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내 아내 주검에서 금니 6개 빼달라”

장례식장에서 일을 하던 중 휴게실에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씩씩거리는 선배를 만났다. 그는 연신 탄식을 내뿜고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 이거 참 난감해서, 상주가 글쎄. 죽은 자기 마누라 금니를 빼달라고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네. 개수까지 정확이 알고 있더라고. 여섯 개라고. 그런데 내가 치과의사도 아니고 그걸 해본 적이 있냐. 죄송하지만 못 하겠다고 하니까 상조회사에서 그것도 못 해주냐면서 화를 내더라. 아휴.”
때론 무리한 상주의 요구
유족 응대에 지친 몸과 마음이 슬럼프로
겉으로 멍이 들고 피가 나는 게 아니다보니 주위 사람들은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상처를 받더라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까닭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났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했지만 하면 할수록 갈 길이 더 멀어 보였다. 넘을 수 없는 한계도 분명 있었다. 무엇이든 단번에 되는 건 없다는 위로를 받아도 내 자존심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쓸모없으면 버려질까 두려웠다. 간절히 원했던 일이라서 그 두려움은 더 컸다. 그러나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고, 봄이 와도 감탄스럽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해 봄에 나는 사직서를 냈다.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집안에만 머물렀다. 장을 보거나 꼭 필요한 볼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방구석의 가구처럼 가만히 들어앉아 숨만 쉬었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니 당연히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되긴 했지만 밖으로 나갈 자신이 아직은 없었다. 방에 빛이 잘 들지 않아 컴퓨터를 켰다. 컴컴한 구석에서 모니터로 창밖의 세상을 엿보았다. ‘나만 빼고 다들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라는 존재가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 그렇게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중, 미동도 없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기제사 도와달라” 문자 한통에 생기가
가만히 읽어 내려가니 느리게 뛰던 심장에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이내 어두웠던 방에 한 줄기 햇살이 비쳐들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도움을 청하고 있다. 그게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이불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그때의 생기를 잃어버린 내가, 나약해져버린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다. 동시에 나의 미약한 손길을 잊지 않아주셔서 고마웠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손을 부여잡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칼집에 부드러워지듯…상처로 유연해지다
농부들은 한겨울에도 부지런히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묵혀둔 땅을 일구어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릴 것이다. 그 싹은 두둑한 밑거름에 의지한 채 봄볕 아래에서 쑥쑥 자랄 것이다. 제초제처럼 독한 질책에 범벅이 되어도 나는 기어이 성장할 것이다.
그래. 봄. 봄이 오는가보다.
이별돌보미 양수진의 애도와 애정 사이는 ‘이 별에서의 이별’ 저자 양수진은 장례지도사이지만 이별의 의식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고인과 유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별도우미로 일했던 지난 15년 동안, 그녀는 엄마가 되었고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도 되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가끔은 숨을 돌리며 삶에 대한 애정과 애도 사이에서 서성였던 이야기들을 낮은 목소리로 소개합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애도와 애정 사이(https://www.hani.co.kr/arti/SERIES/3306?h=s)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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