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현실 ‘B급 정서·코믹’으로 날리는···농민공 아이콘 된 뚱보 고양이
1분짜리 영상서 미니 드라마로 성장
무명씨들이 댓글로 서사…창작에 반영
화려한 삶 욕망이나 농민공 애환 주류

처음에는 대사도 줄거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황갈색 털의 뚱보 고양이가 밭에서 기른 채소를 거둬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단순한 1분 안팎 분량의 영상이었다.
여러 사람이 댓글로 의견을 나누고 창작에 뛰어들면서 캐릭터에 설정이 부여됐고 줄거리가 생겼다. 급기야 농민공의 애환과 욕망을 드러내는 상징이 됐다. 이름도 딱히 없이 ‘뚱뚱한 주황색 고양이’이라는 뜻 그대로 팡쥐마오(胖橘猫)라고 불리는 중국 AI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야기다.
AI 슬롭에서 집단창작 서사로

팡쥐마오는 세계적으로 생성형 AI 영상 열풍이 시작되던 지난해 4분기 위챗, 더우인 등 중국 웹에 등장했다. 시작은 귀여운 고양이 모습을 의인화해 전달하는 영상이었다. 개·고양이를 합쳐 반려동물이 1억 마리 넘는 중국에서 황갈색 고양이는 특히 인기가 많으며 사고뭉치라는 이미지도 형성돼 있다.
팡쥐마오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사람이 창작에 뛰어들었다. 진입 장벽이 낮은 AI 애니메이션 특성상 콘텐츠는 금세 급증했다. 조금씩 줄거리의 틀을 갖춘 ‘미니 드라마’가 됐다.
내용은 황당무계한 것이 주를 이룬다. 팡쥐마오가 자신을 괴롭힌 동물들에게 훨씬 더 크게 복수하며 즐거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자식의 팝콘을 빼앗아간 곰에게 매운 소스를 잔뜩 뿌린 팝곤을 먹여 설사하게 한 다음 화장실을 통째로 뜯어 호수에 던져버린다거나, 소매치기를 한 토끼를 잡아 아예 구워 먹는다는 내용 등이다.
귀엽고 깜찍한 얼굴의 고양이가 보복을 명분으로 악당 같은 행동을 할 때 표정이 변화하는 ‘반전’이 재미의 핵심이다. 내용은 교훈이나 권선징악에 얽매이지 않는다. 멧돼지, 곰처럼 고양이보다 큰 동물이 악당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쥐, 토끼처럼 고양이보다 작은 동물을 괴롭히는 줄거리도 많다. 같은 ‘고양이과’ 동물인 호랑이와 중국의 보물 판다는 종종 친구 또는 부하로 등장한다.
AI로 만든 저품질 콘텐츠를 일컫는 ‘슬롭’이라고 불릴만한 콘텐츠가 다수였지만 어느 순간 서사가 붙기 시작했다. 먼저 악당 팡쥐마오가 농민공을 상징한다는 댓글이 등장했다. 팡쥐마오는 시골 농가에서 살고 있는데 이는 월급을 받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며, 팡쥐마오에게 심하게 당하는 다른 동물은 임금을 떼먹은 사장이라는 해석이 달렸다. 끼워 맞추기식 해설이지만 사람들은 호응했다.
농민공은 도시 호적을 갖지 못한 농촌 출신 노동자이다. 호적지가 아닌 곳에서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이 제한적이며 자녀의 학교 입학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농민공 대부분 자녀를 고향의 부모에게 맡기고 도시에서 저임금으로 일한다.
이렇게 형성된 농민공 집단은 개혁·개방 초기 중국의 경제성장을 떠받쳤다고 평가받는다. 동시에 농민공이 처한 열악한 노동 조건이나 시골에 남아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농민공 자녀의 문제는 중국 사회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1세대 농민공이 50대 이상으로 접어들며 이들의 노후 보장 문제도 떠올랐다. 2024년 기준 중국의 농민공 인구는 2억9983명이다.
‘애환 담긴 일상’ 또는 ‘화려한 삶 욕망’

댓글 집단토론으로 만들어진 팡쥐마오의 설정이 이후 애니메이션에 반영됐다. 분량은 여전히 1분 남짓이며 줄거리 방향은 크게 두 갈래이다.
무대를 화려한 도시로 옮겨 팡쥐마오가 다른 동물들의 재산을 빼앗고 화려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이런 줄거리는 B급 정서의 코미디와 화끈한 액션을 내세운다.
팡쥐마오가 펜트하우스에 사는 멧돼지 마피아 소굴에 난입해 바주카포로 모두 쓸어버리고 재산과 ‘멧돼지의 여자들’을 차지한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닌자 거북이와 결투 끝에 승리해 거북이 등껍질을 튜닝한 스포츠카를 타고 신나게 질주하는 것으로 끝나는 영상도 있다.
다른 하나는 농민공으로서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춘절 연휴를 앞두고 올라온 한 영상은 농민공 고향이 부부의 귀향을 다룬다.
돈이 없어 1장에 900위안(약18만원) 하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농민공 고양이는 아내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귀향한다. 귀향길은 순탄치 않다. 며칠씩 걸릴 뿐만 아니라 시골길에서는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고 오토바이가 눈길에 미끄러지는 등 사고 위기도 찾아온다. 오토바이 귀향을 택한 다른 농민공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나온다.
간신히 고향에 도착하자 아이와 어머니가 반겨 준다. 영상은 농민공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을 배경에 ‘돈이 있건 없건 고향 집으로 돌아와 춘절을 쇠는 농민공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는 자막이 뜨며 끝난다.
이 영상은 지난 12일 위챗에서 기준 1만9000건 넘는 좋아요를 받고 4700명이 공유했으며 2700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농민공의 존중하는 내용에 감동했다” “여전히 많은 70·80년대생 농민공들이 오토바이로 귀향한다” “춘절 연휴 모두 잘 보내시라” 등의 내용이 많았다.
이밖에 팡쥐마오가 친구 호랑이와 함께 월급이 너무 적다고 한탄하거나, 열심히 살지만 돈 때문에 싸우는 부모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 고양이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인기를 끌고 있다.

팡쥐마오를 통해 노동자의 애환을 담아내는 내용이라도 도시 젊은 층 이용자가 많은 사오훙수에서 인기를 끄는 영상들은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한 영상에서 월급 3000위안(약60만원) 받는 고양이는 근무 시간 내내 태업하다 오후 6시 ‘칼퇴근’하며 불타는 회사를 뒤로 하고 와인을 마시며 유유히 지나간다. 드라마에서 이런 내용이 나왔다면 중국에서 “폭력을 선동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고양이와 AI 애니메이션임을 내세워 귀엽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샤오훙수에서는 ‘적의 여자’를 빼앗는 등 폭력으로 화려한 삶을 찾는 팡쥐마오 서사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도 이따금씩 볼 수 있다.
팡쥐마오 인기는 AI 애니메이션에서 그치지 않는다. 쇼핑 플랫폼 타오바오(중국의 알리바바)에는 인형을 비롯한 각종 팡쥐마오 상품이 올라와 있다. 누구에게도 저작권이 없어서 제작자들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진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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