀 관광객 라이슨 파라스(40)씨는 색깔별로 4벌을 구매했다. 그는 “귀엽기만 하다. 가족들에게 선물할 예정”이라고 했다.

침체됐던 상권도 덕분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공예점에도 자개장, 함 등 나전칠기 제품을 구경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나전칠기 교자상을 구매한 일본인 유미코(58)씨는 “실물로 보니 더 아름답고 고급스럽다”고 했다. 공예점 점주는 “요즘 매출 80%가 외국인 지갑에서 나와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레트로 문화에 빠지게 된 건 K-컬처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며, 과거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외국인들은 영상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의 오래된 문화도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며 “한국인에겐 너무 익숙한 것들이 관광객에게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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